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시아 외교시대 연다
신아시아 외교시대 연다
이명박 선장이 진두 지휘하는 한국호가 새로 출항한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 한국 최대 기업 CEO 출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어려운 한국 경제를 다시 살려, 글로벌 일류국가를 건설하리라는 기대가 높다. 반면, 이 당선자는 외교·안보·통일 분야에 식견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이 당선자와 정기적으로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토론하고 조언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노무현 정권은 외교·통일 분야에 능력을 가진 정부라고 스스로 자신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지난 5년 동안 외교는 북한 문제에 매몰됐었고, 외교 영역도 동북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 핵 위기는 심화됐고, 한·미 동맹은 약화되었으며,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국제 정세도, 우리의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동북아 균형자론’과 같은 엉뚱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외교 철학, 아니 외교 자체의 부재였다. 이 당선자는 ‘글로벌 실용주의 외교’를 주창한다.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기업 활동을 펼쳐왔고, 냉전시대에도 기업인으로서 동구권을 여행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경제·정치 지도자들과 친분을 다져왔다. 글로벌 CEO로서의 경험은 단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아시아 외교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으로 예상된다. 물론, 신아시아 외교 이니셔티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추진돼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한 국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깊은 안보 이해관계와 경제 교류를 유지해 왔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투사할 충분한 군사력을 가졌다. 우리나라와 영토분쟁 같은 심각한 이익의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없으면서, 공동의 안보·경제 이해관계와 공통 가치를 공유한다. 그래서, 필요시 신속하게 군사력을 동원할 의지도 있다. 이러한 미국과 신뢰에 바탕을 둔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게 이명박 차기 대통령의 생각이다. “친미를 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면 친미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념을 뛰어넘어 전략적 사고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외교철학을 잘 보여준다. 한·미 동맹의 강화는 국제정치의 현실적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통일이 우리 민족의 소망이고,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가 우리 안보에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나 통일도, 북한 핵문제도 남북관계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한·미 공조와 6자회담 체제를 주축으로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미국과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야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약화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 논리에 미국의 세계안보전략 변화까지 겹쳐 한·미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 당선자는 약화된 한·미 관계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안보환경에 맞추어 한·미 관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새로운 안보 요소로 등장한 경제, 에너지, 테러, 환경 등에 대한 한·미 공동의 위기 인식에 덧붙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인권 수호라는 공동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미래지향적인 한·미 동맹관계로 발전시키자는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의 ‘신아시아 외교 구상’은 미국을 포함해 이웃 국가 일본, 중국, 러시아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외교 지평을 동북아를 뛰어넘어 호주, 인도,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ASEAN) 국가로 확장해 나간다는 데 있다. 이 당선자는 2006년 11월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과거사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은 이웃 나라들과의 과거사 문제를 자발적으로 먼저 정리할만한 세계 2, 3대 강국임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 개방 3000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으로 나온다면 10년 안에 북한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를 맞이하는 데 적극 지원하겠다는 공약이다. 이 정책의 의의는 북한이 핵을 가졌을 때 받게 될 손실과 핵을 포기했을 때의 이익을 명확히 함으로써 북한이 스스로 개혁과 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데 있다. 북한 핵의 폐기를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리라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이 2·13 합의에서 동의한 기존 핵시설의 불능화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성실한 신고를 완료하는 시점에서 대규모 남북경협을 위한 준비작업 착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남북경협의 수준은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 의지에 맞게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당선자는 2006년 10월 말 독일을 방문해 전직 서독 총리와 동독 총리를 포함한 고위관료들과 만났다.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와의 대담에서 ‘헬싱키 프로세스’가 동·서독 인적교류, 동독의 인권문제 개선, 독일의 평화적 통일에 미친 영향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중요성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이는 이명박 차기 대통령의 대북 인도적 상호주의 원칙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구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된다. 또한, 로타어 데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와의 면담 중 동·서독 경제통합의 중요성과 동독이탈 주민에 관한 논의는 남북한 경제공동체 통일방안과 이산가족이나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관한 방안을 더욱 심도 있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짐작한다. 이 당선자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6자회담과 같은 다자체제를 가동해야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북한 핵 폐기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대북지원도 북한 주민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북핵 폐기와 상관없이 북한 주민을 위해 쌀, 의료지원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을 한다. 그 대가로 대대적인 이산가족 상봉, 고령자의 고향 자유왕래, 납북자나 국군포로의 송환을 추진한다는 인도적 상호주의 원칙도 강조한다. 통일문제 역시 미래지향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지역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여전히 많은 독일인이 고통 받는 현실을 보면, 통일은 단순히 분단된 국토의 연결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통일을 하는가”뿐만 아니라 “어떤 통일을 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통일된 조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바탕을 두고 인류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 모두에게 더 나은 통일한국이 돼야 하기 때문에 통일은 분단의 극복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건국이라는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국가의 건립은 남과 북이 모두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룩된다. 새로운 건국이라는 차원의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도 변해야 하고 동시에 북한도 변해야 한다. 남한은 시장경제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반면 북한은 시장경제의 도입은커녕 북한주민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한다. 오히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면서 ‘선군정치’를 강화했다.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 북한이 변해야 한다. 북한이 변하려면 북한 지도자들이 먼저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남북이 모두 상생할 새로운 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개혁의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글로벌 기여 외교와 에너지 자원 외교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리라 기대된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보면 ‘선도 중견국’의 위치를 점한다. 세계 12위 경제 강국의 위상에 맞게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기여 외교, 프라이드(pride) 외교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 두 번의 정부가 등한시했던 에너지 자원 외교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기여 외교, 에너지 자원 외교 역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역량에 맞고 우리가 공헌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기여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먼저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와 놀라운 경제성장 경험을 필요로 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개도국에 전수해야 한다. 이들에게 경험과 관련 정보는 물론 인적자원의 지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해외공적원조(ODA)의 수준도 증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보유한 높은 IT기술과 경험도 전수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외교의 필요성도 인식해야 한다. 혼란과 분쟁이 있는 곳에 우리나라도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 에너지 자원 외교도 에너지 자원 강대국들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에너지 자원 약소국들과의 관계 개선 및 경제개발 지원 및 협력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 나간다는 실사구시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이명박 공장장이 진두 지휘하는 한국 희망공장이 드디어 가동되기 시작한다. 향후 5년간 글로벌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한·미 동맹 강화, 북핵 폐기, 신아시아 외교 이니셔티브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벅찬 마음으로 기원한다. 지난 4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한 뜻 깊었던 시간들, 감격적인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그동안 필자와 함께한 40여 명의 학문적 동지의 애국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필자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이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이명박 당선자의 외교·안보 분야 자문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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