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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신데렐라 이야기

일본판 신데렐라 이야기

A Cinderella Story 한 소녀가 부모의 버림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 당대 최고의 게이샤(藝者)가 되는 과정을 그린 아서 골든의 베스트셀러 소설 ‘게이샤의 추억’은 ‘신데렐라’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하다. 단지 1930∼40년대의 일본 교토(京都)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만 다르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롭 마셜 감독의 동명 영화 ‘게이샤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이국적인 흐릿한 눈의 여주인공 사유리는 중국 배우 장쯔이(章子怡)가 연기했다. 심술궂은 대모들도 나오고 사악한 이복언니와 마찬가지 역할인 하쓰모모(궁리)도 나온다. 사유리의 치열한 라이벌인 하쓰모모는 사사건건 사유리의 야망을 꺾을 음모를 꾸민다. 물론 여느 동화처럼 왕자님도 등장한다. 사유리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기품있고, 잘 생기고, 부자에다 친절하기까지 한 사업가 ‘회장’(와타나베 겐)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남몰래 맹세한다. 그러나 마셜의 영화는 고전 동화라기보다는 선정적이고 여자끼리 서로 뺨을 때리는 1940년대식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과장된 신파조 연기와 비웃음을 날리는 악당,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장면들까지 그대로다. 어쩌면 이런 사실 때문에 이 영화가 실제보다 재미있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흥행보다는 비평가들의 호감을 사려고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하게 만들다 보니 신파극의 수준에조차 이르지 못한 듯하다. ‘게이샤의 추억’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야 했다. 어떤 대본 작가라 해도 그처럼 많은 요소들을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1929년 사유리가 어렸을 때(오고 스즈카 분)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2차대전을 지나 전후 일본, 미군들이 매춘부를 찾아 거리를 활보하는 시기까지 이어진다. 로빈 스위코드의 과도하게 압축된 각본은 늘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 허둥댄다는 느낌을 준다. 사유리는 너무도 갑자기 최고의 게이샤가 되고, 그녀의 전성기는 채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다. 소설 원작 의 세심하고 애정 어린 묘사를 좋아한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쯔이의 미모와 콜린 앳우드의 화려한 의상, 제작 디자이너 존 머의 예쁘고 환상적인 옛 교토 거리 세트장 등 볼거리는 많다. 그러나 시각적 호화로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배우들은 흐느끼고 울부짖지만 그들의 감정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한다. 두 중국 배우는 보기에 멋지지만 불리한 조건에서 연기했다.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 연기해야 했고 더구나 일본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해야 했다. 이 영화는 청각적으로 뒤죽박죽이다. 사유리의 스승으로 나오는 양쯔충(楊紫瓊)이나 ‘셸 위 댄스’의 스타 야쿠쇼 고지(役所廣司) 등 훌륭한 배우들이 저급한 제작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을 지켜보기란 고통스럽다. 뮤지컬 ‘시카고’를 멋진 영화로 재창조해 낸 마셜은 모든 장면을 전 배우가 튀어나와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예컨대 거리와 복도를 숨차게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불행히도 그런 장면의 끝이 합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관객의 시선을 끄는 데 너무 애쓰다가 오히려 관심을 얻지 못한 셈이다. 게이샤의 기예는 미묘함, 고요함, 우아함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왜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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