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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REND] 금융사 칸막이 사라지면…

[NEWS & TREND] 금융사 칸막이 사라지면…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금융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은행이니 증권이니 하는 식의 ‘칸막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융 소비자는 투자 바구니에 넣을 상품이 다양해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들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파장과 득실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2009년 봄,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37) 과장은 10년간 써오던 은행의 급여이체 통장을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바꿨다. 신용 · 담보대출만 보면 은행이 더 매력적이었지만, 이자가 연 5% 안팎으로 쥐꼬리만해 성에 안찼다. 박 과장이 증권사 쪽으로 발을 돌린 것은 무엇보다 2년 전부터 재테크 주력 부대를 펀드 · 주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활황장으로 짭짤하게 재미도 봤다. 특히 2009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쏟아진 새 투자 상품이 박 과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전엔 상품 구조도 제대로 모르고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첨단상품에 돈을 넣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턴 파는 데만 급급했던 증권사 직원들이 신기하게도 투자 성향과 상품 위험 등을 자상하게 알려줘 마음이 놓였다. 또 박 과장이 단골로 이용하는 A증권사는 얼마 전 두 개 증권사의 인수 · 합볍(M&A)으로 공룡 증권사로 거듭났다. 외국계에 비해 뒤지지 않는 실력과 서비스로 이름 나 지점을 찾을 때마다 더욱 기분이 좋다.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지난 6월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박 과장의 가상 사례 같은 ‘금융 빅뱅’이 예고되고 있다. 금융 소비자는 물론 증권사 · 자산 운용사 · 은행 같은 금융회사 모두에 찾아올 큰 변화다. 대체 자통법은 왜 만들었고, 어떤 알맹이를 담고 있길래 빅뱅이란 말까지 나올까. 한마디로 자본시장의 새 판을 짜는 게 자통법이다. 증권 업종에 둘러쳐진 ‘칸막이 규제’를 걷어치우는 일이 핵심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딱 정해져 있었다. 증권사는 투자자가 주식을 사고 팔도록 도와준 뒤 수수료를 받아 먹고 살았다. 자산운용사는 펀드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신 회사는 이런 일만 하라’고 못 박은 열거주의 법률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선 ‘투자은행(IB)’이란 간판이 걸리면 은행 · 보험 업무만 빼고 뭐든 할 수 있다. 한 지붕 아래서 주식 위탁거래나 펀드 운용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러니 국내 시장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라 밖에서 히트를 친 신종 금융상품 하나만 들어와도 규정이 없으면 매번 법을 바꿔야 증권사에서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통법은 포괄주의를 채택했다.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 최원진 사무관은 “예금과 보험을 제외하고 ‘금융투자회사’를 한 개만 세우면 어떤 상품이든 다룰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통법 카드를 꺼낸 것은 은행에 비해 자본시장 발전이 더디다고 판단해서다. 꺼져가는 경제의 성장엔진을 살리려면 혁신기업을 찾아 돈을 대주고 키워야 한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돈은 100% 기업으로 흘러간다. 이른바 직접금융시장의 힘이다. 반면 은행으로 들어간 돈은 기업 자금은 물론 개인 대출 등으로 나뉘어 쓰인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은행 예금 같은 안전자산을 좋아하는 풍토가 수십 년간 이어지면서 은행이 맏형으로 컸다. 대신 증권은 늘 막내 신세였고 투기판이란 빈축을 샀다. 선진국일수록 증시가 중심축으로 자랐지만 국내에선 불균형 성장이 지속된 것이다. 증권사 등 제2금융권은 “은행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해왔다. 왜소한 자본시장은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금융허브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결국 구닥다리 법 체계에서 왔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자통법으로 맛깔스럽고 새로운 기법의 투자상품을 내놓아 돈이 증시로 가게 하면 기업은 자금 조달이 용이해지고, 투자자는 돈을 벌고, 시장은 균형 성장을 하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주식시장 울타리 안에 있던 증권사 ·자산 운용사 · 선물회사 · 종합금융사 · 신탁회사를 금융투자회사로 통합한다는 내용의 자통법을 만들었다. 이전까진 증권거래법 · 선물거래법 · 자산운용업법 등이 모두 따로 존재했다. 흩어져 있던 법을 압축한 만큼 내용도 방대하다. 자통법은 조문만 449개에 이른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뭐니뭐니해도 ‘1등석 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투자 바구니’에 넣을 상품이 다양해지는 이점이 있다. 예컨대 특정한 펀드의 수익에 연계해 원리금을 되돌려 주는 펀드연계증권(fund linked note)도 만들 수 있고, 지진 같은 재해 발생에 연결해 수익금을 받는 파생상품도 팔 수 있다. 또 부자들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사모(私募) 펀드에도 더 넓은 길을 터 줘, 수익자총회 개최의무 등을 없애도록 했다. 하나대투증권 이상훈 상품기획본부장은 “자통법으로 펀드가 투자하는 기초자산의 제한이 사라졌다”며 “해외 헤지펀드를 포함해 돈 되는 것이면 뭐든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도 생소한 상품들이 쏟아진다면 투자위험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어벽을 쳐뒀다. 먼저 ‘고객파악 제도(Know your customer rule)’를 도입했다. 상품에 들라고 권유하기 전에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재산 상태, 투자 경험 등을 파악해 서면으로 확인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금융 소비자와 시장에 이런 변화가 올 것 →'투자 백화점'시대 열릴까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전환: 증권사·자산운용사·선물회사 합쳐 금융투자회사 설립 가능 예금·보험만 빼고 모든 업무 취급

·투자 대상 ·만기·수익률 다양한 '맞춤형 상품' 가입 가능 ·주식+펀드+선물 결합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가능 →증시가 주요한 '기업 돈줄' 되나

