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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얘기’흘려듣지 마라

‘세입자 얘기’흘려듣지 마라

10년 넘게 매주 두세 차례씩 경매법정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경매 선수들’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 경매 과정과 절차는 복잡다단하다 보니 예측 불허의 상황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경매 이론을 익히고, 실제 낙찰 경험을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솔직히 컨설팅을 하면서 아찔한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위험한 순간들이었고 좀 더 꼼꼼하게 일처리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있다. 그래서 역시 경매는 하면 할수록 조심스럽다. 물건마다 하나하나 절차를 밟아 나가면서 사소한 실수를 범할 때마다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지껏 일하고 있다. 경매물건은 국가기관인 법원이 파는 부동산이다. 따라서 누가 한 물건에 대해 조사하고 입찰한다면 그 물건에 대해서는 완벽한 정보를 미리 얻은 후에 입찰해야 한다. 법원은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은 투자자에게 모든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든 하자에 대해 100% 다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법원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모든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다. 이번 글에서는 컨설팅하면서 발생했던 나의 실수담을 소개할까 한다. 충청도에 있는 모 공기업에 근무하다 퇴직을 눈앞에 둔 A씨가 있었다. 늦게 결혼해 자녀가 어리다며,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값싸게 나온 임대용 부동산을 몇 개 장만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투자 가용 금액은 3억원가량. 이 돈으로 서울 도심 부근에 주택을 싸게 사 세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사무실에 들러, 추천해 주는 물건을 보고 충청도로 다시 내려가곤 했다. A씨가 낙찰받았던 한 경매물건 사례다. 서울 북부법원에서 경매에 부쳐진 단독주택. 위치는 동대문구 이문동이고 대지 21평에 건평 36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에 옥탑방이 있으며 1995년에 지어져 외관상으로는 다소 허름한 다가구주택이다. 최초 감정평가액은 1억2589만원인데 2회 유찰돼 최저 경매가가 8057만원(감정가의 64%)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4명이 입찰한 끝에 A씨가 차순위자보다 40만원을 더 써내 아슬아슬하게 9350만원에 낙찰을 받았다. 이 물건의 특징은 국철 외대역과 가까운 역세권에 있다는 것이다. 이 집의 권리관계도 간단한 편이었다. 경매를 부친 채권자는 1층에 세들어 사는 사람인데, 전세금을 못 받아 강제경매를 부친 사건이었다. 신한은행 강남중앙지점의 저당권이 가장 먼저 설정됐고, 이후에 국민카드와 가압류 등이 몇 건 있었지만 낙찰 후에 깨끗하게 소멸되는 것이었다. 이 물건을 A씨에게 추천해 준 이유는 투자금액이 그리 크지 않지만, 지상은 물론 지하와 옥탑방까지 세를 줄 수 있는 알짜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대학가에 위치해 임차수요는 넉넉할 것이라 판단했고, A씨도 투자금액에 비해 전월세 수익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해 흡족해했었다. 4개 층에서 세가 나오는 주택이니 임대수익만큼은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찰 전에 나는 이 주택에 들러 세입자들을 두루 만나 보았다. 통상 다가구와 단독주택 같은 세입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주택의 경우 입찰 전에 반드시 세입자들을 만나 그들의 성향과 명도저항 여부, 점유 실태 등을 확인해 보고 명도에 어려움이 없을지를 조사해야만 한다. 입찰 며칠 전 세입자를 죽 만나 보던 중에 지하 세입자를 만나 보니 “경매까지는 안 갈 거예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전세금을 못 받은 1층 세입자의 돈을, 2층 세입자가 대신 갚아주고 경매계에 경매집행 정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몇 번이나 2층 세입자를 만나고자 했지만 번번이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상 채무자와 세입자들은 거짓말을 잘했다. 세입자들의 거짓말 유형은 첫째가 집주인이 돈을 다 갚아 경매가 없었던 게 될 거라는 말이다. 둘째는 집주인이 채권자와 합의를 통해 곧 경매를 푼다는 말이다. 셋째는 위장 임차인 또는 전입신고만 한 임차인이면서도 ‘전세금을 몽땅 날렸으니 낙찰자가 돈을 물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이들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그 당시에도 나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 “또 거짓말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어렵게 낙찰받은 후 잔금납부 통지서를 받아 기한에 맞춰 은행에 잔금을 납부한 다음 날 A씨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 왔다. 담당 경매계장이 나랑 통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경매계장하고 통화를 하는데 첫마디가 “한 번 살려주세요!”였다.

