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美 기업들의 ‘아시아 인재 찾기’

美 기업들의 ‘아시아 인재 찾기’

어린이날이던 지난 5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공연장 겸 전시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 2층 홀. 말쑥한 정장 차림의 아시아계 젊은이 수천 명이 자신의 이력서를 꼭 쥔 채 북적이는 홀 안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홀 안엔 미국 굴지의 100여 개 기업의 부스가 설치돼 있다. 인기있는 부스 앞엔 30여m나 되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쪽에선 미국 교도소에서 나온 교정국 직원들이 보호장비를 꺼내보이며 구직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맨해튼에서 미국 대기업과 아시아계 취업 희망자들을 연결해 주는 ‘글로벌 아시아·한인 취업박람회’의 현장이다. 뉴욕 중앙일보와 ADI사(Asian Diversity Inc.)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의 근본 목적은 아시아계 구직자들에게 폭넓은 취업의 장을 마련해 주자는 것. 아시아계 인재를 찾으려는 회사들과 미국 대기업의 일자리를 원하는 한인 유학생, 교민 1.5·2세 및 다른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을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구직자들의 수고를 덜어주자는 것이다. 공부 잘하기로 정평이 난 아시아계 인력들인지라 이들을 채용하려는 대기업은 많았다. 특히 아시아 경제권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이 지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아시아계 인력들이 각광을 받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번 행사에 참가한 미국 회사의 숫자는 100개를 훌쩍 넘었다. 참여 기업의 면면도 IBM·메릴린치·KPMG 등 최우량 기업들이 즐비했다. 미 정부기관도 대거 참가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사회보장국(SSA)·국세청(IRS)을 비롯, 뉴욕시경(NYPD), 소방국(NYFD) 등에서도 아시아 인재 찾기에 열을 올렸다. 아울러 삼성·LG·대한항공 등 국내 업체도 참여했다. 구직자 40% 이상이 석사=기업들의 참여도가 높은 만큼 취업 희망자들도 대거 몰렸다. 주최 측은 당초 4000여 명이 올 것으로 추산했었다. 지난해에 왔던 수준이다. 그러나 참여 인원은 예상보다 2000명이나 많은 6000명을 넘겼다. 게다가 구직자들의 학력도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구직자의 95% 이상이 대학을 졸업했고 40% 이상이 석사학위 소유자였다. 실제로 수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훨씬 이전부터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정오 무렵부터는 인원이 급속히 늘어나 행사장은 발디딜 틈 없이 붐비기도 했다. 구직자들은 관심 있는 회사 부스를 찾아가 “어디서 일하게 되느냐” “봉급 수준은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서 채용 분야 및 처우 등을 상세히 파악했다. 많은 참가자는 수십여 통의 이력서를 미리 준비해와 관심이 있는 회사에 접수했다. 각 업체들도 인재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각 부스엔 해당 회사에서 파견된 인사담당 직원들이 문의사항에 친절히 답변하며 때론 즉석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주최 측에선 행사장 한켠에 별도의 인터뷰실을 마련, 조용한 분위기에서 밀도 있는 질의·응답이 이뤄지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LG전자 김윤호 인력담당관은 “4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려 점심도 먹지 못했다”며 즐거운 한숨을 쉰다. 수백여 통의 이력서를 받은 각 기업들은 자신들의 회사로 돌아간 뒤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인재들에게 개별적으로 인터뷰 약속 등을 통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터뷰실과 함께 눈길을 끌었던 곳은 ‘이력서 교정실’. 인터뷰실 바로 옆에 설치된 이곳에는 전문가 8명이 초빙돼 구직희망자들의 이력서에서 잘못됐거나 보충해야 할 점을 고쳐줬다. ADI 안진오 사장은 “그간의 취업박람회에서 이력서 교정실이 큰 인기를 모았다”며 “취업시 반드시 필요한 이력서가 제대로 됐는지 꼼꼼하게 검토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인회사·구직자 모두 만족= 어쨌거나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여기저기서 활발히 직업을 찾아다녀 각 업체들이 접수한 이력서는 200~300여 통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게 많은 인원이 몰린 회사는 ‘존슨 앤 존슨’과 메릴린치 등이었다. 이들 회사의 부스에는 취업박람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수십여 명이 줄을 서서 원서를 접수했다. 주최 측은 “존슨 앤 존슨이 아시아 각국에 지사를 많이 거느리고 있어 이 지역에서 일하기 원하는 인재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회사들은 대만족이었다.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가 몰렸기 때문이었다. ‘콜게이트 & 팔모리브’사의 인력담당 간부인 게일 윌리엄스는 “올해 처음으로 참여했는데 기대 이상의 우수한 인력이 몰려 놀랐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예상보다 대학원 졸업생 등 고급 인력의 비중이 컸다”며 “내년에도 참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번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느끼는 아쉬움도 없진 않았다. 무엇보다 현지 대기宕湧?취업비자가 없는 유학생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 사장은 “미국 기업들이 기꺼이 신원보증을 서주면서까지 채용하고 싶을 정도의 특별한 경쟁력을 갖는 게 무엇보다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뉴욕시 교정국 인사 담당자들이 부스를 방문한 중국계 여성에게 교정 공무원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교정 공무원직은 상대적으로 아시아인의 진출이 적다.


