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하면 코와 귀 자르겠다”
“등교하면 코와 귀 자르겠다”
전투에서 밀리는 탈레반 여학교만 골라 방화·협박 일삼아 카불에서 동쪽으로 160㎞ 떨어진 마드라와르 마을의 교실 10개짜리 여학교가 이제 막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리아(12)는 무엇보다 가을이 오면 돌아갈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좋다. 4개월 전 탈레반들이 학교를 불태워 없애려 했을 때만 해도 학교가 계속 문을 열지 확신을 못했다. 지난 2월 어느날 늦은 밤 12명이 넘는 복면 무장 괴한이 학교에 난입했다. 괴한들은 야간 경비원을 포박한 뒤 구타한 다음 교장실과 도서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도 마을 주민들이 물을 끼얹어 불이 번지지 않았다. 그 직후 괴한들이 남긴 쪽지가 발견됐다. 학교로 돌아오는 교사나 학생들이 있으면 코와 두 귀를 잘라 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그 협박은 먹혀들지 않았다. 며칠 만에 전교생 650명 중 대부분이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했다. 단층짜리 학교 건물의 내부 수리가 끝날 때까지 몇 주 동안 쌀쌀한 겨울 날씨였지만 운동장 나무 아래서 수업이 진행됐다. 인근 학교들이 도서관 책을 일부나마 대신 채워 주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머리칼을 잘라 버리고 얼굴을 절단하겠다는 협박 편지는 계속 날아왔다. 이달 초 학기 마지막 수업날 뉴스위크는 학교를 찾아가 학생·교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사가 꿈인 누리아는 학교를 끝까지 다니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줏빛 긴 옷과 머리수건으로 온몸을 감싼 누리아는 “코와 귀가 잘린다 해도 두렵지 않다”며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학생들은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탈레반은 전장의 승리가 불가능해지자 오랜 암흑기에 놓였던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키려 한다. 정부 불신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 4년간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속셈이다. 1996년 탈레반이 집권하자마자 불법화했던 여학생 교육의 재개다. “극단주의자들은 정부와 국제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국민에게 과시하고 싶어한다”고 아프가니스탄 독립 인권위원회(AIHRC)의 아마드 나데르 나데리는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교육부는 현재 전국에 여학교 1350개가 운영되며, 방과 후 여학생 수업을 별도로 진행하는 학교도 2900개나 된다고 말했다(남녀 공학은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1992년 초만 해도 여학생이 사실상 전무했지만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전체 학생 500만 명 중 3분의 1 이상이 여학생이다. 그러나 지난 6개월 사이 탈레반의 협박과 공격으로 이중 300개 이상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문을 닫았다. 폐쇄된 학교 대부분은 탈레반 세력이 막강한 남단 지역에 있다. 그러나 라그만주의 비옥한 강 골짜기처럼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던 곳의 학교들도 피해를 보았다. 올해 들어 라그만주에서 탈레반이 불을 지른 여학교는 누리아가 다니는 학교를 비롯해 6개에 이른다. 이 중 두 학교는 피해가 심해 아직까지 문을 열지 못했다. 인근의 로가르주에서는 괴한들이 여학교 10곳에 불을 질렀다(모두 카불에서 80㎞ 이내에 있다). “사람들이 겁에 질렸다”고 이웃 낭가르하르주의 AIHRC 대표 팔와샤 샤히드 카카르는 말했다. 이곳에서도 8개 이상의 학교가 방화 피해를 보았다. 카카르는 “이 극단주의자들이 학교 한두 곳만 공격해도 주민들은 두려움에 떤다”고 했다. 만드라와르에서 큰 도로를 따라 조금 떨어져 있는 하이데르 카니 마을의 여학교는 복면 괴한들이 들이닥쳐 불을 지른 지난 1월 이후 출석 인원이 급격히 줄었다. 그 전에는 하이데르 카니 마을의 가구 중 80%가 딸들을 학교에 보냈다고 파잘 라비 교장이 말했다. 미군 지방재건팀이 재빨리 피해를 복구해 학교 문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도 10대 미만인 마을 소녀의 40%, 10대 소녀의 10%만이 학교로 되돌아왔다고 학교장은 추산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등굣길에 무슨 일을 당할까 겁이 난다. 교사들도 겁먹기는 마찬가지다. 만드라와르 사건 이후 누리아의 선생님 파리다는 매일 부르카를 입고 친척 남자 한 명을 대동하고 학교로 출퇴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와 머리칼이 잘릴까 겁난다”고 파리다는 말했다. 전국에 있는 남학교 4250개도 공격에 취약하다. 카불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 중 일부는 학교 교육이 서방의 이념(기독교를 포함)을 이 나라의 이슬람 어린이에게 주입하려는 음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탈레반 전사들은 카불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의 칸지 마을 남학교를 폐쇄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마을 원로인 말라크 미르자(55)가 말했다. 주민들은 만약 학교가 공격당하면 그 지역에서 탈레반을 몰아내겠다는 경고로 맞섰다. 탈레반은 한 가지 단서를 달며 물러섰다. 기독교 교육만은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 열성적인 선교사들이 비밀리에 가르친다). 탈레반은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교육을 불신한다. 나데리는 “이 극단주의자들은 교육받은 아이들이 앞으로 종교적 극단주의를 따르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안다”며 “탈레반은 우리를 계속 후진 상태에 머무르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카불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잃어간다. 이런 공격을 막아줄 능력이 없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유엔과 AIHRC 관리들은 학교 방화범들이 체포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라그만주 주민들은 자기들이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두고 탈레반만큼이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탓했다. “정부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만드라와르의 교장 압둘 라우프는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학교장 라비는 이렇게 덧붙였다. “카르자이와 지방정부가 우리에게 하는 일을 보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교육과 안전 면에서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특히 현지 경찰에 분노한다. 경찰들은 부패로 악명이 높다. 국민은 경찰이 학교 보호에 거의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시민이나 학교를 보호하지 않고 돈이나 뜯으려 순찰을 돈다”고 라그만주 출신 의원 물비 사이드 라만이 말했다. 라만은 1년 전 그 지방 출신 전사 몇몇에게 탈레반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는데 그들은 얼마 못 가 경찰의 갈취행위에 넌더리를 내고 탈레반으로 되돌아갔다고 설명했다. “2년 전에는 이곳에 탈레반이 한 명도 없었다”며 “지금은 많은 주민이 탈레반을 지지한다. 공직 부패와 권력남용에 진저리를 친다”고 라만은 덧붙였다. 방화범들이 경찰의 얼굴에 먹칠을 더하는지도 모른다. 방화를 당한 라그만주 학교 중 최소한 두 곳의 경비원들은 괴한들이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라그만주 주민들은 딸들이 얻어낸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보안군은 병력이 모자라 미군과 나토군의 지원을 받더라도 모든 학교에 보초병을 세울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현지의 원로들은 여학교를 지지한다는 연판장에 서명하고 필요하다면 마을 사람들이 자체 경계를 서겠다고 약속했다. “탈레반은 비겁자들”이라고 카불 주둔 미군의 대변인 톰 콜린스 대령은 말했다. 그는 “그들은 정부군 병력이 적은 곳에서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학교 방화를 비롯한 탈레반의 공격이 급증하자 미군과 나토군, 아프가니스탄군은 아프가니스탄 남부 고지대 깊숙이까지 반격 작전을 펼쳤다. 누리아가 오는 가을 학교로 돌아가게 될지가 바로 이 ‘산악 진격 작전’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다. 누리아가 학교에 가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기동 newsw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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