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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가족 여행도 아 옛날이여!

자동차 가족 여행도 아 옛날이여!


첨단기기에 정신 뺏겨 함께 가도 마음은 따로따로 최근 휴가 때 우리 가족은 비싼 비행기 요금과 장기 주차료, 자동차 대여료가 들지 않는 여행을 택했다. 우리 차를 타고 뉴저지주에서 플로리다주까지 가기로 계획했다. 남편과 나, 그리고 탁 트인 도로와 세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 휴가 때 가족과 함께한 자동차 여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족의 정을 느끼고, 함께 노래하고, 심지어 말다툼하던 일까지. 1969년 우리 가족 여섯 명은 67년형 캐딜락을 타고 플로리다주까지 여행했다. 누가 어떤 주의 자동차 번호판을 제일 많이 셌는지 내기하고, 어머니가 만들어온 살라미 샌드위치를 먹었다. 또 책을 유난히 좋아하던 남자 형제 한 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책을 아낄 줄 모르는 다른 형제들이 그 책 위에 플로리다 오렌지즙을 떨어뜨려 그를 화나게 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 애들과 그런 경험을 하리라 기대했다. 좀 더 단순했던 시절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 2000㎞에 걸친 이번 여행은 예전의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의 정과 공동의 경험 대신 개인적 욕구와 개인용 첨단기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예전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여행 동안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가라고 일러두는 한편 스크린 2개짜리 DVD 플레이어도 빌렸다.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첨단기기가 우리 짐 속에 들어 있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DVD 플레이어 말고도 컴퓨터 2대와 MP3 플레이어 3대, 휴대전화 3대가 더 있었다. 그러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새로 놓인 다리를 보고 감탄하거나 각 주의 경계선을 지나면서 주지사들이 자기 주에 왔다고 환영하는 커다란 표지판을 만날 때마다 환호성을 올리던 일은 옛날 얘기였다. 그 대신 우리는 매일 모든 기기가 충전됐는지 확인하기 바빴다. 미니밴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기코드들은 신장투석기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우리는 아들의 휴대전화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까지 장착했다(우리의 위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I-95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차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마다 ‘켈리’와 ‘로버트’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좌회전을 준비하세요”라고 말하는 켈리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싫증날 때면 로버트가 “우회전을 준비하세요”라고 말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의 여행안내서를 가져갔지만 주로 무릎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을 때 받침대로 사용했다. GPS가 근처 식당 체인점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려주었기 때문에 책이 필요 없었다. 조금 전 다른 주에서 먹었던 퀘사디야(옥수수 가루로 만든 얇은 빵 사이에 고기·야채·치즈 등을 넣어 구운 멕시코 음식)가 생각날 때 GPS는 근처에 있는 똑 같은 식당 체인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내 운전 차례가 됐을 때 휴대전화를 끼고 영화를 보던 남편과 딸은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는 도중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영화가 중단된 사이 이어폰을 낀 아들이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과자 먹을 사람?” 내가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다. “저것 봐! 고속도로 변에 진짜 목화밭이 있네!” 또다시 묵묵부답. “조지아주에 들러 피칸 로그(피칸 열매를 넣은 서양 엿의 일종)를 먹어볼까?” 침묵. 우라늄을 가득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돼 도로가 막히자 그제서야 온 가족이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봤다. 10대 아이들의 주의를 끌려면 핵 위협 정도의 위력이 필요한가 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린 시간 대부분을 나는 혼자만의 가상현실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또 I-95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마주치는 보잘것없는 경험이라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찍찍거리는 컨트리 음악 방송에 맞춘 채 그 음악이 주는 외롭고 고독한 분위기에 공감했다. 어머니의 뷰익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교외의 언덕을 달리던 옛날이 그리웠다. 그런데 목적지를 불과 16㎞ 남기고 웬일인지 딸아이의 안전벨트가 엉켜 풀리지 않았다. 불편해 하던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는 도움이 안 됐다. 다행히 뉴저지주를 떠나기 전 구식 구급상자를 꾸려 두었다. 그 안에는 흰 깃발(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조난신호용으로 쓰였다)과 통조림 음식, 그리고 그 순간에 꼭 필요했던 가위가 들어 있었다. 딸아이의 허리 주위에 엉켜 있던 안전벨트를 가위로 잘라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가위는 로테크 도구일지 몰라도 그 일에는 딱 맞는 도구였다. 온갖 첨단기기가 다 있었지만 딸 아이를 뒷좌석에서 풀어줄 도구는 가위뿐이었다. 우리가 첨단기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지난 수 세대 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힘이 돼준 기본적인 것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간단한 도구들, 일요일의 드라이브, 차 안에서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일 등등을 말이다. 가끔은 다같이 그저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 가지 일’만 했으면 한다. 어쩌면 다음 길 모퉁이에서 얼룩소나 옛날 자동차, 혹은 무지개가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필자는 뉴저지주 랜돌프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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