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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오툴 이번엔 상 탈까

피터 오툴 이번엔 상 탈까


50년 영화 인생에서 일곱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만 오른 노배우 실내에 들어오는 피터 오툴(74)을 보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걸음걸이는 불안하고,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는 나이 탓인지 축축해 보였다. 강풍이 불면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셔츠 칼라는 멋지게 각을 세웠고, 보기 좋은 아스콧 타이를 맸다.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입을 여니 달콤한 소리가 나온다. 음성은 여전히 강력하고 낭랑했다. 군데군데 허물어지기는 했어도 아직은 꿋꿋이 버티는 큰 건물이다. 오툴이 너무나 익숙한 배역으로 돌아왔다. 또 한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비너스(Venus)’에서 젊은 여인과 복잡한 관계를 엮어가는 왕년의 미남 비극배우로 나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툴로선 여덟 번째 지명이며(단 한번도 탄 적이 없다), 만일 이번에도 상을 놓친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기를 빌어주자. 뉴스위크의 니키 고스틴 기자가 만났다. ‘비너스’는 연상의 이성과의 관계를 소재로 삼은 전형적인 영화가 아닌데. 지저분한 노인네와 몸이 헤픈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뻔한 두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겉보기와 다르다. 놀라운 내용이 있고, 멋진 유머도 담겼으면 좋겠다. 그 영화 때문에 본인의 죽음을 생각해 봤나? 천만의 말씀. 주소가 전혀 다르다. 수도 새는 곳을 찾아낸 배관공에게 새삼 전립선암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 식이다. 영화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당신의 옛 사진을 보면서 “왕년엔 멋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당신은 아주 멋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다. 젊고 허영심이 많을 때, 또 젊은 남녀가 다 뭐 그렇고 그럴 때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술은 여전한가? 전처럼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난 밤엔 스카치를 근사하게 마셨다. 다만…. 좋은 시절이었고 한 방울도 후회하지 않는다. 리처드 버튼과 ‘베켓(Becket)’을 찍을 때 16주 동안 술 한잔 입에 대지 않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촬영이 끝난 날 밤, 참 맙소사. 버튼과 누가 술이 센지 겨뤄 먼저 뻗게 만들 능력이 됐나? 우린 서로 쓰러뜨릴 능력이 안 됐다. 그러면 무승부? [웃음] 그렇다. 하룻밤 자리에서 마셔본 최대 주량은? 맙소사, 그걸 어떻게 기억하나. 책에 이렇게 썼다. “파리의 단골 술집에 들어가 코르시카에서 눈을 뜬 경험이 있는가?”라고. 그러니 상상을 해보라. 눈을 떠보니 섬이더라고! 도랑에서 눈을 뜨는 사람도 있고,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도 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사람들이 술을 잘 마셨다. 다들 그렇게 했다. 모두 죽어라 들이켰다. 결혼은 했나? 당연히 안 했지! 만나는 사람은? 당연히 없고! 사람이 그립지 않나? 천만의 말씀! 정말인가? [웃음] 내가 이렇게 힘주어 말할 땐 빈말이라는 뜻이다. 난 독신자 체질이다. 하지만 결혼한 전력이 있잖은가. 그렇다. 그러나 원래 독신자 체질이다. 여자와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늘 그랬다. 좀 더 많은 여자와 함께 있고 싶다. 그러나 특별히 어떤 여자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혼이란 몹시 어려운 제도다. 내겐 맞지 않는다. 다들 늙으면 늙을수록 배역이 줄어든다고 불평한다. 물론 늙은이들에게 돌아갈 배역은 줄어든다. 하지만 흔들의자에서 떨어지는, 코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할아범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좋은 친구들이 남았나? 모두 떠났다. 아니, 한 명 남았다. 지난해 네 명을 묻었다. 그리고 그게 참 여간 불편하지 않다. 장례식에 쫓아다니는 일 말인가? 그 이야기가 아니다. 난 글 쓰기를 좋아한다. 가령 한 장(章)을 마쳤다고 치자. 이렇게 생각한다. 과히 나쁘지 않군, 론에게 전화나 해 볼까. 그제야 론이 죽었다는 기억이 난다. 내 생각도 좀 해주지, 다들 나보다 먼저 죽다니. 의사가 운동하라는 말은 안 하던가? 2년 전 몸이 좀 안 좋아 의사에게 갔더니 운동을 하란다. 그래서 세인트존스 우드에 있는 크리켓 스쿨에 가서 6주를 보냈다. 컨디션이 정말이지 아주 좋아졌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일어나 생각했다. 눈을 떴는데 일을 안 해도 된다니 얼마나 신나는가. 침대에서 뛰어나와 신발을 신다가 넘어지면서 고관절을 다쳤다. 그게 건강한 건가? 요즘도 셰익스피어를 읽나? 침대맡에 소네트를 놔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과대 평가됐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많이 상연된다. 왕립 개뿔 셰익스피어 극단이라니. 멋진 걸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 10편 남짓인데 거지 같은 37편을 몽땅 상연하다니 말이 되나? 이번에 아카데미상을 탈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보나? 5대 1, 아니면 4대 1 아니겠나. 그 정도일 테지. 이번에는 탈 듯한데. 50년 동안 들어온 소리다.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을 때 진짜 상을 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데. 당연히 받고 싶지! 공로 어쩌고 그런 상은 필요 없다. 내게 일거리와 성의를 다할 기회를 준 다음 사람들이 돈이나 훈장을 수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좋다. 그러나 은퇴하면서 받는 금시계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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