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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에 닷컴이 돌아온다

실리콘 밸리에 닷컴이 돌아온다

Hi-Tech's New Day

조시 펠서(40)와 데이브 새뮤얼(32)은 지금쯤 열대의 바다에서 호화 요트를 타고 인생을 유유자적하게 보내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1999년 인터넷 라디오 방송 ‘스피너’를 아메리카온라인(AOL)에 3억2000만 달러를 받고 팔아 이른바 닷컴의 꿈을 이뤘다.

갑부가 된 그들은 2001년 AOL을 떠나 여유로운 삶을 시도했다. 펠서는 두 자녀를 키우며 세차장을 인수하려 했다. 새뮤얼도 결혼해 여행을 다니며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사업 환경이 호전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지난해 하이테크 업계로 복귀했다. 펠서는 “사업을 한 판 크게 벌일 호기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들이 차린 벤처회사 ‘그루퍼’는 전용 네트워크를 통해 친구들과 가족들이 사진·음악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무료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사무실은 어수선하고 엉성하다. 직원은 17명. 벽에는 박제된 돛새치가 걸려 있고, 회의실에는 탁구대가 놓여 있다. 몇몇 작은 방들은 너무 어질러져 있어 화재를 우려한 지역 소방관리인이 세 번이나 회사를 찾아오기도 했다.

실리콘 밸리 전체가 활기를 찾고 있다. 나스닥 시장이 살아날 듯하다가 주저앉고 있지만 닷컴 창업은 다시 유행하고 있다. 10년 전 시작된 1차 인터넷붐 때 잘나갔거나 겨우 살아남은 기업인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대성공을 재현하겠다는 야망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하이테크 분야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며, 어떤 이들은 신생 벤처회사의 열광적인 근무 분위기를 되찾고 싶어한다. 아울러 광대역 서비스와 휴대폰 확산,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요소에 침투한 인터넷도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5%가 인터넷을 사용하며 온라인상에서 하루 평균 3시간을 보낸다.

과거 닷컴 아이디어들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어 투자를 유치했지만 몇 년 전 결국 비웃음을 사며 무너졌다. 그러나 인프라가 든든하게 갖춰지면서 그런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유망해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테크 회생을 부추기는 사업 아이디어 대부분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 아이디어 중 다수는 실제론 옛 것들이다. 앵글만 다를 뿐이다. 최근 시애틀에서 잡스터라는 벤처회사가 출범했다.

