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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비일본적인 일본·일본인

너무도 비일본적인 일본·일본인


Turning Un-Japanese 미국의 작가 겸 번역가이자 영화학자인 도널드 리치는 지난 50년 동안 일본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대부분을 영어권 세계에 일본을 알리는 데 써왔다. 그러나 요즘 리치는 자신에게 맡겨진 완전히 새로운 역할이 다소 당황스럽다. 일본인들에게 일본을 알려야 하다니. 전후 일본 영화계의 명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에 관한 그의 강의를 듣는 도쿄대 학생들은 ‘도쿄 이야기’(東京物語·1953년도에 제작된 오즈의 명작)에 묘사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당시의 가족 제도를 전혀 모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리치는 말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리치는 그들이 영화에 나오는 난해하고 정중한 전통 일본어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마치 ‘사라진’ 세계에서 튀어나온 언어처럼 낯설게 느낀다고 말했다. “사라졌다.” 요즘 일본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우리 가족은 2004년 9월 일본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1980년대의 ‘일본 때리기’(당시 막강한 경제·기술 대국이었던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시기와 경계의 대상이 됐던 현상)의 기억들로 꽉 차있었고, 서양에서 일본은 여전히 특이하고 낯선 나라로 비쳤다. 평생고용이나 사가(社歌), 혹은 변호사와 범죄자가 극소수인 전통이 아직도 유지되는지 궁금했다. 당시 일본 안내 책자에는 인사할 때 허리를 굽히는 각도로 구분되는, 세분화된 사회계급에 유의하라는 경고가 실려 있었다. 일본은 게걸스럽게 세계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는 나라로 묘사됐다. 그러나 내가 본 일본은 달랐다. 좀 특이한 데가 있기는 해도 또 하나의 부유하고 현대적인 서양 국가처럼 보였다. 갑자기 유럽 어딘가에 떨어뜨려 놓아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아시아 국가였다. “다른 외국인 친구와 만나면 일본에 살면서 느끼는 신기한 점들을 자주 이야기하게 된다.” 도쿄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한 유럽인 친구의 말이다. “그 이유는 신기한 점들이 갈수록 줄어서 더 신기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일은 지극히 내향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의붓형 마이클은 아직도 1960년대 말 교토(京都)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미국인 초등학생은 신기하고 희귀한 존재로 비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가족의 경험은 그와 전혀 달랐다.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 돼서 이상한 일본 명절을 맞이했다. 할로윈 데이(만성절 전야의 축제)였다. 수백 명에 이르는 트릭-오어-트리터(trick-or-treaters: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고 외치며 집집마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어린이들), 흥겨운 분위기, 상상력이 넘치는 의상들. 우리가 도쿄의 국제적인 지역에 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고대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한 이 축제에 참가한 사람 대다수가 일본인이었다. 외국의 풍습과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놀라운 흡수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 일본은 이제 그다지 적응하기 어려운 나라가 아니다. 복잡한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퀵서비스맨, 상점의 정기 세일, 신용카드 등 도시 생활 특유의 온갖 광경이 눈에 띈다. 물론 언어를 익히기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지하철의 모든 표지판과 거리 표지판 대다수가 일본어와 함께 영어로도 표기됐다. 그러니 이제 도쿄에서 길을 찾을 때 일본 한자의 미로(迷路) 속에서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편집이 잘 된 영자신문 3종이 발행되며, 영어 웹 출판 서비스는 부지기수다. 일본인들은 또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외국인들 앞에서 스스로 베일을 벗어 보이기도 한다. 도쿄의 회사와 상점 대다수는 웹사이트에서 인쇄가 가능한 맞춤형 안내지도(출발지점을 선택하면 찾아가는 길을 표시해 주는 지도)를 제공한다. 그 다음으로 놀라운 일은 이민자와 외국인, 페루·브라질 등에서 온 일본계 외국인들의 유입으로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인종 구성이었다. 우리 동네 수퍼마켓의 인도인 계산원은 외국인 손님들이 서툰 일본어로 곤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준다. 또 한 필리핀인(귀화한 일본 시민)이 운영하는 상점은 도쿄 서부의 거리에 너무 잘 어울려 외국인 가게인 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또 수많은 중국인과 한국인들이(대개 음식점 계산대나 주방에서 일하며 불법 노동자인 경우도 종종 있다) 도쿄 서비스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현재 많은 미국인 사업가(이들 중 대다수가 모르몬교 선교사 시절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쌓았다)가 일본 경제의 사각지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또 닛산의 CEO 카를로스 곤부터 소니의 회장 겸 CEO 하워드 스트링어, 프로 야구 감독 보비 밸런타인까지 외국인 VIP들이 일본 내 외국인의 위상을 높였다. 