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가 상팔자일까
무자녀가 상팔자일까
보수적인 유럽 국가에서도 자녀 안 낳기 바람 거세 일 중시하는 여성의 태도와 경제적 부담이 주 원인 아테네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콜로나키 광장의 멋진 다 카포 카페. 전문직으로 일하는 30대와 40대 초반의 그리스인들이 아이스 카푸치노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물론 그들의 인기 화제는 인간관계다. 이를테면 생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태도, 여성의 독립, 그리고 임신 시기 등이다. 하지만 요즘엔 아예 아이를 안 낳으면 어떨까 하는 문제가 갈수록 중요한 화제다. AP통신 아테네 지국에서 행정보조로 일하는 에이리니 페트로폴루(37)는 “시간이 갈수록 내가 아이 낳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러나 단지 아이를 낳으려고 결혼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자신의 ‘파레아’에게서 사회적 지원을 받는다. ‘파레아’는 같은 생각을 지닌 탄탄한 친구 집단을 가리키는 그리스 말로 그리스의 젊은층 사이에선 갈수록 가족의 기능을 대신한다. “만일 내가 45세에도 여전히 아이가 없다면 입양 등을 통해 홀로 아이를 기르는 방안을 생각해 보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지 여부에 그녀의 개인적 성취감이 좌우되진 않을 듯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페트로폴루와 그녀의 친구들은 이상한 사람들로 간주됐을지 모른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전통적인 사회 중 한 곳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되면 결혼을 통해 자손을 낳아야 한다는 그리스정교의 엄격한 교리 때문이다. 강력한 사회·종교적 금기 탓에 자식 없는 여성은 아이를 못 낳는 과년한 노처녀로 취급됐다. 중년의 나이에 홀로 사는 남성들의 성적 취향도 못마땅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러나 모두 지난 얘기다. 그처럼 탄탄한 사회적 규범도 불과 한 세대 만에 대체로 사라졌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이 더 나은 직장에서 일할 기회가 늘고, 그리스가 유럽연합(EU)의 주류 문화 속에 편입되면서 생긴 결과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결혼율은 EU 평균치를 밑돌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3명에 불과하다. 페트로폴루처럼 젊은 그리스인들도 당연히 아기를 좋아한다. 단 시기가 맞아야 한다. 하지만 아기가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세계 곳곳에서처럼 그리스에서도 아이를 갖는 문제는 더 이상 당연지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갈수록 늘어난다.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SE)에서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캐서린 하킴은 “아이 안 낳기가 지금처럼 지구 곳곳에서 남성과 여성의 합법적인 선택이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스위스와 싱가포르, 캐나다와 한국처럼 서로 이질적인 사회에서도 젊은층은 30대나 40대, 심지어 그 이상까지 출산을 미룸으로써 자녀가 없는 성인기를 늘린다. 따라서 아이를 전혀 갖지 않는 경우가 갈수록 증가한다. 대졸 학력의 서독 여성 중 30%가 평생 자식을 낳지 않는다. 그 비율은 저소득층 남성들에게선 급속히 높아간다. 영국에선 자녀를 낳지 않는 여성의 수가 20년 만에 두 배 늘었다. 출산율이 여성 1명당 1.25명에 불과한 일본에선 30세 여성 중 무려 56%의 경우 자녀가 없다. 1985년에 비해 24%나 증가했다. “그들의 출산 여부가 일본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일본 국립 인구연구소의 이와사와 미호는 말했다. 이런 추세는 무자녀의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영국에선 ‘무자녀가 좋은 이유’(가제·Child-Free and Loving It)와 같은 서적이 갈수록 많이 팔린다. 언론인 니키 드파고가 “자식을 안 낳기로 결정한 여성들에게 그런 생각이 지극히 정상적임”을 알리려 쓴 책이다. 밴쿠버에 위치한 ‘자녀 안 낳기 협회’(No Kidding·‘자녀가 없을 때의 재미가 장난이 아니다’는 뜻이 내포), 영국의 무자녀협회 등 자식을 안 낳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도 속속 생겨났다. 일본에선 출산을 연기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새로운 추세 때문에 각종 기발한 상품이 출현했다. 침구류 제조사인 카메오가 출시한 ‘남자친구 팔베개’가 좋은 예다. 그 외 애완용 동물 구입 붐도 크게 일었다. 젊은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이런 아기 대용품의 수요가 늘자 혼다사는 아예 아기용 좌석 대신 견공용 박스를 설치한 자동차를 설계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조수석 서랍엔 앙증맞은 발바리가 들어갈 공간까지 만들었다. 호주의 부동산 업자와 개발업자들은 무자녀가 새로운 가구 형태로 급증하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무자녀 가구는 대개 소비력이 더 높기 때문에 맨해튼과 런던 중심가 등 값비싼 주거 지역의 부동산값을 주도한다. 최근 영국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십대를 둔 가구가 이웃으로 이사 오면 집값이 5% 떨어졌다. 호텔도 이런 무자녀 붐을 활용한다. 