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정주영 신화’ 재현”
“통영에서 ‘정주영 신화’ 재현”
▶1945년 부산 출생. 동래고·성균관대 화학과를 나왔다. 국립공업연구소, 73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를 시작으로 32년간 중공업 외길을 걸었다. 현대중공업 생산총괄, 중장비사업본부장, 건설장비본부장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사장(2001~2004년), 현대중공업 사장(2004~2005년)을 지냈다. 지난해 7월부터 성동조선해양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
-현대중공업 사장을 끝으로 조선업계를 떠나신 줄 알았는데 성동조선으로 옮겨 못다 한 야심을 불태우고 계셨군요. “이미 회사에 왔으니까 어떤 계기로 왔느냐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가 저로서는 더 중요합니다. 최근 임직원 연수회 때 손가락 셋을 치켜들었어요. 3년 안에 연봉, 근무환경, 사원복지, 승진 속도 등 모든 부문을 대기업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어요.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미래만 생각하고 있지요. 여기 오게 된 계기는…. 성동조선을 키우려고 왔지요.”
조선업계 ‘미다스의 손’별명
-성동조선에 대해서는 사실 언론에서도 관심 밖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조선·해운 전문기관 클락슨이 10위권 선사를 발표하고 거기에 ‘유관홍’이라는 이름과 성동조선이 있어 주목했는데, 성동조선해양이 어떤 회사입니까. “2002년께부터 선박 외판에 들어가는 블록 만드는 회사였어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에 블록을 납품하던 하청회사였던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인들은 성동 하면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그랬지요. 그러다가 2004년부터 신조(새로운 선박 건조)로 전환했지요. 지금은 수주물량으로 정유·원유·벌크·컨테이너선을 합쳐 102척이나 됩니다.”
-성동조선을 맡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배를 발주하는 선주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계산적입니까. 배는 짓기 전에 발주하기 때문에 아주 철저하게 따지지요. 그래서 과거에는 성동이 어떤 회사인지 알려고도 안 했다가 선주들이 도대체 현대중공업 사장하던 사람이 성동으로 옮겼다는데 성동이 어떤 회사냐, 그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부터 변화고요, 선주마다 당신이 있으니까 납기나 품질을 지켜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발주하겠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게 큰 변화지요. 설계 인원도 지난해 7월 1일 이전에는 제로였지만 현재 230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또 아주 달라진 변화지요.” 유 회장은 현대중공업 본부장일 때부터 정주영 회장의 눈에 든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커온 사람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중장비 사업본부장으로 명령이 났다. 이유가 있었다. 중장비사업본부는 말 그대로 중장비·지게차·크레인 등을 제작했지만 16년 동안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때가 99년 8월 정 회장의 기대대로 유관홍은 중장비사업본부를 맡은 지 꼭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수리조선소에서 신조로 전환했던 미포조선소가 줄곧 적자에 허덕이자 2002년 1월, 유관홍을 또 투입했다. 사장으로 발령을 내면서 미포조선을 살리라는 것이었다. 유관홍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학제품운반선(PC선) 한 종류만 고집했고 회사는 2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세계 조선시장에서는 현대미포조선의 PC선이라 부르지 않고 ‘미포 탱크’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철판가격 폭등으로 또 위기를 맞고 있었다. t당 340달러 하던 후판이 600달러로 치솟은 것. 이미 2~3년 전에 수주해 놓은 가격으로는 만들수록 적자 폭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미포조선 사장 2년 만에 다시 유관홍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기용됐다. 그때부터 그는 기존 틀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선표부터 별도로 만들어 선가(船價)를 현시점에 맞도록 영업을 독려했다. 불과 1년 뒤 현대중공업은 흑자로 전환했고, 유관홍이라는 이름 앞에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성동조선과는 어떤 연고가 있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여긴 ‘1인 12역’을 해야 하는 회사였어요. 건설·배·종업원 후생 문제는 기본입니다. 거기에다 영업해야죠, 생산해야죠, 설계해야죠, 회사에 필요한 자금 융통, 회계 문제까지. 1인 12역을 하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한 회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와서 일을 해야 하는 회사였단 말입니다. 어느 날 이 회사 창업주가 찾아와 회사의 모든 자료를 주면서 일종의 컨설팅을 부탁하기에 그때 알았어요. 밥 한 끼 얻어먹은 죄로 간단히 상담해주다가 코가 꿴 겁니다, 하하하.”
-어떤 창업주기에 새로운 둥지를 선택할 만큼 흡입력이 있었습니까. “한 번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참, 하하. 성동의 창업주 되시는데 정홍준 회장님이라고 계세요. 무지하게 고생해서 회사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현대중공업을 그만두고 난 뒤에 이분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작은 회사에서 식사라도 하고 싶다니까 만나고 싶더라고요. 그렇다고 여기 정 회장님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했던 사람한테 자기 회사 맡아달라는 얘기하려고 초대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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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해주다 ‘포로’ 됐어요”
-그런 심정이었는데 성동의 무엇이 그토록 강렬하게 끌어당겼습니까? “방금 얘기한 대로 회사 컨설팅하다가 포로가 됐어요. 정 회장님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모르지만, 자문을 부탁하면서 가지고 온 성동의 자료를 보는 순간 큰일났다 싶어요. 정말 나는 국가를 위해서, 조선산업을 위해서 조언해주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성동이라는 회사를 삽으로 떠서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고, 우리나라 안에서 성패를 걸어야 하는 회사로 이미 시작했는데 이걸 어떡하느냐,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내가 평상시 존경해오던 정주영 회장님이 걸어온 길을 성동에서 재현시키자, 현대에 비하면 아직 벌판이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이것저것 건드려 놓는 것보다 낫다, 마지막 꿈이라 생각하고 여기서 승부를 걸자, 그런 생각으로 왔던 겁니다.”