일본의 이민자 비율은 아직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해 세계 여타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우 낮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두드러진다. 2003년 일본 내 결혼 20건 중 한 건이 비(非)일본인과의 결합이었다. 도쿄의 경우에는 10건 중 한 건이었다. ‘동질성’을 큰 특징으로 내세워온 일본 사회의 기득권층에게는 외국인들이 큰 위협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갈수록 커지는 노동력의 빈 구멍을 메워줄 이민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경기침체가 계속될 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재계에 자리를 잡았다. 도쿄의 재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에게만 열려 있는 배타적인 조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외국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10년 전에 누군가가 장차 골드먼삭스가 일본의 골프 코스 수백 개를 소유하리라고 말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 사업가 로이 쓰치야마의 말이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외국인들은 기득권층에 도전하려는 일본의 강력한 소수(어쩌면 조용한 다수)에게 용기를 주었다. 물론 아직도 학교와 기업의 집단주의 전통이나 ‘철의 삼각구도’라고 불리는 정·관·재계의 유착이 지배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전통들은 사방에서 도전을 받는다. 기자가 직업이어서 새롭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데는 이력이 났는데도, 일본의 자랑인 노동윤리를 거부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눈에 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현재 일본의 니트족(NEETs: 학생도 아니고 직장도 없으면서 취업 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들)은 200만 명에 이르며 그 인구는 점점 늘어난다. 일본에서는 이 사회 탈락 계층이 새로 등장했지만 서양에서는 히피부터 현대의 슬래커(나태한 세대)까지 역사가 깊다. 요즘 새로 떠오르는 기업인 계층도 전통에 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안전한 회사원 생활을 때려치우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샐러리맨들부터 아다치 신(安達眞·23)처럼 아예 처음부터 홀로서기를 택하는 타고난 기업인형까지 유형이 다양하다. 아다치는 ‘해커스 덴’(hacker’s den)이라는 곳에서 도쿄에 사는 또래 젊은이 10여 명과 함께 비디오 게임과 모바일폰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조용히 큰 돈을 벌어들인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휴대전화 회사에서 시간제로 일하면서 기업공개(IPO) 과정을 지켜봤다. “거기서 나중에 스스로 어떻게 기업공개를 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해커가 된 사실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시는 듯하다.” 이들 모두가 템플대 도쿄 캠퍼스의 제프 킹스턴 교수가 말하는 ‘일본의 조용한 변화’(그의 신저 제목)에 박차를 가한다. 1990년대 경제 불황으로 시작된 이 변화는 불문율과 조심스럽고 모호한 표현을 강조하는 사회 규범을 무시함으로써 능률을 높였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1950년대 명작 ‘이키루’(To Live) 에서는 주인공이 암에 걸리지만 의사는 그 사실을 환자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그런 잘못된 사려(思慮)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두 살짜리 조카가 암 치료를 받는 도쿄의 한 병원은 그와 대조적이다. 의사들은 예전과는 딴판으로 조카의 세부 치료 사항을 일일이 가족에게 알려주려 애쓴다. ‘인포뮤도 콘센토’(informed consent: 설명에 의한 환자의 동의) 원칙에 따른 행동이다. 일본은 세계화할수록 고유의 특성을 점점 더 잃어간다. 도쿄의 시장조사 업체 하쿠호도(博報堂) 생활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과 같이 일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한 응답자가 1992년 40%에서 2004년 56%로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중 일본 전통 의식과 명절을 지킨다고 말한 응답자의 수는 현저히 감소했다. 일례로 ‘전통 설 음식’을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86%에서 74%로 줄었다. 반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일본인의 수는 점점 는다. 그 이유는 “서구화 때문”이라고 세키자와 히데히코(關澤英彦) 소장은 말했다. “쉬운 대답이지만 사실이다.” 많은 일본인은 일본적 특성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걱정한다. 당연한 일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장 개혁이 ‘비(非)일본적’ 빈부 격차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10대들의 노랗게 물들인 머리부터 지하철에서의 무례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은 세계화 지지세력 탓이라고 비난받는다. 