·증권사의 소액결제 서비스 허용: CMA 잔고 증가 예상, 복합금융상품 출현 은행→증시로 자금 이동 가속화

·그동안 대출 받지 못했던 혁신기업 등이 증시 통해 자금 조달
‘적합성의 원칙’도 들어갔다. 고객을 파악했으면 적합한 상품만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투자에 서툰 시골 노인이 1,000만원을 들고 왔을 때 복잡한 파생상품을 팔면 안 된다. 이런 의무를 위반했을 때의 형벌도 강화했다. 특히 상품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 손해를 봤을 때 금융투자회사에 배상할 책임을 지우고 원금 손실액을 배상액으로 추정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투자자가 제대로 상품 설명을 못 들었음을 증명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처지가 바뀌어 회사가 제대로 설명을 해줬음을 입증해야 한다. 신설될 금융투자회사는 ‘자기자본투자(PI갥rincipal invest-ment)’에도 진력하게 된다. 진정한 IB는 돈 되는 기업이나 투자 상품이 나오면 자기 돈으로 투자한 뒤 몸값을 높여 되파는 일을 한다. 이게 바로 PI다.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다만 금고에 돈이 수북이 쌓인 외국계와 경쟁하려면 국내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서둘러 확충해야 한다. 미국 골드먼삭스의 자기자본은 30조원이 넘는데 국내에선 상위권 증권사가 2조원대에 그친다. 정부는 틈날 때마다 “자통법으로 ‘한국의 골드먼삭스’가 여럿 나올 것”이라고 자랑해왔다. 외국계와 맞붙으려면 거대한 덩치는 물론 명성과 뛰어난 네트워크를 가진 금융투자회사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국내 1위인 삼성증권의 자산은 아직 70조원 정도에 그친다. 은행에서 수위인 국민은행도 자산이 213조원 수준이다. 그러나 1977년에 CMA를 처음 개발한 메릴린치는 지금 자산이 800조원을 넘는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선 “외국의 공룡 투자은행과 붙으면 백전백패한다”며 자통법을 반대하고 있다. 노련한 금융기업으로 무장한 외국계가 단물을 빨아 먹는다는 것이다. 업계는 일단 자통법으로 겸업화 발판이 마련된 만큼 덩치를 키우기 위한 인수 ·합병(M&A) 시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도 최근 ‘증권사 신규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국내사 간 경쟁 또한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위는 과당경쟁을 막는다는 취지로 2,000년 이후 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자통법은 ‘인재 전쟁’이기도 하다. 괜찮은 상품을 만들 사람이 없으면 완패하는 싸움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인재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자통법 시행까지 남은 1년 6개월은 짧다. 이제 시장엔 자통법이란 큰 좌판이 깔렸다. 가게 주인들이 어떤 상품을 내놓을지, 손님들이 북적댈지, 경쟁력 없던 재래시장이 대형 백화점으로 변신할지 주목된다.


지금 서울 여의도와 명동은…


웃는 증권사 우는 은행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여의도의 증권사들 얘기다. 자통법으로 시장의 판을 확 키울 호기(好機)를 맞았다.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은 아이디어로 진검 승부를 걸 참이다.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은 “하반기에 미국을 돌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해외 경영대학원 석사(MBA)와 유력 금융사의 인재를 낚아 오겠다는 것이다. IB 부문에도 힘을 더 보탠다. 지금 60여 명인 인력을 3년간 1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대우증권은 정부의 국책은행 수술로 원군을 얻게 됐다. 모회사인 산업은행이 IB 부문을 떼서 자회사인 대우증권에 넘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 세운 웰스매니지먼트(WM) 전담본부는 200여 명인 자산관리 전문가를 해마다 100명씩 늘릴 작정이다. ‘펀드 명가’로 불리는 미래에셋증권 역시 다양한 상품 개발에 힘 쏟을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IB 부서들을 통합해 기업금융사업부로 격상했다. 올 상반기엔 글로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본부와 인프라본부 등 신상품 개발에 거름이 될 전초기지를 신설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지난 3월 세계적 부실채권 전문가인 잭 로드맨을 영입해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같은 달 증권사 최초로 라오스와도 전략적 제휴를 맺어 투자은행 업무 등을 펼치기로 했다. 안방은 물론 나라 밖에서도 활발하게 자기자본투자 전쟁이 일어난다는 점을 간파했다. 우리투자증권도 올 하반기에 싱가포르에 IB센터를 만들어 동남아 시장 공략을 준비한다. 올해 초 PI팀을 신설하며 조직을 수술한 우리투자증권은 내년 가을까지 200여 명을 투입해 상품개발 인큐베이터가 될 새로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내놓을 생각이다. 반면 서울 명동 · 을지로 인근에 주로 포진한 은행들은 마음이 바쁘다. 잘못하다간 맏형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돈다. 국민은행은 일단 증권사 인수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KGI증권 인수에 나섰다가 솔로몬저축은행에 패했다. 국민은행은 자회사인 KB자산운용은 물론 30여 개 운용사와의 제휴를 통해 고객에게 다양한 투자 상품을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7월 13일 신한은행의 펀드를 팔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껏 은행이 경쟁사 펀드를 파는 사례는 없었다. 지주회사 체제인 은행들은 증권 · 보험 등을 아우른 포트폴리오여서 좀 낫다. 하나금융그룹은 상품 개발은 대투운용 · HFG IB증권에서 맡고, 판매는 하나은행과 하나대투증권에서 담당해 시너지 효과를 노릴 작정이다. 신한금융그룹도 근본적인 서비스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행 계좌 하나로 대출도 받고 증권도 거래하는 상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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