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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내 몸값 250만원도 겁나게 싸당께”

[Special Report] “내 몸값 250만원도 겁나게 싸당께”

1000만원! 10마리가 들어간 굴비 한 세트가 1000만원에 팔린 적이 있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마리에 100만원꼴이다. 하지만 전남 영광에서 평생 굴비 관련 사업을 해 온 굴비한정식당 일번지 김영식 대표의 말에 따르면 분명 그렇다. “최고급품은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종종 있다”며 “수년 전 한 재벌 총수에게 줄 선물이라며 급하게 굴비를 사 간 적이 있고, 그때 값이 100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00만원짜리 굴비는 영광의 전설처럼 남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지금은 이 정도는 아니다. 백화점 값이 250만원 정도다. 한 마리에 25만원. 1000만원에 비하면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이 역시 믿기 어려운 값이다. 일부에서는 “거품이 낀 가격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김 대표는 “팔리니까 그렇게 값을 매기는 것 아니겠느냐”며 “값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반박한다.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려면 굴비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다. 조기는 봄철 산란을 위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나 흑산도를 거쳐 서해안으로 올라온다. 이 중 영광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를 영광에서 가공·생산한 것을 ‘영광굴비’라 한다. 요즘은 주로 추자도와 흑산도 등지에서 잡은 것을 영광에서 건조한다. 최종 굴비는 크기로 등급이 나뉜다. 20㎝ 미만은 엮거리, 20~22㎝ 미만은 장대, 22~25㎝ 미만은 오가, 25㎝ 이상은 딱돔으로 부른다. 25㎝ 이상은 1호, 2호 등 호수로 부른다. 최대 크기는 35㎝. 엮거리와 장대는 20마리가 한 세트, 오가 이상은 10마리가 한 세트다. 굴비 최고의 상품은 이 35㎝급 굴비만 모은 것이다. 35㎝급 굴비는 얼마나 잡히는 것일까?

최고 품질 굴비는 35cm 넘어야 이게 값 산정의 관건이다. 영광 최대 굴비 유통업체 중 하나인 청산유통의 최종환 대표는 이를 한마디로 ‘희귀품’으로 규정한다. “우리 회사가 연간 유통하는 굴비가 4만 상자쯤 됩니다. 한 상자는 보통 150마리로 채워집니다. 연간 대략 600만 마리가 유통되는 것이지요. 이 중 35㎝급 굴비는 100마리가 채 안 됩니다. 평균 6만 마리 중 한 마리인 셈이죠.” 6만 대 1. 25만원짜리 굴비 한 마리는 이처럼 극심한 경쟁을 뚫고 나와야 ‘명품 중 명품’으로 인정받는다. 35㎝급 굴비 10마리가 달려 있는 세트는 보는 것도 쉽지 않다. 30㎝짜리와 비교해도 한눈에 확 차이가 난다. 산지가로 이 ‘특등 굴비’는 세트당 얼추 100만~150만원. 여기에 포장비와 유통비, 물류비 등이 합쳐져 서울 고급 백화점에서 250만원짜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만으로는 ‘250만원’이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해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잡은 굴비도 35㎝가 되면 250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중국 어선이 국내에서 잡은 굴비는? 영광 이외의 지역에서 건조된 굴비는? 결론적으로 이런 굴비는 250만원을 부를 수 없다. 절반 값도 안 된다. 결국 국내 어선이 특정 어장에서 특정 기간에 잡은 굴비를, 영광에서 건조해야만 250만원짜리 굴비 ‘후보’로 겨우 등재될 수 있는 것이다. “굴비는 주로 추자도와 소흑산도에서 잡힌 것을 최고급으로 쳐줍니다. 다른 지역에서 잡힌 굴비보다 맛이 훨씬 좋지요. 또 중국 어선은 냉동기술이 떨어져 제대로 굴비 맛을 내기 어렵습니다. 또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지요. 3~4월에 잡힌 굴비는 알이 있습니다. 가을에 잡히는 굴비는 대부분 알이 없는데요, 알 있는 굴비는 두 배 값을 받지요.” ‘영광에서 건조해야 제 값을 받는 이유’도 따로 있다. 영광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금을 조기에 뿌리고 몸통에 짠 맛이 배게 하는 ‘섶간’은 영광 굴비가 명성을 얻게 해주는 1등 공신이다. 최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영광만의 섶간 비법이 있다”며 “일정하게 간을 배게 하려면 기후와 소금의 질과 양이 중요한데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광에서 말려 영광에서 천일염으로 간을 해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광’ 지역과 ‘굴비’를 하나로 묶어 얘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인종 때부터 영광 굴비가 맛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특히 법성포는 300개에 이르는 굴비가게가 즐비하다. 최 대표는 “국내 유통되는 굴비는 대부분 ‘법성포’나 ‘영광’이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지만 실제 이곳에서 생산되는 굴비는 30% 정도”라고 말했다. 35㎝급 굴비는 가히 ‘생선의 황제’로 부를 만하다. 그러나 수산물에는 또 하나의 ‘황제’가 있다. 죽방멸치다. 상품 기준으로 4~7㎝짜리 중멸치 2㎏ 한 박스에 백화점에서 100만원을 호가한다. ‘멸치 한 마리가 수백원’이란 우스갯소리도 죽방멸치 때문에 나왔다.