-현대를 따라가면 영원히 2등밖에 안 된다는 걸 아실 텐데. 현실적으로 국내 빅3 선사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어떤 생존전략을 구사하신 겁니까. “불과 2~3년밖에 안 된 회사가 어떻게 세계 톱3 회사와 경쟁을 합니까. 사람이나 회사나 분수를 알아야지요. 이 회사가 목표하는 수준까지 모든 역량을 키워야 하고, 그때까지는 단일 선종으로 간다는 것이 전략이에요. 바로 17만t급 벌크 단일 선종입니다. 벌크선은 우리가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한꺼번에 47척을 수주했는데 비결은 세계 최고의 디자인입니다. 지금 세계 벌크 시장은 상당히 좋은데 다행히 아직 톱3에서는 벌크를 안 합니다.”
-현대가 수주하지 않는 선종을 집중 공략하시는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현대에서 수주 안 하는 배만 골라서 해요. 저는 현대하고 경쟁하지 않겠다 이겁니다. 왜, 현대하고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차원이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벌크선의 경우에) 수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알지만 현대중공업이 세계 톱이고 대한민국 조선회사입니다. 그런 회사를 우리가 경쟁해서 이겨서, 창피당하게 하면 만세를 부를 겁니까? 가능하면 영원히 1등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왜 17만t급입니까? “지금 벌크 시장에서 가장 선가가 좋고 선주들 사이에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이 17만~18만t입니다. 지금 18만t 정도 되면 하루 운임이 6만 달러 넘어요. 그런데 기름값, 감가상각비까지 계산해도 하루 7000~8000달러 정도면 되거든요? 나머지는 다 남는 겁니다. 선주들이 벌크를 가지고 돈을 긁는 거지요. 그래서 벌크 시장이 좋은데, 우리가 거기에 뛰어들었고, 과장이 아니라 우리 필드가 좀 더 확장되고 장비가 갖춰지면 그땐 벌크선만큼은 국내 최대의 수주를 하게 될 겁니다.”
-현재 벌크선 최대의 경쟁국은 중국입니까. “결과적으로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경쟁력이 있다 해도 집중해서 선택한다면 저는 겁낼 것이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무슨 얘기냐, 무엇 때문에 중국 전체하고 경쟁을 하느냐, 성동에서 연간 40척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만 수주하면 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디자인과 품질로 공략하면 우리한테 오는 겁니다. 지금 캡 사이즈 벌크를 8000만 달러에 수주하는데 그게 중국보다 600만~700만 달러 정도 비싸요. 그러면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잖아요? 어느 선주든 그 정도 비싸면 중국 안 갑니다. 우리한테 오지.”
-수주 잔량으로 볼 때 몇 년 일감을 쌓아두고 있는 겁니까? “보통 3년치가 노멀한데 우리는 3, 4년 같은 고정개념으로 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냐, 나는 2년, 2년 반 만에 판다 이거예요. 조선 시장이 안 좋을 때를 대비해서 보통 3년치를 두는데 향후 조선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동물적인 감각입니다. 이유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BRICs)의 경제 상황이 날이 갈수록 좋아져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많아집니다. 에너지 수요를 배로 안 움직이면 어떻게 움직입니까. 유조선 물동량이 많아지고 경제 환경이 좋아지면 동시에 가전제품부터 생활필수품까지 화물량이 증가하고 그걸 전부 수송해야 합니다. 뭐로 하지요? 벌크선 시장이 죽을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3년씩 쌓아두고 작업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돈이 나가는 셈인데. 그래서 저는 2년, 2년 반 만에 다 판다 이겁니다.”
“철판이 없어요. 철판이!”
-성동의 약점은 아직 드라이도크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말도 있지만 신건조 공법이 발달해서 실제로 지금까지 진수한 건 전부 육상에서 건조했고 성공적으로 인도했습니다. 아직 도크 없다고 약점이 아닌 겁니다. 물론 LNG운반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드라이도크가 완공되는 2010년부터 착수합니다. 2010년이면 먼 것 같죠? 내일모레예요.”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철판이 없어요. 철판이! 산업의 쌀은 철판인데, 그걸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니 이게 조선대국을 지향하겠다는 나라냐 이거지요. 기본 자재가 없는데 이보다 더 답답할 노릇이 어디 있습니까. 포스코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겁니다만 정부가 뭘 하느냐 이거예요. 조선을 비교우위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제철을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거 아닙니까? 조선산업은 연동산업이 엄청나요. 전자는 연동이 없다 이겁니다. 정말 속 터져요.” 유 회장은 분노에 가까운 열변을 전개했다. 제일 답답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는 것이다. 영락없는 조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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