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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한반도

소용돌이치는 한반도

공공연한 비밀을 얘기해 보자. 북한 기술자들은 몇 주 전부터 탄도 미사일 발사를 준비해 왔다. 전 세계의 정보 분석가들은 위성을 통해 이들을 예의 주시했다. 장비를 실은 트럭들이 시험 발사 기지인 듯한 장소로 드나들었다.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의 분노를 사리라고 미국의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 보좌관은 평양에 경고했다. 일본의 한 고위 정치인도 그 막연한 위협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대다수 한국인은 미사일 발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신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 응원에 열을 올렸다. 아 참, 그리고 광주에서의 기념식도 있었다. 남북한 대표단이 모여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6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 정상회담은 햇볕정책의 계기가 됐다. 햇볕정책은 경제 파탄에 빠진 북쪽의 공산주의 형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남한의 정책이다. 문제없는 정책이다. 양측이 새로 찾은 형제애를 축하하며 잇따라 축제를 열 동안 남한의 급진 대학생 연합은 각 대학 학생회에 보내는 지침서에서 ‘반미투쟁 물결의 가속화’를 촉구했다. 세종대의 김정원 석좌교수는 “햇볕정책은 북한 대신 남한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 이달 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 만난다.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회동이 성사되면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가 더 분명해질지도 모른다. 이번 회담은 역사적인 2000년 회담의 재연이다. 낙관론자들은 이를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6자회담은 북한이 보유한다고 추정되는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려는 다국 간 협상이다. 어느 때보다 이 회담의 의미가 크다. 이해관계가 갈수록 엇갈리며 회담 주역들 간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회담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점점 더 약해져 가는 북핵 제거의 필요성에 관한 국가 간 합의가 완전히 와해될지도 모른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한·미 군사동맹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는 아시아 지역 전체에 잠재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아마 DJ가 햇볕정책을 처음 구상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리라. 햇볕정책은 바람과 해가 한 남자의 외투를 벗기려 경쟁한다는 내용의 이솝 우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에 남자는 외투를 더 바짝 조일 뿐이지만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은 마침내 남자의 외투를 벗기는 데 성공한다. DJ는 비슷한 논리를 폈다. 남북한 간 반세기에 걸친 무력 대립 결과 북한의 공산 정권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강압적인 방법이 실패했다면 원조와 이해가 효과적일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그 방법은 한 가지 측면에서는 분명 주효했다. 오래전부터 비무장지대 너머에서 공산당을 선전하던 확성기는 사라졌다. 또 한 주가 멀다 하고 일종의 남북 회의가 열린다. 관료 또는 장성이 만나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이산가족이 감동적으로 만난다. 그러나 이 정책에는 어두운 측면도 있다. 우선, 내부 변화를 따지자면 북한은 남한이 보내 준 혜택을 받을 만큼 한 일이 별로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조심스럽게 개방의 가능성이 커지는 듯했다. 남한과의 화해,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 확대가 그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약효가 떨어지는 듯하다. 이달 초 북한 정부는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남북 간 철도 연결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대해 뭐라고 해명도 하지 않았다. 큰 기대를 걸었던 남한 사람들은 크게 낙담했다. 미사일 시험 발사 위협을 제외하면 그것은 지난 한 해 사이 가장 극적인 행동이었지만 북한 정부는 그런 입장 번복을 되풀이해 왔다. 최근 몇 달 사이 북한은 중국인 사업가들의 비자 발급을 의무화하고, 1990년대 대기근 때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했던 국가제도를 되살렸다. 그리고 일단의 해외 원조 단체들을 추방했다. 그러더니 지난 1월 그중 하나인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것은 일부 분석가 사이에 기근이 다시 확산돼 가는지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몇 달 사이 북한을 빠져나온 망명자들의 증언이 기근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일부 소식통은 전한다. 그것은 6자회담을 더욱 더 재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어떻게 재개한다는 말인가? 분명 몇 가지 희망적인 조짐이 있었다. 