▶삼천포 앞바다에서 잡은 죽방멸치를 찌고 있는 어민 이선호씨.

‘100만원짜리 멸치’는 믿기 어려운 값이다. 하지만 현지에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현지 어민 대부분이 타당한 가격으로 본다. 전태곤 죽방염협의회장은 “46개 죽방염에서 매년 2㎏짜리 10만 박스가 생산되는데 최상품은 5000박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방멸치는 상품가치도 뛰어나지만 한마디로 ‘희귀품’으로 그만한 값을 한다”는 게 전 회장 생각. 백문불여일견(百問不如一見)이다. 삼천포 앞바다로 가 “한 번 보자”고 하니 멸치를 분류하던 한 아주머니가 멸치를 내보인다. 일반 멸치를 함께 보여 주며 “다르지 않으냐”고 묻는다. 한눈에도 달라 보인다. 은빛이 진하고 가지런하다. 시커멓고 어딘가 구부러진 일반 멸치와 비교하면 확실한 차이가 있다. 맛은? 아주머니는 “씹어 보라”고 한다. 죽방멸치가 꼬들꼬들하고 고소하다면 일반 멸치는 약간 쓴맛이 난다. 일을 하던 아주머니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씹을수록 맛이 깊어졌다. 물론 모든 죽방멸치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은 아니다. 죽방멸치 자체가 비싸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죽방멸치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고 좋은 제품만이 그 값을 받는다. 멸치는 보통 크기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죽방멸치도 마찬가지. ‘세멸’ 또는 ‘소멸’로 불리는 작은 멸치는 볶음용으로, 4~7㎝ 중간 크기의 ‘중멸’은 술안주나 볶음용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대멸’이나 ‘띠포리’ 등 큰 멸치는 국물용으로 주로 쓰인다. 이 중 최고가는 중멸치이고 그중 상품(上品)이 100만원에 팔리는 것이다. 다른 멸치는 5만~20만원 사이다. 도대체 죽방멸치가 뭐기에…. 죽방멸치는 말 그대로 ‘죽방(竹防)’, 즉 대나무로 만든 방책을 활용해 잡은 멸치다. 대나무를 바다 한가운데 ‘발’처럼 쳤다 해서 정식명칭은 ‘죽방염(竹防簾)’이다. 바다 바닥에 돌을 쌓아 대나무를 발처럼 촘촘히 엮은 뒤 발 둘레에 그물을 쳐 둔다. 밀물 때 바다를 따라온 멸치가 썰물 때 이 죽방 안에 갇히게 되는 원리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죽방염을 “가장 오래된 원시어법”으로 부른다. 대를 이어 죽방멸치 어장을 관리하는 어민 이재희(40)씨의 설명을 들으면 일반 멸치와 죽방 멸치의 차이를 알게 된다. “멸치는 보통 중형 이상의 어선 두 대가 그물을 쳐 잡습니다. 잡은 멸치를 배 위에 올려 놓으면 선원들이 삽으로 퍼 나르지요. 멸치가 스트레스를 받고 몸을 다치게 되지요. 게다가 멸치를 스팀으로 찝니다. 군대에서 밥을 스팀으로 찌잖습니까? 맛이 없잖아요. 멸치도 똑같습니다.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맛이 씁쓰름하지요.” 반면 죽방멸치는 천연 그대로다. 물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멸치를 그대로 떠 손으로 정성스럽게 찌기 때문이다. 크기에 따른 분류도 직접 손으로 하기 때문에 다치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 “현재 죽방멸치는 사천과 남해에서만 잡힌다”는 이재희 씨는 “죽방염도 줄고 멸치도 잘 잡히지 않아 걱정”이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방멸치는 ‘희소 가치’로 지금도 비싸지만 앞으로는 더 비쌀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죽방멸치 어떻게 잡나… 누구나 죽방으로 멸치를 잡는 방법을 궁금해 한다. “어떻게 잡느냐”는 질문에 삼천포 앞바다에서 죽방염을 운영하고 있는 어민 문야성씨는 머뭇거리다 “설명해도 몰라”라고 한다. 한참을 설득해 들으니 대충 알 만하다. 일단 바다 한가운데 대나무로 빙 둘러싼 방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방 한쪽을 터 삼각형 형태로 두 개의 대나무 벽을 100m쯤 펼친 뒤 방과 벽에 그물을 쳐 둔다. 밀물에 몰려온 멸치가 죽방에 갇힌다. 물이 빠져나가면 남는 게 바로 멸치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문야성씨는 “조석간만의 차가 적당하고 물살이 세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 곳에서나 죽방염으로 멸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적합한 바다가 삼천포와 남해시 앞바다다. 죽방멸치가 오직 이곳에서만 잡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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