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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결단] “서울역 옥상서 2억을 뿌려?”

[CEO의 결단] “서울역 옥상서 2억을 뿌려?”

“파업 대응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원칙을 지키는 쪽에 섰습니다. 불법 파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노조와 타협하기보다 국민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철도공사는 방대한 조직이다. 정규직만 3만2000여 명, 계열사를 포함하면 4만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한다. 그것도 전국 650여 개의 기차역·차량기지에 흩어져 있다. 2005년 6월 취임한 이철(59) 사장은 “그래서 의사소통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노조 간부인 A씨가 “근무시간을 초과했다”며 레일 위에 기차를 세워두고 퇴근해버렸다. 지난해 6월 충북 음성에서 벌어진 촌극 아닌 촌극이다. 당연히 본사에서는 “중징계를 해야 한다”며 핏대를 올렸다. “알고 보니 노조원만의 잘못이 아니더군요. 노조 쪽에서는 초과근무에 대해 수없이 개선을 요구해 왔는데 회사에서는 이것을 못들은 척했던 겁니다. 이런 오불관언(吾不關焉) 행태에 대해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이었습니다.” 이 사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원과의 간담회 시간에서였다. 수백 명의 직원 앞에서 질의응답을 하던 중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이 사장은 “본사 측에 문제가 있었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A씨 역시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다행스러웠습니다. 상대의 문제를 인정하고 얼굴을 맞댈 정도로 신뢰를 쌓았다는 점이 중요해요.”

“ KTX보다 더 빠르게 달려온 느낌”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사장은 ‘낙하산’이다. 3선 의원 출신인 그에겐 “여기에 오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한다. 10년 넘게 정치 인생을 같이 해온 후배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철도공사 사장직에 지원했다고. “(사장에 취임한 것이) 때마침 이른바 ‘오일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였어요.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간부 중에 검찰에 소환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일부는 구속되고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지요.”



“다음을 돌보지 말라”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옳은 판단이다 싶으면 ‘다음’을 돌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철도공사 사장 자리만 하더라도 공직자들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가는 임시직으로 여기기 십상이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눈치만 보고 결단이 없었다. “한때는 항운노조 간부가 (집무실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발 올리고 협박하면 ‘내 돈 아닌데 일단 사인하자’는 CEO도 있었습니다. 여기가 내 마지막 자리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가뜩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트레이드마크인 공무원 조직. 2005년 1월 공무원에서 ‘제대’해 공기업으로 거듭난 철도공사에는 자칫 잘못하면 회사에서 쫓겨나고 수갑까지 찬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아무도 위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18개월은 이 사장에게 “KTX보다 더 빠르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취임하자마자 4명의 상임이사 전원에게 사표를 받은 것이‘쓰라린 결단’이라면 지난해 3월 철도 파업 때 2000명이 넘는 노조원을 직위 해제한 것은 ‘초강수 결단’이었다. 그의 이런 초고속 결단은 조직을 경쟁하는 구도로 바꾸었고, 철도 파업을 나흘 만에 잠재우는 ‘괴력’으로 나타났다. “(상임이사 교체는) 개혁을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본사부터 지방 조직까지 회사를 완전히 경쟁 구도로 바꾸는 과정이었지요. 사표를 받는 일이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강행했습니다. 파업 대응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원칙을 지키는 쪽에 섰습니다. 불법 파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노조와 타협하기보다 국민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은 가장 보람 있는 결단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뜻밖에’ 소화물 사업 폐지를 꼽는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5월 1일자로 철도 소화물 운송 사업을 중단했다. 소화물 운송은 1988년 이래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철도공사의 ‘골칫거리’ 사업. 도로를 이용하는 택배 사업이 커지면서 철도 수송 비중이 줄어든 탓이다. 연간 적자 규모가 650억원대였다. 누적 적자가 5000억원을 넘었다. 이 돈은 고스란히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메워졌다. “소화물 취급 수입보다 상·하차 용역비, 창고 관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요. 전국 읍·면 단위까지 택배 네트워크가 촘촘히 구축돼 있어 철도 소화물 사업을 중단해도 고객이 느끼는 불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니까 문제의식 없이 반복하는 것이지요. 장부상 하루 2억원씩,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이 새나가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2005년 10월 이 사장은 임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호통쳤다. “서울역 옥상 위에서 우리 직원들이 하루 2억원씩 뿌린다고 해보자. 누가 이것을 보고만 있겠느냐. 당장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연간 600억원씩 적자가 나는 사업을 20년 동안 계속한다? 민간 기업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범죄행위다.” 철도공사는 7개월 후 소화물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사업을 새로 벌이지 않고도 연간 600억원의 돈을 번 것이다. 이 사장은 “유휴 시설을 활용하면 부대 수익 창출도 기대할 수 있어 2000억~3000억원은 번 셈”이라고 말했다.

사업 중단만으로도 1000억 벌어… 대전의 주물공장도 마찬가지였다. 37명이 배치된 이 공장에선 철도 차량에 필요한 철제 부품을 주로 생산해 왔다. 이 사장이 보기엔 이곳 역시 문젯거리였다. 필요한 주물은 외국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게다가 근무 환경도 열악한 주물공장을 굳이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알고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 노조가 반대해서다. 공장 문을 닫으면 37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이 사장은 “재배치 교육을 100% 책임진다”는 조건을 붙여 간신히 공장 문을 닫았다. 이 사장은 “그동안 공사는 ‘정부 예산 왕창 따다가 정확히 집행만 하면 끝’이라는 공무원 업무에만 익숙했지, 비용과 수익 따지는 것을 몰랐다”며 “소화물 사업 폐지, 주물공장 폐쇄는 임직원들에게 기업 마인드가 무엇인지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년에 이 사장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사업은 차량기지 구조조정이다. 올해 상반기 중에 외국 철도의 영업거리, 외형, 매출과 비교해 우리가 과연 적정한 차량기지를 보유하고 있느냐, 여기에 투입된 장비나 인원은 합리적이냐 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받을 작정이다. 연간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의 금액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하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하려면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리더십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사람의 리더만으로 조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임직원 스스로 개혁 과제를 찾아내야지요. 철도공사의 18개월 개혁은 그래서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이철은 기업가? 1948년 경남 진주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69학번이지만 삼선개헌 반대,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19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12,13,14대 의원을 지냈으며 2005년 6월 철도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정치인 이철’로 알려져 있지만 생계를 위해 군고구마 장사부터 잡지 발행인, 택시 운전, 칼국숫집 사장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김원웅·박계동 의원과 생고기집 ‘하로동선’을 개업한 것이 유명하다. 이 사장에게 기업가 마인드를 키워준 것은 벽산그룹에서의 봉급쟁이 생활. 76년부터 3년 동안 벽산 계열의 컴퓨터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말단사원에서 부장 직무대리로 초고속 승진한 경험이 있다. 한 번은 고 김인덕 창업회장 앞에서 계열사 전략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리급이던 이 사장이 3박4일 동안 커피만 마시면서 사업 계획을 짰다고. 그의 브리핑을 듣자 고 김 회장이 “저 사람이 누구냐. 3계급 특진시켜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결론은 집중력입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살펴보면 업(業)의 개념이 보이고, 결국 군더더기를 없애게 됩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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