지난해 9월 회담 참가국들(남북한·중국·러시아·일본·미국)은 북한 핵 폐기 절차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반 협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 협정은 전혀 실행되지 않았으며 북한은 그 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불법적인 금융활동’(위조 지폐 제조와 돈 세탁을 의미함)을 후원한다고 주장하며 광범위한 압박공세를 펼친다. 북한은 미국이 그것을 중단하기 전에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또 다른 가능성은 지난 봄에 대두됐다. 미 당국은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장려할 목적으로 김정일 정부에 공식 평화협정을 제시할 의사가 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자 북측은 대화를 해보자며 미국 측 6자회담 대표를 평양에 초대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9월 협약의 실행 의지를 먼저 보여야 한다며 거부했다. 한편 일부 한국인은 남한이 북한과 독자적으로 정전협정에 서명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1953년 한국전이 끝났을 때 남한은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했다(서로 그렇게 살갑게 굴면서도 희한하게 양국은 공식적으로 아직 적대관계다). DJ가 평양을 방문할 때 가방 속에 비슷한 제안을 넣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 당국자들은 그 내용을 확실히 모른다는 인상이며 분명 그 아이디어가 달갑지 않은 듯했다. “DJ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줄 통로라고 보지 않는다”고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지난해 9월의) 공동성명에 (북한이) 무엇을 하면 무엇을 얻는지 열거돼 있다. 그 성명이 간단명료하다는 데는 모두 이견이 없는데 북한이 그를 따르지 않은 점이 못마땅하다.”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기 전에는 미국은 평화협정을 거론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그 미국 관료는 강조했다. “언론의 추측과 달리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평화협정을] 논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최근 햇볕정책이 어떤 식으로 적용됐는지를 보면 북한이 애당초 위험을 무릅쓰며 조금이라도 변화를 추구하려 할 만한 이유가 없을 듯하다. 5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강도를 한층 더 높였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 ‘조건 없이’ 북한에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관측통들은 크게 놀랐다. 어떤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으려 할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자는 게 바로 6자회담의 목적이라고 지금까지 가정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서둘러 노 대통령의 진의가 그렇지 않다고 미국 측에 해명했다. 부시 행정부의 아시아 전문가로 일했으며 지금은 워싱턴의 전략·국제연구소 연구원인 마이클 그린에 따르면 한국 당국자들이 그 발언의 복사본을 보여주며 그 발언은 일부만 발췌됐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사람들은 그 보고서에 불만을 나타냈지만 그것이 정책의 본질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한국 측은 설명했다). 이것이 정책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문제는 양국 간 비슷한 오해의 발생빈도가 갈수록 늘어나는 듯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아시아 지역 강국들 간의 공정한 ‘균형자’ 역할을 맡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을 때도 미국 정부는 기겁했다. 엄밀히 말해 잠재적인 전시 동지라고 여기는 사람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최근 들어 한·미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 구상을 놓고 티격태격 했다. 이것은 미국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어떤 해외 분쟁 지역에 주한미군을 파견해도 좋다는 개념이다. “한국 측은 대만을 둘러싼 미래의 미·중 간 긴장에 자신들이 휘말릴지도 모를 결정을 내려야 할까봐 더 걱정한다”고 에드워드 올슨은 말했다. 올슨은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 있는 미 해군 대학원의 한국 전문가다. 미국이 유연성을 바라는 이유는 사실 대만해협에서의 분쟁 가능성 때문이 아니지만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대만은 한국 정부가 안고 있는 불안의 근원이다. 한국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물론 이런 일들을 모두 햇볕정책의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대만을 둘러싼 불안감이 말해주듯 한국의 경제적인 대중(對中) 의존 확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최대 해외시장이며 그런 추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된다고 켄트 콜더는 말했다. 미 국무부 관리로 일했던 그는 현재 존스홉킨스 대학의 니츠 국제문제연구대학원에서 동아시아 문제를 연구한다. 향후 몇 년간 중국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한국 제품 수요가 증가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경제적 추세 때문에 한국의 대중 의존이 심화되며 중국이 잠재적인 보호자라는 느낌도 확산된다. 