집행정지 된 집을 실수로 경매 경매계장 말이 이랬다. A씨가 낙찰받은 물건이 경매집행 정지가 결정된 사건이었는데, 계장 본인의 실수로 그만 경매를 진행했고, 잔금납부를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인데 잔금까지 납부했다는 것이다. 경매계장은 또 “내가 곧 법무사로 나갈 예정인데 만약 이 건 때문에 징계를 받는다면 내 인생은 끝장”이라며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닌가? 경매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 시기는 낙찰 대금을 완납한 때이다. 경매계장 입장에서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벌어진 게 아닌가? 사연은 이랬다. 경매를 부친 1층 세입자는 당시 대학생이었다. 전세보증금 만료 시점에 맞춰 외국에 어학연수를 가려 했는데 옥탑에 사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자 절차에 따라 경매를 부친 것이다. 그런데 이 주택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2층 세입자가 이 학생의 전세금을 대신 갚아 경매를 취소시켜버린 것. 2층 세입자는 건축업자인데, 몇 건 안 되는 저당과 가압류를 풀고 집을 직접 매입하려는 구상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집주인이 방 한 칸짜리 옥탑에 산다는 것은 그 집주인이 채무를 변제할 능력을 잃어버려 껍데기만 주인이란 얘기다. 경매계장 얘기를 듣자 A씨는 펄쩍 뛰었다. 잔금까지 납부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소유권등기를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가 내 입장이라면 누구 편을 들어줄까? 나는 경매계장 편을 들어주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경매물건은 많은데 굳이 퇴직을 앞둔 한 공무원의 인생을 꼬이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경매계장은 A씨에게 합의금까지 주겠다고 했다. 거금의 합의금을 주고 경매가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며 A씨의 마음을 되돌려 달라고 사정조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끝끝내 A씨는 등을 돌렸다. 잠시 등기를 미루는 동안 A씨는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그 순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갑자기 험한 말로 나를 꾸짖으며 나쁜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A씨는‘물밑작업’을 통해 경매계장으로부터 이 사건을 무마하는 조건의 합의금까지 챙겨갔다. 경매계장이 처음 제시한 금액보다 더 많이 챙겨 1000만원 정도를 받아냈다. 그런데 나에게만 유독 그렇게 험하게 대했다. 나도 기분이 안 좋았다. 나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까지 A씨는 말했다. 나도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즉시 내용증명을 보내‘거액의 합의금을 받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은 불법행위’라고 강하게 지적을 했다. 며칠 있다 A씨 부인이 죄송하다며 전화가 와 모든 사태는 마무리가 됐다. 이 경매물건에서 내가 실수한 것은 바로 현장조사를 할 때 좀 더 세입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하층 세입자의 말을 듣고, 2층 세입자를 만나 이야기만 들었어도 이 물건에 입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물건으로 교훈을 얻었다. 입찰 전 비록 세입자들이 엉뚱한 얘기를 해도 관심 있게 확인하고 세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입찰 피해야 할 경매물건들


철저한 사전조사만이‘살 길’
경매물건 중에는 현장 및 서류조사를 한 다음에도, 입찰을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무척 많다. 일반적인 경우는 이렇다. 경매를 실행해도 경매 신청권자에게 돌아갈 돈이 없는 경우 낙찰허가를 취소하거나 경매절차를 취소한다. 이른바‘무잉여 경매물건’인데, 이런 물건에 입찰을 하면 입찰자는 시간만 손해를 본다. 또‘채무자 겸 선순위 임차인의 지위가 애매모호한 경매물건’, 각종 ‘사회공익용 부동산’ 등은 아무리 값싸게 낙찰받아도 내 부동산으로 만들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경매부동산들인데, 이런 부동산들이 사실 많다. 이런 복잡한 경매부동산들을 하자 없이 낙찰받아 내 부동산으로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임장(臨場) 활동을 통한 탐문조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실력 있고 경험 많은 경매투자자라도 혼자 지레 판단해 입찰한다면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만이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입찰 전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거나, 권리상, 물건상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을 때는 일단 이해관계인과 미리 부딪쳐 봐야 한다. 만나 대화하다 보면 나름대로 길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세입자들한테 질문을 할 때는 반드시 어느 정도 배당을 받아 나가는 세입자한테 하는 것이 좋다. 한 푼도 못 받고 길거리로 쫓겨나는 세입자한테 물어본들, 잘못된 정보 또는 무성의한 대답이 돌아온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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