최근 아사히(朝日) 신문의 특집기사에서 집권 자민당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의원은 세계화와 시장경제가 가족의 유대를 심각하게 약화하고, “작지만 다양한 지역 사회의 독특한 개성”을 앗아갔다고 주장했다. 이런 탄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작가와 정치인들이 19세기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서구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일본의 자아상실을 한탄해 왔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지키려는 보호 세력이 요즘처럼 빠르고 광범위한 변화의 물결에 맞닥뜨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지극히 일본적 전통인 스모(相撲)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스모 선수가 되려는 일본 젊은이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젊은 운동 선수 대다수가 야구나 축구를 택한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일본 스모계가 에스토니아인·체코인·러시아인·불가리아인에게 문을 열어야만 했던 연유다. 이들 외국인 선수 중 대다수가 최고 수준의 선수로 활동 중이다(현재 한 몽골 출신 선수가 무적의 챔피언 자리를 지킨다). 스모협회 임원들은 외국인의 영향력 증대에 유감을 표시한다.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스모의 존속 여부는 몸무게를 수십kg씩 늘리고 스모 복장으로 기꺼이 운동할 의지를 가진 외국인들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인들이 흥미를 잃은 전통을 외국인 애호가가 이어가는 현상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흔히 보인다. 와인과 맥주의 인기가 오르면서 위기에 처한 사케(일본 전통주) 산업의 운명은 새로운 미국인·영국인 양조업자들과 수출업자들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기모노 입은 금발 여인’으로 불리는 미국인 지니 푸지는 아름다운 시골에서 일본의 전통적 숙박시설인 료칸(旅館)을 운영한다. 또 수많은 외국인 장인(匠人)과 학자들이 일본 문화의 특정 분야를 일본인들의 무관심에서 구하려고 일본에 왔다. 그리고 정말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인들은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매우 진지한 마음으로 이 일에 뛰어들지만 종종 우스우리만큼 쉽게 초심을 잃기도 한다. 최근 한 신문에서 전통 목판화가(60)의 말을 인용한 글을 읽었다. “우리가 잃은, 아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영원히 잃어버린 것은 일본의 일본다움이다. 문화 기반 같은 물리적인 사항뿐 아니라 예절과 언어 사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너무 비(非)일본적이다.” 영국 출신의 장인 데이비드 스톤스의 말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이 세계 여타 국가들과 닮아가면 갈수록, 여타 국가들 역시 일본을 점점 더 닮아간다는 사실이 아이로니컬하다.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초밥집이 많다. 미국 휴스턴에 사는 조카는 도쿄 근교 하치오지(八王子)시의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일본 팝 문화 소비자다. 또 한때 지극히 일본적이라고 여겨지던 산업 혁신 방식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끊임없는 향상’을 꾀하는 가이젠(改善) 체제와 적시생산(JIT) 제조 방식은 세계적 다국적 기업 월마트부터 중국의 수출 견인지역인 주강(珠江) 삼각지의 업체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다. 또 일본의 ‘아니메’(만화영화)는 미국 코네티컷주의 블록버스터 비디오 상점에서 디즈니 작품들과 경쟁을 벌인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지속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 예전의 영광을 재창조할 능력을 보여준다. 수년 동안 일본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해오던 녹차가 최근 편의점에서 다시 인기를 얻었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편리한 플라스틱 병에 포장하는 방법을 찾아낸 덕분이다. 일본 만화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작품의 배경은 신도(神道)의 신들과 전설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상상의 세계다. 미야자키는 도쿄 시내에 전통 건축물을 재현해 놓은 야외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재현물을 다시 재창조에 응용하는 능력이야말로 지극히 일본적인 재능 같다. 어쨌든 이 작품은 일본 시장에서 영화 ‘타이타닉’보다 더 큰 흥행수입을 올렸다. 150년 전 일본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의 강력한 화력에 두 손을 들고 운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서구 세계의 기술을 따라잡을 요량으로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비(非)서방 국가로서는 최초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화’를 선택한 셈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단기간이나마 집중적으로 체험한 서양인으로서 동서양을 잇는 이 대실험이 결론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제 남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경희 newsw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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