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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의 부자들] “클래식 음악은 정서적 단비”

[2007 한국의 부자들] “클래식 음악은 정서적 단비”

▶김일곤 회장은 1944년 서울 生 · 서울대 국문학과 · 금오공대 명예 경영학박사 · 대원주택 회장(1990년~)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음악 후원에 쓰겠다.’ 김일곤 대원주택 회장이 오래 전부터 품어온 꿈이다. 김 회장은 세계적인 유망 피아니스트 김선욱 군을 후원하는 등 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의 소리 없는 행보는 정서적 단비를 기다리는 많은 CEO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데….
4월 10일 밤 10시 무렵 서울 서초3동 모차르트홀. 피아니스트 김선욱(19) 군의 두 시간 가까운 연주에 이어 뜨거운 기립박수에 화답하는 앙코르 연주까지 끝났다. 연주장 입구의 홀에서 간단한 리셉션이 열렸다. 김일곤(63) 대원주택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앙코르 연주된 세 곡 가운데 마지막이 어떤 곡인지 여러 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4중창이 있는데, 이 부분을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했어요. 대개 ‘리골레토 판타지’라고 부릅니다.” 이날 연주회는 삼성경제연구소의 CEO 대상 클래식 음악 과정인 ‘뮤직&컬처’ 1기 동기회가 마련했다. 김 회장은 1기 회장이며 뮤직&컬처 과정의 프로그램을 짜고 후원한다. 김 회장은 또 피아니스트 김군에게 2005년부터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군은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난해 18세의 나이로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했다. 동양인이 리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기는 처음이다. 김군은 이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등을 패기있게 연주했다. 연주회 초청 대상은 1기와 2기, 그리고 3기 수강 예정자 110여 명. 이 가운데 약 70명이 참석했다. 1기에서는 문규영 아주산업 회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윤영달 해태크라운제과 회장,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조영주 KTF 사장, 주원석 미디어윌 회장,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왔다. 2기에서는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 윤경희 ABN암로증권 대표, 이용한 원익 회장, 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임창열 알앤엘바이오 회장, 하민회 이미지21 대표 등이 함께했다. 3기 수강 예정 CEO 중에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용희 한국신용정보 사장, 이순임 한국종합미디어 회장 등이 참석했다. 뮤직&컬처 과정 1기의 간사인 주원석 미디어윌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김 회장이 이날 리사이틀을 준비한 취지를 설명했다. “뮤직&컬처 과정이 이제 2기생을 배출하고 3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2기 회원 여러분,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 이 특별한 맞춤 음악회는 한국이 낳고 기른 피아니스트 김선욱 군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기생이 마련했습니다. 뮤직&컬처 과정에 걸맞은 메세나 행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 뮤직&컬처를 단기 문화과정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음악과 소통하고 음악인과 교감하시기 바랍니다.” 2기 회장인 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말이 필요 없는 감동의 시간이었다”며 “김일곤 회장님께 감사하고, 해설을 맡으신 신수정 서울음대 학장께도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고 답례했다. 김일곤 회장은 1기생들이 모은 후원금을 김군에게 증정했다. 김군은 “콩쿠르를 위한 연주는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연주했다”며 “앞으로는 새로운 곡을 연습하겠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인터뷰는 김군이 연주회에 앞서 리허설을 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이뤄졌다. 김 회장은 김군과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들려 줬다. “2005년 김군이 클라라 하스킬 피아노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로 우승한 후 그의 연주가 녹음된 CD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연주에 반해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뉴욕에 머물며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했어요. 선욱 군이 그곳에서 연습하고 좋은 공연을 보면서 리즈 콩쿠르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선욱 군이 잘해 줘 고맙죠.” 김 회장은 대원문화재단을 통해 김군을 후원하고 있고 서울음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시설 · 연구비 지원했다. 이와 함께 한국지휘자협회가 주최해 외국의 저명 지휘자를 초청해 진행하는 지휘캠프를 후원했다. 또 지난해 대원음악상을 제정했다. 지휘자 정명훈 씨가 대상을, 강석희 계명대 교수와 음악평론가 이강숙 씨가 각각 작곡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음악 메세나 활동은 물론 그의 음악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음악 없는 인생은 상상해 본 일이 없다고 말한다. 또 클래식 음악 지원이 ‘인간의 순수함’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피력했다. 김 회장은 아울러 음악의 문화적인 부가가치 측면도 강조했다. “제1회 대원음악상 대상을 수상한 정명훈 선생 한 사람이 지니는 문화적 부가가치가 탁월한 외교관 1,000명의 역할 못지않다고 봅니다.” 