구직자·구인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단지 새로운 것은 일자리를 찾지 않는 친구나 대학동창들에게도 채용 정보를 전달하도록 사용자들에게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 새 P2P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 새 비디오 파일 검색 엔진을 판매하는 업체도 생겼다. 게다가 다른 여행 사이트를 검색해 가장 싼 상품을 찾아주는 여행 사이트도 나왔다. 이미 들어본 소리 같다고? 캘리포니아주 팰러 앨토 소재 액셀 파트너스의 벤처 자본가 조 쇤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1990년대에 다 나온 아이디어들이지만 그땐 시기상조였다. 경영진이 미숙했고,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며,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닷컴처럼 진부한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가들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거꾸로 인터넷 사용자들이 그런 사업을 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온라인으로 대거 몰려들어 그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 특히 창조적 에너지를 웹에 쏟아부었다. 검색 엔진 구글은 지난해 여름 기업을 공개했다. 그러나 구글이 2003년 파이라 랩스를 인수한 게 어쩌면 더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파이라 랩스는 블로그로 불리는 개인 홈페이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다. 구글의 파이라 랩스 인수는 적극적인, 혹자는 중독됐다고 말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활기찬 커뮤니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큰 돈을 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편 구글과 야후가 개발한 새 광고 기술은 웹 페이지의 특정 광고를 관련 콘텐츠와 짝지어준다. 사용자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 인터넷의 틈새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 기술이다. 업계에서는 그것을 ‘롱테일’(long tail:수요가 적고 많이 팔리지 않는 상품의 매장이나 유통 채널을 확대함으로써 지배 상품의 시장 점유율과 맞먹게 해주는 사업모델. 아마존닷컴이 대표적이다)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업 기회의 강렬한 냄새는 뼈다귀가 강아지를 끌어들이듯 천재 사업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기술자 앤디 루빈은 몇 년 전 데인저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동통신회사 T-모빌의 인기 있는 사이드킥 휴대폰 기술을 제공한다. 그는 기업하는 많은 친구들이 지난 5년간 여행이나 자기 성찰, 개인 집짓기 등으로 소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기회가 있고 개발돼야 할 기술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루빈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현재 안드로이드닷컴이라는 새로운 휴대폰 벤처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창업이 활기를 띠자 경기 전반의 기류가 여전히 불투명한데도 하이테크 관련 분야에선 다시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베이 에어리어 루트 101 도로의 교통량이 늘었고, 팰러 앨토와 멘로 파크의 식당에는 점심 시간에 길게 줄 서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베이 에어리어의 조사업체 조인트 벤처: 실리콘 밸리 네트워크에 따르면 2004년도 벤처자본 투자는 전년도 대배 15% 증가했다. 그 업체의 이사인 러셀 행콕은 “점심 때면 사람들이 다시 냅킨에 (반짝 아이디어들을) 메모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메모가 닷컴붐 시절의 한물간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창업을 해본 기업가들은 요즘의 창업은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무료 소프트웨어, 저가 델 컴퓨터 서버, 저렴한 사무실 임대료 때문에 손쉽게 창업의 첫 단추를 꿸 수 있게 됐다. 조 크라우스는 1세대 웹 포털 ‘익사이트’를 세우면서 컴퓨터 설비에만 수백만 달러를 들였다. 그러나 얼마 전 잣스폿(기업들에 공동 업무 웹사이트 ‘위키스’를 제공한다)이라는 회사를 세울 때는 종잣돈 10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아울러 저렴한 비용의 국내외 아웃소싱이 가능하기 때문에 창업에 많은 직원이 필요하지 않다. 폴 라이언은 검색 및 광고회사 오버추어의 최고경영자였다. 오버추어는 2000년 16억3000만 달러에 야후에 인수됐다. 라이언은 곧 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너무도 느슨한 업무 환경 때문에 4개월밖에 버티지 못했다. 요즘 그는 소리소문 없이 퍼폼 로컬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배관 등 가정 설비 회사들이 인터넷을 통해 고객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회사다. 갓 10개월 된 그의 회사 직원이라고 해봐야 고작 5명이다. “내가 기술자이기 때문에 기술 인력은 채용하지 않았다. 소액의 컨설팅 대금만 지불해도 곧바로 창업이 가능하다.”

광고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닷컴붐 시절 기업가들은 고가의 고속도로 광고판이나 TV 광고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요즘의 닷컴들은 블로그 커뮤니티들이 자발적으로 자기네 회사의 기술을 찾게 하고 또 전파토록 한다. 예를 들면 그루퍼는 광고 예산을 단 한 푼도 책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지난 6개월 동안 50만 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와 유사한 LA의 마이스페이스는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듯한 입소문으로 회원 1200만 명을 끌어모았다.

이런 닷컴 창업의 새로운 경제학은 기업공개를 통해 한몫잡으려던 기업가들의 목표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신주 공모시장에서 매기가 살아나지 않자 많은 기업가들은 야후·구글·AIC/인터랙티브코프 같은 극소수 인터넷 대기업에 인수되기를 원한다. 이런 모든 면을 감안하면 밴쿠버의 플리커(Flickr)가 닷컴 부흥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플리커는 사진을 공유하는 많은 사이트 중 하나일 뿐이지만 몇 가지 기발한 기능을 갖고 있다.

사용자들은 찍은 사진에 키워드를 부여할 수도 있고, 그 사진들을 다른 사용자들의 유사한 사진 모음에 추가할 수도 있으며, 어느 사진에나 의견을 달 수 있다. 스튜어트 버터필드와 캐서린 페이크 부부가 창업한 지 1년 남짓한 동안 이 회사는 단 한 푼의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서도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했다.
올해 초 이들 부부는 유명 벤처투자사 액셀의 자금을 받기 직전까지 갔다.

만약 투자를 받았다면 회사를 기존의 틀에 박힌 방식으로 운영해 적당한 시점에 기업을 공개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리는 소문으로는 3500만 달러에 야후가 플리커를 인수했다. 회사를 야후에 넘김으로써 그들은 사람을 채용하거나 재무팀·법무팀 등을 구성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좋아하는 일, 다시 말해 제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버터필드는 말했다. 만약 또다른 기술주 폭락 사태가 발생하거나 경쟁 업체가 더 나은 사진 공유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플리커는 야후의 우산 아래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첨단 기술 리더들이 과거와 다른 마지막 한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불안한 경제가 장래의 사업계획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지난날의 과욕을 경계한다. 실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말은 그렇게 한다. 하이테크 경제가 다시 한 번 과열로 치닫는다면 이번에는 냉철한 기업가들이 승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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