그런 느낌이 강해질수록 경제·정치적인 대미 의존은 약해진다.” 내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보수당 도전자에게 밀려나도 그런 변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올슨은 말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 성향의 새 대통령이 아마 대북정책의 시계를 되돌리려 하지도 않으리라고 한다. “앞으로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보수 정부는 미국 정부에 북한의 정권이 교체돼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어할 듯싶다.” 달리 말해 햇볕정책은 단순히 한순간의 임기응변이 아니라 더 깊은 필요성의 총체적인 표출이다. 그 때문에 한·미관계가 꾸준히 멀어져간다. 그런 현상은 양국 간 군사동맹의 경우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1년여 동안 전시에 미군과 한국군의 지휘권을 둘러싼 문제가 주요 현안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오래전부터 전시작전통수권의 한국 이전을 추진해 온 반면 미국 정부는 예상대로 반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입장이 바뀐 듯하다. 지난 3월 양국은 통수권 이양 가능성을 준비하려는 목적의 회담을 시작했으며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국 정부가 간섭하지 않으리라고 시사했다. 전직 의원으로 현재 안보 관련 연구소를 운영하는 장성민씨는 최근 미국 정부가 똑같은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한국 당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앞으로 5년 이내에 한국이 전시작전통수권을 맡을 것이라고 말해 이양 사실을 간접 확인했다. 한·미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론 그런 변화가 오랫동안 미뤄온 동맹의 ‘현대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수권의 한국 이양은 한·미 연합군의 사실상 해체를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미군 장교들은 한국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독립해도 좋다고 말해 왔다. “그러면 독자적으로 지상 작전 지휘권을 갖는다”고 미 국방부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입장을 설명했다. “우리가 공군력으로 지원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일부 관계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한국은 이미 6200억 달러 규모의 14년에 걸친 군 현대화 계획 청사진을 작성했다. 무기체제 현대화를 통한 자주 국방의 강화가 그 목표다. 하지만 병력은 크게 감축한다. 그 계획에 따르면 병력은 68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줄어들고 군단과 사단 수가 절반에 가까워진다. 지난 3년 동안 주한미군 수가 이미 3만7000명에서 2만9500명으로 줄어든 시점에 때맞춰 이런 야심 찬 개혁이 진행된다(주한미군은 2년 뒤에는 불과 2만5000명만 남는다). 남은 미군은 대부분 북쪽 비무장지대 근처의 현 위치에서 서울 남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한국의 장성들은 같은 수준의 억지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모두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철수는 미군이 전시에 ‘인계철선’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미군의 DMZ 근처 주둔은 항상 북한에 부담을 줬다. 그들이 전쟁에 개입되면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의 병력이 자동적으로 파견되기 때문”이라며 “이제 주한미군이 서울 이남으로 이동하니 북한이 좀 더 큰 모험을 하기 쉽다”고 서울의 한 국방 전문가는 말했다 한국은 아직도 미국의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자체 첩보위성이 단 한 개도 없다. 1년 전 한국이 글로벌 호크 무인 정찰기 네 대를 구입하려 했을 때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거래가 무산됐다. 정찰기를 이용해 입수한 정보를 관리할 때 엄격한 보안규칙을 적용하라고 한국 측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비밀을 한국이 북측에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한국과의 동맹이 약화됨에 따라 이제 미국 정부가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많은 분석가는 믿는다. “미국 정부는 더 이상 한국과의 동맹이 일본과의 동맹만큼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장씨는 말했다. “미국은 동북아 이해관계를 보호하려면 한국이 아니라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많은 한국인(특히 중장년층)은 변함없이 정부의 대북 화해정책에 깊은 회의를 품고 있으며 이웃한 중국보다 멀리 있는 미국을 더 가까운 친구로 여긴다. 양국 동맹관계에서 최근 나타난 일부 움직임은 별거에 들어가려는 부부의 행동처럼 보이지만 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미국이나 한국 정부 모두 완전한 결별에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DJ가 양국 동맹관계에 약간의 마법을 보여주기를 분명 양국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할 것이다. 차진우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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