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빚 안고 사는 기간 갈수록 길어져

빚 안고 사는 기간 갈수록 길어져

할부인생의 호흡이 길어지고 있다. 흔히 할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카드 할부다. 예전엔 자신에게 과하다 싶은 것도 3개월, 6개월 신용카드 할부로 구매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신용카드 매출 중 할부매출 점유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체크카드 이용액의 급속한 증가 때문이다. 계좌에서 실시간으로 인출되는 체크카드 이용액 증가로 할부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할부는 미래의 빚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합리적인 카드 소비 습관이 정착되고 있다”며 “최근 소비자들은 할부보다는 일시불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금융감독기관이 카드사 리스크 관리를 충실히 하고 있는 것도 무분별하게 카드 이용 한도를 높여주고 있는 것을 막고 있다. 카드사도 과거와는 달리 제살 깎아먹기 식의 과도한 무이자 할부 마케팅은 지양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학자금, 자동차, 주택 등 목돈이 필요한 항목들은 일반 시민이 몇 개월의 할부나 일시불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들의 대출기간은 점점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가 보증을 서는 학자금 대출은 최장 대출 기간이 10년에 달한다. 1인당 대출 한도는 4000만원으로 의·치·한의 및 전문대학원의 경우에는 9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정부가 보증을 서기 전에는 최장 대출기간이 7년 정도에 불과했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재정복지팀 김정호 사무관은 “학생들의 실제적인 요구에 맞춰 학자금 대출도 변화하고 있다”며 “요즘엔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등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기간이 늘고 있다. 대출기간도 이에 맞춰 늘려주는 게 맞다. 원래 학자금 대출의 목적은 학생자립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부모에게 대학 학비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미국처럼 독립하려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부모가 신용불량자라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도 대출받을 수 있게 된 것을 꼽을 수 있겠지만 중산층 가정의 학생 중에서도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이 시작된 2005년 2학기에는 18만2000여 명이었으나 올해 1학기에는 30만9000여 명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했다.


만기 10년 초과 비중 절반 넘어서 “학자금 대출받는 데 딱 10분 걸리더라고요.” 직장인으로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씨(35)는 인터넷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이번엔 주택담보대출을 생각하고 있다. 매달 갚아야 할 돈이 만만치는 않지만 대출 없이는 집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을 20년 동안 갚아 갈 생각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현재 투기지역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원칙적으로 40% 적용하되 만기 10년을 초과하는 대출(6억원 이하 아파트)은 60%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10년 이상 빚을 갚아나가겠다는 사람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만기가 급속히 장기화하고 있는 것은 2002년 이후 감독 당국이 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규제하며 대출 만기가 장기일수록 더 많은 금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가운데 약정 만기 3년 이하 비중은 2004년 말 60.1%에서 지난해 말 30%로 떨어진 반면 만기 10년 초과 비중은 20.7%에서 51%로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신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만기 3년 이하는 15.3%에 그친 반면 10년 초과는 71.2%나 차지했다.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 비중도 2004년 말 41.7%에서 지난해 말 23.9%로 떨어진 반면 5년 초과 만기 도래 비중은 22.7%에서 50.9%로 두 배 넘게 상승했다. 또 매달 꼬박꼬박 원리금을 갚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만기 전까지는 이자만 내다가 만기가 되면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 방식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004년 말 76.8%에서 지난해 말 47.6%로 줄었다.
그러나 빌릴 수 있는 금액만 생각하다가는 올라가는 이자율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원리금을 함께 갚아야 할 경우 대출자가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두 차례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8%에 육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2조6000억원 증가하고, 대출자는 연간 평균 64만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은행권의 올 6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217조원, 저축은행·할부금융·대부업체의 주택담보대출은 약 46조원이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당분간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가 계속 오를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 CD금리가 상승해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꾸준히 오르자 고정금리 상품이 인기다. 주택금융공사는 7월 장기 고정금리 상품인 ‘보금자리론’ 공급이 3602억원으로 6월의 2733억원에서 31.7% 늘었다. ‘보금자리론’의 하루 평균 판매금액도 5월 119억원, 6월 138억원, 7월 172억원 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은행권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 대부분은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혼재된 혼합형인 데 비해 보금자리론은 계속 금리가 고정돼 있다. 고객이 최장 3~5년의 고정금리를 보장해도 5년 후 금리 상황을 알 수 없는 은행대출상품 대신 보금자리론을 선택하는 이유다. ‘보금자리론’ 금리는 지난달 30일 0.35%포인트 올라 현재 6.50~6.75% 수준이다. 그래도 평균 7%대인 은행권의 변동금리보다 낮다. 인터넷 전용상품인 ‘e모기지론’의 금리는 6.30~6.55%다.


할부제도 따라 판매량 달라진다 이처럼 20대 초반부터 대출에 익숙해지고 기간도 장기화되다 보니 고객의 구미를 당기는 다양한 대출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대출 상품이다. 아예 본말이 전도돼 할부제도에 따라 차 판매량까지 좌우되는 일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중고차 보장할부 제도다. 중고차 보장할부란 차량가격의 일정 부분을 중고차 가격으로 보장해주고 나머지 차 가격만 받는 보장할부로, 지난 97년 당시 대우차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예컨대 소비자는 중고차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40%에 대해서만 할부금을 내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중고차로 반납이 가능하다. 2년 약정을 했다면 그간의 유예금액에 대한 이자를 더 부담하면 초기 구입비용과 월 할부금을 줄일 수 있다. GM대우는 윈스톰이 작년 출시된 후 몇 달 만에 판매율이 떨어지자 중고차 보장할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2006년 10월 월간 판매량이 1687대에 불과하던 것이 중고차 보장할부를 실시하자 2468대로 늘었다. 12월에는 3670대까지 판매량이 늘었다. 신차 구입 시 이용할 수 있는 2007년 6월 기준 여신금융사의 자동차할부제도는 31개에 달한다. 중고차도 20개의 할부제도를 이용해 살 수 있다. 더 이상 차를 살 때 목돈이 필요한 시대는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볼 줄 아는 눈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성심당 대전역점 운영 계속한다…월세 4.4억→1.3억 타결

2 美 8월 PCE 물가 전년대비 2.2%↑…3년 6개월만에 최저

3NHN “페이코, 티몬·위메프 사태로 1300억원 피해”

4‘8억 차익 예상’ 이수 푸르지오 무순위청약에 14만명 몰렸다

5의협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현실감 없어”

6한동훈, 이재명에 “중국식 경제가 목표냐”…25만원 지원금 비판

7업무 환경에 최적화…네이버, 번역 유료 구독 서비스 ‘파파고 플러스’ 출시

8수업 거부 중인데…의대생 3200명, 2학기 국가장학금 신청

9갤럭시 AI ‘혁신 경험’ 그대로…삼성전자, S24 FE 공개

실시간 뉴스

1성심당 대전역점 운영 계속한다…월세 4.4억→1.3억 타결

2 美 8월 PCE 물가 전년대비 2.2%↑…3년 6개월만에 최저

3NHN “페이코, 티몬·위메프 사태로 1300억원 피해”

4‘8억 차익 예상’ 이수 푸르지오 무순위청약에 14만명 몰렸다

5의협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현실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