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표 칼럼] 철 지난 복지 분배정책 버려라
[홍세표 칼럼] 철 지난 복지 분배정책 버려라
우리나라에서 문제되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 현상은 이를 파악하는 주체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르다. 따라서 복지에 중점을 둔 현 정부의 분배우선 정책도 그 목적에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 투자위축, 고용시장 악화, 분배 구조 왜곡이라는 악순환으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그래서 성장위주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반대론자도 있다. 과거 정부의 성장위주 정책이 빈부의 양극화를 야기, 조장시켰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는가? 있다면 가진 자에 대한 중과세, 못 가진 층에 대한 복지 지원 등으로 뜯어고치면 되는 것이라는 단순논리가 현실경제에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양극화 극복도 쉽게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 또는 양극화 확대 문제는 90년대 들어서부터 다루어져 오고 있다. 양극화라는 어휘는 빈부 격차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온 현 정부가 만들어낸 단어고 어느덧 빈부 격차 확대를 다루는 어휘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도 선진국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적 경향이다. 일개 정권이나 이들이 시행하는 경제 대책에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제국에서도 최근 소득 격차가 현저히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근대화 사회에 있어서의 소득 격차는 부유층에 의한 약자 착취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대량생산, 다량소비의 공업사회에서 소득 격차를 수용하는 태도에 큰 문제가 없었다. 연공서열, 종신고용제도에서는 비록 젊은 층의 소득이 낮더라도 장차 진급하면 소득이 높아진다는 전망이 있었다. 노동생산성의 차이에 의한 수입 격차는 있었지만 모든 취업자의 노동생산성이 상승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격차 자체가 큰 문제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양극화는 전 세계적 현상 그러나 로버트 라이슈가 지적한 ‘포스트 공업사회’ 도래에 즈음한 지배적 경제양식, 즉 ‘뉴 이코노미’ 시대의 특징은 노동생산성의 고하에 따른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대량생산이 대량소비로 연결되는 등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생산비용을 감축해 다양한 기호를 가진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며 창조력·상상력·정보력·미적 감각을 보유한 전문노동자가 각광을 받는 세상이 됐다. 이제 매뉴얼에 따라 일하던 단순노동자의 지위는 아예 임시직으로 전락하고 마는 사회로 이미 진입한 것이다. ‘뉴 이코노미’가 정의하는 것은 빈부 격차를 야기하는 노동생산성의 구조가 변화해 높은 노동생산성을 발휘하는 층과 낮은 수준의 노동생산직에 얽매게 되는 층의 분화가 진행되게 되는 것이 오늘날 격차 문제의 참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이 시장에서 평가받은 결과 수입 격차가 확대되는 흐름을 무리하게 막으려 한다면 노동시장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효율적 생산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력해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층은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다. 가장 전형적인 층이 비정규직 젊은이들이다. 정형화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은 오르지 않는다. 기업으로부터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정규 직원으로 편입되어 생산성이 높은 자리로 옮겨 앉을 기회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정규직과의 수입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자유주의자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면 각자 노력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해도 ‘뉴 이코노미’에 의해 노동생산성이 차등화되는 현 상황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이 모순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있고, 그 부작용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시대역행적 모순으로 치닫게 될 개연성이 크다. 오마에 겐이치 전 매킨지 대표는 “이제부터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국가 대 국가, 기업 대 기업, 또는 계층 간의 싸움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요, 능력 대 능력의 싸움이 될 것인즉 우수한 개인들 간의 싸움이 모든 것을 흡수해 순간적으로 세계 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더구나 싸움의 상대는 세계 정상 수준의 두뇌일 수 있고 이 두뇌는 어디서 출현할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비상식적 돌연변이 시대 20세기의 상식과 비교하면 21세기는 비상식과 돌연변이의 시대다. 구시대의 상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새로운 세계의 사건들을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앞을 내다보는 선견적 능력 배양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회심리학자 넷세의 희망론의 테제를 기초로 해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보답이 없다”는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경제개혁의 본질은 ‘고정관념의 타파를 교묘하게 피하더라도 보상받는 층’의 발생을 방지하는 개혁인 것이다. 따라서 천편일률적으로 못사는 사람을 지원한다는 우리 정부의 복지적 분배 정책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못사는 층이라도 노력하면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다는 인센티브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빈부 격차 축소에 손댈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직종 종사자 층의 고정화를 피해야 한다. 개인단위로는 자기 연수 등을 통한 노력만 하면 정규직 편입도 가능하도록 교육 훈련의 기회를 주고 기득권 정규직(특히 귀족적 노조)의 워크-셰어링(work-sharing)을 제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장려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북유럽 각국은 복지선진국 지향 정책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본격적인 IT 사회의 도래에 대비해 80년대에 이미 교육제도를 전문화 교육으로 대개혁하고 그 후 산학연대, 관민 역할 분담을 통한 벤처기업 지원 등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 적기에 IT 사회에 맞는 법 정비를 서둘러 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스웨덴에서조차 대폭 수정하고자 진통을 겪고 있는 철이 지난 복지 분배 정책을 뒤늦게 배우고자 하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그 나라의 전문화 교육의 진면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대립개념이 함축되어 있는 양극화 해소 방안은 수정을 요한다. 특히 복지를 위한 분배정책은 글로벌 흐름에 거슬리는 낭비적 요소가 큰 잘못된 정책으로 이는 성장정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본다. 