[인터뷰] 박람회 개최 주역 안진오 ADI 사장

“美 회사 취업 땐 승진 가능성 생각해야”
"미국 회사 내 아시아인들에겐 아직도 보이지 않는 ‘대나무 천장 (Bamboo Ceiling)’이 있으나 분야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 아시아·한인 취업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ADI(Asian Diversity Inc.) 안진오 사장은 5일 미국 기업 취업시 아시아계로서 얼마나 승진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ADI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미국 내 아시아계 구직자들을 현지 대기업에 연결해 주는 인력전문회사. 이 회사 설립자인 안 사장은 미국에서 직업을 구하면서 겪었던 말 못할 어려움을 절감한 뒤 인력 알선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왔다는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진 아무 어려움 없이 좋기만 했는데 막상 취업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외국인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뉴욕의 명문 New York University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MBA까지 땄음에도 채용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때는 아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다”는 게 안 사장의 고백이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러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 1987년 아시아계 인력을 전문으로 하는 헤드헌터 회사를 세웠다. 그는 “당시 한국에는 헤드헌터란 용어조차 없었다”며 본인이 “한국에서 이 업계의 선구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의 사업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간 미국에서 직업을 찾아준 아시아계 인원만 3000여 명으로 이 중 절반쯤이 한국인”이라는게 안 사장의 설명이다. 아울러 “주로 중견 간부 이상급이지만 한국 내 인력을 미국 본토의 회사에, 또 미국에 있는 한인을 한국 회사에 소개해 준 것도 수백 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사업이 커지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2000년부터는 개인별 직업 알선 외에 취업박람회라는 더 큰 분야의 일을 하게 됐다 한다. 안 사장은 이 같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 회사 취업과 승진에 성공하는 비결을 몇 가지 설명해 줬다. 그는 무엇보다 분야별로 영어 및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일 열심히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며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있는데 이런 쪽에서 일을 찾는 게 아무래도 취직·승진 모두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론 “기술·금융 및 그래픽디자인 같은 분야가 성공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치·언론 등 언어 능력이 결정적인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아시아계 이민자와 자녀들이 불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어가 완벽한 이민 2세들이라도 인종적 선입관 및 이질감 등으로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남을 설득해야 하는 직업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사장은 더불어 겸손과 과묵을 미덕으로 삼는 동양적 가치관이 미국 회사에서의 승진 등에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미국 회사의 간부를 만나면 ‘아시아인들은 매니저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일만 열심히 하면 알아서 승진시켜주겠지’하는 한국식 사고와 태도가 이런 오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가 승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안 사장은 충고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2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3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4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5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

6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7연간 1000억? 영풍 환경개선 투자비 논란 커져

8 야당, '예산 감액안' 예결위 예산소위서 강행 처리

9‘시총 2800억’ 현대차증권, 2000억원 유증…주가 폭락에 뿔난 주주들

실시간 뉴스

1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2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3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4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5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