그는 “그런데 ‘포스트 정명훈’이 아직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이 국가사회적으로 부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위 CEO들에게 음악회 표를 선물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전파한다. 정서적으로 메마른 CEO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다른 뜻도 있다. 클래식 음악에 취미를 붙인 CEO들이 스스로 표를 구해서 음악회에 가고, 나아가 음악을 후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는 “음악가를 도울 수 있는 미래의 영향력 있는 청중들을 키우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뮤직&컬처 과정을 후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클래식 음악을 전파하면서 ‘메세나 전도사’로 나선 김 회장. 그의 바람은 순수 음악을 후원하는 문화재단이 300개 이상 설립되는 것이다. 그는 “메세나협회가 있지만 지원이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있고, 클래식 음악에 집중하는 곳은 대원문화재단 외엔 없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번 ‘2007 한국의 부자들’에서 1,193억원의 재산으로 139위에 올랐다. 그는 메세나 활동의 원천인 재산을 키운 과정에 대해 “20대에 내 사업을 시작해 광고 등 여러 업종에서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90년에 대원주택을 설립했다. 자회사로 대원도시개발과 대원캐피탈을 두고 있다. 대원주택은 창원과 안산 ·시화 공단에서 국가산업단지 배후도시 개발사업으로 기반을 닦은 뒤 주택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대원주택은 2005년에 1,74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주택건설에서 한 발 물러난 상태. 김 회장은 “회사 이름에는 주택이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원주택을 지주회사로 종합레저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오래 다니지 않았다. “연합철강에 입사했죠. 그러나 몇 개월 되지 않아 나왔습니다. 사무실에 책상이 말단 사원부터 부장까지 죽 붙어 있는데, 내가 부장 자리까지 가려면 1m에 1년씩 걸리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간 부장 자리가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꺼렸다. “내가 하워드 휴스(은둔 생활로 유명한 미국 부자)처럼 되려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대원문화재단의 메세나 활동과 뮤직&컬처 과정을 부각해 주세요.” 김 회장은 다시 클래식 음악으로 화제를 돌렸다.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어머니 덕분에 모태에서부터 음악을 접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1주일이 멀다하고 음악회에 다녔죠. 초등학교 시절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들었습니다. 64년 런던 심포니와 65년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내한 공연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스케일이 큰 교향곡, 작곡가 가운데서는 브스 · 말러 ·쇼팽 등을 좋아하지만 훌륭한 지휘, 잘 된 연주라면 어떤 음악이든 즐겨 듣는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지만 그가 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에는 등록금을 벌며 학교를 다녔다. 유료 음악감상실에서 쫓겨날 때까지 음악을 듣곤 했다. 김 회장은 65년 루빈스타인의 내한 공연을 감상한 사연을 꺼냈다. “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휴학한 뒤 요즘으로 말하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래서 돈을 모으면 복학했죠.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리는 루빈스타인 공연 입장권을 살 순 없었어요.” 그는 문학도로서 아끼던 3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청계천의 헌책방에 팔았다. 책을 팔고 나서 1년 가까이 지났을 때 돈이 생겼다. 그는 전집을 되사고 싶어 그 헌책방을 찾아갔다. 전집이 낱권 하나 이가 빠지지 않은 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집 가운데 <레미제라블> 을 펼쳤다.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쓴 연애편지 부분이 그가 접어놓은 그대로 접혀 있었다. 그가 그리움에 젖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때는 낭만이 있었어요. 헌책방 주인들이 장사꾼이라기보다 책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세계문학전집을 억울하지 않은 값에 되살 수 있었습니다.” 대원문화재단의 앞으로 후원 계획과 관련해 그는 관악기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다. “아직은 구체화하지 못했지만 다른 악기에 비해 지원의 기회가 없었던 관악기 연주자들을 지원함으로써 국내 오케스트라의 향상에 일조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김 회장은 김선욱 군이 세계적인 음악가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돼 활동할 때까지 계속 후원할 계획이다. 김군은 오는 11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메이저 국제 무대에 데뷔한다. 김 회장은 이 음악회 표를 가능한 많이 확보한 뒤 뮤직&컬처 수강생들과 함께 ‘서포터스’로 갈 계획이다.


대원문화재단의 활동


대원음악상은 국내 음악상 가운데 가장 상금 규모가 크다. 대상에는 1억원, 작곡상 ·연주상 ·공로상엔 각각 3,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 대원음악상 시상 (지난해 지휘자 정명훈 씨, 음악평론가 이강숙 씨, 작곡가 강석희 계명대 교수 등 수상) · 피아니스트 김선욱 군 후원 · 지휘자 캠프 지원 · 서울음대 · 한국종합예술학교 시설 지원 · 삼성경제연구소의 뮤직&컬처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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