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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는 ‘고수’들 한데 묶어야

흩어져 있는 ‘고수’들 한데 묶어야

▶금융전문가들은 금융 휴먼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세계한상대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1일 부산에서 열린 제6회 세계한상대회 개막식.

투자은행 업무는 인맥 싸움이다. 골드먼삭스나 메릴린치 등이 세계 IB시장을 주무르는 것도 모두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내놓은 정부당국도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금융 인맥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계 한국계 금융인재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10여 년간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투자은행 및 부동산금융 업무를 담당해 오다 올해 초 국내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K상무의 지적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부족한 금융전문인력을 보충하고,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뻗어있는 재외동포 금융인들과 외국계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금융 전문가가 K상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세계 한국 금융인 네트워크’ 구축을 주장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권 수석연구원은 “금융산업은 지식기반 산업이자 휴먼 네트워크 산업이기도 하다”며 “재외동포 금융인들이나 외국계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을 국내 금융기관에 유인할 수 있다면 금융전문인력 보충은 물론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전 세계 한국 금융인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만남의 장(場)’, 즉 ‘세계한금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권 수석연구원은 주장했다. 해가 지지 않는 금융제국 영국에서는 ‘마이 월드, 마이 본(My world, my bond)’이라는 말이 있다. 즉 오랜 경험으로 쌓은 인맥과 노하우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금융권에는 젊고 능력 있는 인재가 많다”며 “문제는 이들을 이끌어줄 인적 네트워크와 선진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은 정부가 인맥 관리까지
사실 국내 금융산업이 지금까지 성장한 데는 재외동포 금융인이나 외국계에서 선진금융기법을 배워왔던 한국 금융인들의 힘이 컸다. 이들이 국내 금융기관의 CEO 또는 임원 등으로 들어와 선진금융기법과 조직문화를 전수, 전파하면서 조금씩 선진화가 이룩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 대표적 인물이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하영구 한국 씨티은행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기범 메리츠증권 사장, 이원기 KTB자산운용 사장, 조재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사장, 최홍 ING자산운용 사장, 이원일 알리안츠자산운용 사장, 곽태선 세이에셋자산운용 사장 등이다. 최근에도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활약하던 한국인들이 속속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달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IB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이찬근 전 골드먼삭스 한국 대표가 하나IB증권 사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또 씨티그룹 한국 대표 출신인 오진석씨가 삼성증권 IB사업본부 고문으로, 도이치뱅크에서 10년간 파생상품 전문가로 근무했던 정인석씨가 굿모닝신한증권 파생담당 상무로, 도이치증권 서울지점에서 국제영업을 담당했던 양진이씨가 대우증권 국제영업담당 전무로, 론스타에서 부동산금융 전문가로 활약한 김경수씨가 하나대투증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상무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국내 해외파 1세대인 이원기 KTB자산운용 사장은 “재외동포 금융인이나 외국계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산업을 국가 주요 성장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도 해외 금융시장에서 활동 중인 자국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 전담기구를 만들고, 인맥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국제 금융 콘퍼런스 등을 통해 국내외 금융인들의 정기적인 만남을 갖게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화상(華商)과 글로벌 중국 금융포럼(GCFF)이다. 세계 4대 상인조직인 화상은 고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숨은 동력으로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본력과 6000만 명에 달하는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이 네트워크에는 세계 각국에서 활약 중인 화교 금융인도 대거 포함돼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이 화상 네트워크를 경제 동력으로 키우는 한편 글로벌 인맥 비즈니스를 성사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중국의 국부펀드들이 글로벌 M&A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도 화상 금융 인맥들의 영향이 컸다. 한국화상총연합회 관계자는 “화상 네트워크 내에는 일반 제조, IT,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맥들이 세분화돼 있다”며 “각 분야의 많은 글로벌 인재가 직간접적으로 중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GCFF는 전 세계 화교 금융인과 중국 현지 금융인, 외국 금융전문가들이 정보를 나누고 인맥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인맥 네트워크 기구다. GCFF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기적으로 전 세계에서 글로벌 금융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세계한상대회 활용도 한 방법
주요 국가들이 이처럼 글로벌 휴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심지어 재외동포 금융인이나 외국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기초 통계조차 없다. 동북아 금융허브의 일환으로 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금융연구원 산하에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를 설립했다. ‘글로벌 한국 금융인 네트워크’ 구축과 ‘재외동포 금융인 대회’ 개최 등을 위해서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이 계획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는 누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등에 대한 기초 DB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예산 지원 부족과 홍보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당초 금융연구원은 센터를 설립할 당시 26억원의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고작 1억원이 전부였다. 원장과 연구원 등 6명으로 구성된 센터의 운영비는커녕 인건비도 충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더욱이 정부 차원의 홍보 부족으로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DB 협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 관계자는 “인력 DB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협조가 중요한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해외 한국계 금융인에 대한 DB 구축은 개인정보 취득 제한 등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이 얼마나 안일하게 추진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애초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를 금융감독원이나 세계 한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재외동포재단 등에 설립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없다면 그 효과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기관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라며 ‘세계한금네트워크’ 구축이 용두사미로 끝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세계한금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세계한상대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세계한상대회는 전 세계 117개국 530개의 한인회를 잇는 인적-물적 네트워크로 700만 명의 재외동포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2년마다 개최되는 세계한상대회는 지난 10월 31일 부산에서 국내외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섯 번째 행사를 열었다. 특히 올해는 40여 명의 재외동포 금융인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영훈 재외동포재단 한상팀장은 “전 세계 700만 명의 재외동포를 잇는 인적 네트워크인 세계한상대회는 지난 5차 때 3억5800만 달러의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등 경제적 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정부와 금융업계가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한다면 금융부문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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