이탈리아 시골의 라 베두타 휴양지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해방된 휴가를 보장한다”고 약속한다. 로마의 많은 레스토랑은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 더러는 18세 이상만 출입 가능한 “클럽”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무자녀 가구의 급증은 역사적 흐름과는 무관하다. 서유럽에선 수세기 동안 여성의 4분의 1이 자녀가 없었어도 그리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4분의 1이라면 요즘 어떤 나라보다도 높다). 사실 인구 통계학자들은 그처럼 낮은 출산율이 역전된 계기는 베이붐과 함께 가족이 중시되던 50, 60년대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엔 무자녀 현상이 대체로 빈곤이나 사회적 격동, 또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결과였다(자연적 불임률은 실제 3%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즘엔 각종 관계·직업 기회·생활양식·경제 등을 복합적으로 감안해 자녀를 낳는(또 낳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자녀가 없는 편이 정상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모든 사회 계층에 영향을 미친다. 전형적인 도시형 게으름뱅이든,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든 상관없다. 베를린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프리색에서 헤어스타일리스트로 일하는 카티 호프만(37)은 “아주 어렸을 때도 자녀를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옛 동독 지역에서 성장한 그녀는 특히 국가가 할당하는 아파트 입주권을 따내려면 결혼해 18세까지 임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유가 생겼다. 소방관으로 일하는 그녀의 남편 라스(39)도 아이를 낳는 문제엔 오랫동안 무관심했다고 말했다. “자녀를 둔 동료 소방관들은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 자녀를 낳아 독일인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높은 실업률을 보노라면 약간의 인구 감소는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자녀가 없는 가구는 미국과 서유럽의 대도시에선 오랫동안 보편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보다 전통적인 농촌 지역에서도 무자녀 가구를 바라보는 인식이 갈수록 좋아진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는 대가족과 끈끈한 가족의식으로 유명했다. 그런 관습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 나라의 출산율이 유럽에서 동률로 가장 낮다. 요즘엔 40세의 전체 이탈리아 여성 중 4분의 1 가까이가 앞으로도 계속 자녀를 갖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여성들의 자녀 안 갖기는 조용한 형태의 항의로 비춰지기도 한다. 자녀 안 갖기 ‘혁명’이 불어닥친 일본에선 맞벌이 여성을 돕는 제도가 거의 없다(최근 들어 다소 바뀌기 시작했지만). 아동 보호는 비용이 많이 들고, 남성은 가사를 돕지 않으며, 일부 기업은 여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복직을 거부하기 십상이다. 일본 여성들은 자식을 뜻하는 ‘고도모(子供)’가 고독을 뜻하는 ‘고도쿠’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일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의 저자 하이시 가오리는 “아이는 물론 소중하다. 그러나 일본에선 아이냐, 직장이냐라는 선택의 문제다”고 말했다. 부모 되기를 거부하는 쪽은 여성만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본 남성은 결혼이나 자녀 갖기에 훨씬 더 관심이 낮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경제적 요인과 더 많이 관련된 듯하다. 전문가들은 직업 불안과 일본의 경제적 미래를 향한 근심이 커지기 때문에 남성들이 가족 부양을 꺼린다고 말한다. 동시에 무자녀 현상을 두고 갈수록 거세지는 비난은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이 먼저 받는다.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국가의 도덕적 근간을 무너뜨리는 무자녀라는 ‘유행병’을 강력히 경고한다. 자식을 낳지 않기 때문에 인구 감소가 임박했고, 연금제도가 붕괴하며, 심지어 이민유입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논객들은 일가를 이루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회의 단물만 빨아먹는 남성들을 “기생 싱글족”으로까지 지칭했다. 아이를 안 낳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25%) 독일에선 인구감소에 따른 재앙을 경고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대거 포함됐다. 보수적 논객 프랑크 쉬르마흐는 근저 ‘미니멈’에서 “무자녀의 악순환”을 설명했다. 인구가 줄수록 자녀 갖기를 더욱 꺼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언론들도 “냉혈의 전업여성”들이 자녀보다 자신의 일을 더 중시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최근엔 아이를 낳지 않은 유명 여성들의 기사까지 실렸다(얼굴 부분은 검은색으로 처리). 