이미 21세기의 변화를 예측한 선현들이 한결같이 분배·복지정책의 함정에서 벗어나 각자(기업 포함)가 비상식과 돌연변이의 시대에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제약을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단정하고 있음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사망 직전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인터넷 보급에 따라 국경이 없어지고 나라와 나라 간의 거리가 제로가 되었다. …언어의 벽만 뛰어 넘는다면 세계 도처의 모든 정보가 즉시 입수되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말(The Last Words)은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전문인력 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는 평준화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전문가 양성에 바탕을 둔 차별화 교육, 전문화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장차 우리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드러커의 유언에는 “비록 장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예측 가능한 장래란 기껏 앞으로 2년 앞 정도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25년을 내다 본, 그나마 복지와 분배라는 시류에 거슬리는 ‘비전2030’은 낭비의 극치로밖에 볼 수 없는 바 이를 방기하기 바란다. “변화란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누구나 지니는 상식의 틀에 반해서 내습할 수 있다”는 그의 또 다른 경구도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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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는 전 세계적 현상 그러나 로버트 라이슈가 지적한 ‘포스트 공업사회’ 도래에 즈음한 지배적 경제양식, 즉 ‘뉴 이코노미’ 시대의 특징은 노동생산성의 고하에 따른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대량생산이 대량소비로 연결되는 등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생산비용을 감축해 다양한 기호를 가진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며 창조력·상상력·정보력·미적 감각을 보유한 전문노동자가 각광을 받는 세상이 됐다. 이제 매뉴얼에 따라 일하던 단순노동자의 지위는 아예 임시직으로 전락하고 마는 사회로 이미 진입한 것이다. ‘뉴 이코노미’가 정의하는 것은 빈부 격차를 야기하는 노동생산성의 구조가 변화해 높은 노동생산성을 발휘하는 층과 낮은 수준의 노동생산직에 얽매게 되는 층의 분화가 진행되게 되는 것이 오늘날 격차 문제의 참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이 시장에서 평가받은 결과 수입 격차가 확대되는 흐름을 무리하게 막으려 한다면 노동시장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효율적 생산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력해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층은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다. 가장 전형적인 층이 비정규직 젊은이들이다. 정형화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은 오르지 않는다. 기업으로부터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정규 직원으로 편입되어 생산성이 높은 자리로 옮겨 앉을 기회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정규직과의 수입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자유주의자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면 각자 노력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해도 ‘뉴 이코노미’에 의해 노동생산성이 차등화되는 현 상황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이 모순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있고, 그 부작용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시대역행적 모순으로 치닫게 될 개연성이 크다. 오마에 겐이치 전 매킨지 대표는 “이제부터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국가 대 국가, 기업 대 기업, 또는 계층 간의 싸움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요, 능력 대 능력의 싸움이 될 것인즉 우수한 개인들 간의 싸움이 모든 것을 흡수해 순간적으로 세계 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더구나 싸움의 상대는 세계 정상 수준의 두뇌일 수 있고 이 두뇌는 어디서 출현할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비상식적 돌연변이 시대 20세기의 상식과 비교하면 21세기는 비상식과 돌연변이의 시대다. 구시대의 상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새로운 세계의 사건들을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앞을 내다보는 선견적 능력 배양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회심리학자 넷세의 희망론의 테제를 기초로 해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보답이 없다”는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경제개혁의 본질은 ‘고정관념의 타파를 교묘하게 피하더라도 보상받는 층’의 발생을 방지하는 개혁인 것이다. 따라서 천편일률적으로 못사는 사람을 지원한다는 우리 정부의 복지적 분배 정책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못사는 층이라도 노력하면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다는 인센티브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빈부 격차 축소에 손댈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직종 종사자 층의 고정화를 피해야 한다. 개인단위로는 자기 연수 등을 통한 노력만 하면 정규직 편입도 가능하도록 교육 훈련의 기회를 주고 기득권 정규직(특히 귀족적 노조)의 워크-셰어링(work-sharing)을 제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장려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북유럽 각국은 복지선진국 지향 정책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본격적인 IT 사회의 도래에 대비해 80년대에 이미 교육제도를 전문화 교육으로 대개혁하고 그 후 산학연대, 관민 역할 분담을 통한 벤처기업 지원 등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 적기에 IT 사회에 맞는 법 정비를 서둘러 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스웨덴에서조차 대폭 수정하고자 진통을 겪고 있는 철이 지난 복지 분배 정책을 뒤늦게 배우고자 하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그 나라의 전문화 교육의 진면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대립개념이 함축되어 있는 양극화 해소 방안은 수정을 요한다. 특히 복지를 위한 분배정책은 글로벌 흐름에 거슬리는 낭비적 요소가 큰 잘못된 정책으로 이는 성장정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본다. 이미 21세기의 변화를 예측한 선현들이 한결같이 분배·복지정책의 함정에서 벗어나 각자(기업 포함)가 비상식과 돌연변이의 시대에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제약을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단정하고 있음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사망 직전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인터넷 보급에 따라 국경이 없어지고 나라와 나라 간의 거리가 제로가 되었다. …언어의 벽만 뛰어 넘는다면 세계 도처의 모든 정보가 즉시 입수되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말(The Last Words)은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전문인력 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는 평준화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전문가 양성에 바탕을 둔 차별화 교육, 전문화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장차 우리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드러커의 유언에는 “비록 장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예측 가능한 장래란 기껏 앞으로 2년 앞 정도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25년을 내다 본, 그나마 복지와 분배라는 시류에 거슬리는 ‘비전2030’은 낭비의 극치로밖에 볼 수 없는 바 이를 방기하기 바란다. “변화란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누구나 지니는 상식의 틀에 반해서 내습할 수 있다”는 그의 또 다른 경구도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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