독일이 아동보호 시설이나 남성의 가사 돕기 수준이 인접국들에 뒤처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독일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자녀 안 낳기를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월 슬로바키아에선 정부의 ‘경제개발 전략회의’에서 일하는 한 주요 고문이 이런 제안까지 내놓았다.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급여세 대신 25~50세 연령의 무자녀 국민 모두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이다. 출산율이 80년대 2.3명에서 최근 1.3명으로 줄어든 러시아에선 관련 업계에서 무자녀 부부에게 소득세를 추가로 부담하도록 하자는 강력한 로비를 벌였다. 독일에선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 무자녀 부부들에겐 정부 연금을 50%까지 줄이자고 요구했다. 사실 그런 연금은 의지할 자녀가 없는 노인들을 도우려 고안됐지만 말이다. 이런 움직임은 유권자와 언론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나라의 인구 다수는 여전히 자녀를 뒀기 때문에 그 같은 조치는 결국 사회정책을 가장한 중산층 감세책으로 활용될 염려도 있다고 비판자들은 말한다. 어떤 경우든 간에 무자녀 제재가 출산율 증가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예컨대 독일은 이미 가족 보조금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이 지급되며, 무자녀 독신자에 부과되는 세금도 이미 세계에서 둘째로 높다(1위는 벨기에). 그럼에도 그런 방식으론 출산율을 조금도 높이지 못했다. 사실 비판자와 인구 통계학자들은 무자녀 국민에게 화살을 돌리는 정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LSE의 하킴은 “무자녀가 저출산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 대신 수많은 연구가 보여주듯 저출산의 진짜 원인은 가족의 크기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저출산 국가의 경우 자녀를 둔 사람도 서너 명 대신 한 명이나 기껏 두 명이 고작이다. 이탈리아와 일본에선 자녀를 둔 여성의 약 80%는 자녀 수가 한 명에 불과하다. 핵가족 역시 현대적 생활양식이 초래한 선택이다. “자식을 한 명만 낳으면 부모와 사회적 기대에서 해방되면서도 자신의 생활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하킴은 말했다. 대중적 논쟁엔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하킴은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무자녀를 다시 죄악시하는 태도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사랑 박사’ 유웨이샹은 무자녀 부부들에게 아예 낭만적인 크루즈 여행을 떠나보내자고 제안했다(그러면 임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테니까). 그러나 그런 방법보다는 정부가 이미 한두 명의 자녀를 둔 부부에게 또 한 명의 자녀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하킴과 같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각국 정부는 프랑스의 예를 본받아야 할지 모른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자녀 수가 서너 명인 가구들에 아동 보조금을 대폭 인상했다. 여성들에게 보다 일찍 자녀를 낳도록 유도하는 일도 해결책이 될지 모른다. 여성의 난자를 보다 오랫동안 보존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35세를 넘으면서 급감한다. 이미 자녀를 둔 여성의 경우 첫 임신 평균 연령은 1971년 24세에서 최근 30세로 높아졌다. 비엔나 인구통계연구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30대 후반이나 그 이상의 나이에 아이를 낳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 일례로 그리스의 경우 평균 출산율은 1.3명이지만 60년에 태어난 여성(46세)의 경우엔 1.9명이다. 이탈리아는 60년에 출생한 여성의 출산율은 1.7명이다(다른 연령에선 1.2명). 독일도 60년생 여성의 출산율은 1.6명인 데 비해 다른 연령에선 1.4명이다. 결국 무자녀 현상이 실제론 늦은 임신의 결과라는 뜻이다. 그러나 ‘늦은’은 곧잘 ‘결코’로 바뀐다. 무자녀 부부는 대부분 임신까지의 시간을 너무 오래 끈다. 다시 말해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는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토머스 소보트카는 지적한다. 그는 비엔나 인구통계연구소의 연구자이자 곧 출간될 젊은 유럽인의 출산 의향에 관한 책의 저자다. 사실 평생 자식을 낳지 않을 비율은 첫 임신 연령과 함께 서서히 높아진다. 더 작은 가족에서 성장하면 할수록 장래 출산 계획에도 영향을 끼친다. 최근 젊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상적인 가족의 크기는 계속 작아진다. 따라서 기존의 인구를 유지하기조차 힘든 나라도 갈수록 는다. 커피숍에서 부부들은 변화하는 자신들의 관계뿐 아니라 일과 가족 간의 균형을 찾으려는 끝없는 투쟁을 두고 논의를 계속할 듯하다. 소보트카는 “새로운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균형점은 에이리니 페트로폴루 같은 사람들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With TOULA VLAHOE in Athens, BARBIE NADEAU in Rome, SILVIA SPRING in London, AKIKO KASHIWAGI in Tokyo, KAREN SPRINGEN in Chicago and TRACY MCNICOLL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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