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제한 풀어야 시장 큰다”
“투자 제한 풀어야 시장 큰다”
▶1957년 경북 경산 생, 경북고·고려대 경제학과,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 제일투자금융 입사, 신한종합연구소 책임연구원, 신한생명보험 투자운용실장, 현재 스틱인베스트먼트 부회장, 디피씨 사장 |
3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사무실. 3월 25일부터 협회의 새 회장을 맡는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부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날 협회 사무실을 찾은 홍석우(55) 신임 중소기업청장과 차기 회장 자격으로 인사를 나누고 협회 현안을 간단히 논의한 결과 얘기가 잘 통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 뒤인 14일 오후에 서울 대치동 스틱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도 부회장은 “(중소기업청장 자리에)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온 듯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새 중소기업청장이 산업자원부 공무원 출신이라 답답할 줄 알았는데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도 부회장은 빙빙 돌려서 말하기보다 직설적으로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로선 시장이란 화두를 놓고 대화하면 복잡한 문제도 술술 풀릴 듯해서 회장 자리를 맡은 부담을 반쯤 덜었다고 말했다.
“말 통하는 새 중기청장 반가워”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인 도 부회장은 정통 금융과 벤처캐피털이란 특수 금융을 두루 경험한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신한은행의 모체인 제일투자금융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15년 동안 신한경제연구소와 신한생명보험 등을 거치며 정통 금융시장을 경험했다. 그러다 1996년 독립해 스틱투자자문을 세워 투자 자문과 경영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99년에는 스틱인베스트먼트를 만들면서 벤처 투자에 발을 디딘 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회사를 벤처캐피털 업계 1위에 올려놨다. 그가 세우고 키운 스틱인베스트먼트의 누적 펀드결성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조원을 넘었다. 국내 첫 사례다. 벤처캐피털의 투자 자산 규모가 크면 클수록 회사 자체의 경영 안정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벤처 업계에도 자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860억원을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둘째로 투자를 많이 한 일신창업투자(751억원)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협회 회원사들이 그를 회장으로 추대한 이유도 그와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사람과 회사가 나서야 업계의 이익을 더욱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특히 벤처캐피털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기업공개(IPO) 시장이 신통찮은 가운데 많은 벤처캐피털이 증권업 진출이나 기업 인수·합병(M&A), 해외 사업 확대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 도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도 회장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협회 일을 할 때 이런 강점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예컨대 그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규제 문제가 그렇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벤처캐피털마다 덩치와 실력, 그리고 전략이 다른데 규제는 똑같이 적용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투자은행이나 증권사 등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 가뜩이나 벤처캐피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에 위기감도 적지 않다. “미국의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역할 분담이 잘 돼 있어요. 작은 벤처캐피털은 갓 창업한 벤처기업에 50만~100만 달러 정도를 투자해 키워서 좀 더 큰 벤처캐피털에 넘깁니다. 그러면 그 회사가 더 많은 돈과 더불어 전문 경영인이나 재무 전문가 등도 보강해 한 단계 끌어올려 자신보다 더 큰 벤처캐피털에 팔죠. 거의 IPO 직전 단계로 성장한 벤처 기업을 넘겨받은 대형 벤처캐피털은 상장 등으로 투자 자금을 회수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런 메커니즘이 없어요.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 모두 이런 기능이 절실한데 말이죠. 특히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은 창업 중심이라 벤처캐피털이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민간에서만 펀딩했다면 투자 제한 없애야” 그는 ‘벤처캐피털이 조성한 펀드의 일정 부분은 반드시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식의 규제도 회사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나랏돈을 투자 받은 펀드와 민간에서 돈을 끌어들여 만든 펀드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나랏돈을 투자 받아야 펀드를 만들 수 있는 작은 벤처캐피털은 그에 상응하는 규제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민간에서 펀딩할 수 있는 대형 벤처캐피털은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펀딩과 투자 능력을 갖춘 회사는 투자은행이나 증권사와 겨룰 무기를 갖출 수 있고, 벤처캐피털 업계가 고루 정책 자금의 혜택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이 정도라도 규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벤처캐피털이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돈이 되는 게 시장이고, 돈이 몰려야 판이 커지는데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정부만 맹활약 중이고 벤처캐피털은 뒷짐지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벤처 버블기 이후 처음으로 벤처 투자와 벤처펀드 결성 규모가 동시에 1조원을 넘었고, 벤처 기업 수도 2006년보다 14.7%나 늘어난 1만4000개가 넘었지만 벤처캐피털의 체감 경기는 썰렁하다는 지적이다. “숫자가 좋아진 건 중소기업청의 모태펀드와 국민연금 등의 덕이 큽니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펀딩하지 못하는 벤처캐피털이 꽤 됩니다. 벤처캐피털을 집안의 간판이나 상속 수단으로 여기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어 그럴 지도 모르지만 정말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맏형 격인 KTB네트워크가 왜 증권 업계로 눈을 돌리겠어요. 벤처 투자는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결론 때문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벤처캐피털은 왜 ‘본연의 업’인 벤처 투자를 꺼릴까. 그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먼저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업공개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보고 있다. 투자 기업의 상장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데다, 상장해도 얼마 못 가 공모가를 밑도는 경우가 많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M&A 등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비율이 70%가 넘지만 국내에서는 정서적인 거부감이 강하고 제도적 뒷받침도 미약해 남의 얘기에 불과하다. 다음으론 경제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은 가운데 실력도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벤처 기업의 투자 가치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벤처캐피털 입장에서는 싼값에 투자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투자 기업은 여전히 비싼 값을 부르고 있다는 얘기다. 도 회장은 “시장에 나와 있는 대형 M&A 매물은 뻔한데 돈이 넘쳐나 값이 너무 오르자 사모펀드 등이 작은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덩달아 이들의 몸값도 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털이 커야 투자은행도 발전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타개할 묘수는 없을까. 도 회장은 결국 규제를 없애는 게 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돈이 몰리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벤처 투자를 꺼리면 나라 전체적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잃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듭 말하지만 작은 벤처캐피털은 화끈하게 밀어주면서 철저히 감시하면 되고, 큰 벤처캐피털은 알아서 뛰도록 내버려두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캐피털 시장의 판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등 선두주자들이 벤처 투자란 본연의 영역을 뛰어넘어 M&A나 기업구조조정(CRC) 시장으로 뛰어들고 해외로 나가는 것을 박수 치며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벤처캐피털이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도 벤처캐피털을 지렛대 삼아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어떤 회사? |
“팬 아시아 투자사로 도약” 포부 도용환 신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이 이끄는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스틱IT벤처투자에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스틱IT벤처투자는 도 회장이 96년에 만든 스틱투자자문과 SK텔레콤이 공동 주주로 참여해 1999년에 첫 선을 보였다. 투자 범위를 IT 영역 밖으로도 넓힌다는 포석에서 지난해 스틱인베스트먼트로 재출발했다. 벤처 버블기인 99년에 등장해 후발 업체란 한계를 극복하고 단숨에 업계 선두권으로 부상한 이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금 모집(Fund Raising) 능력이다. 특히 도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자금을 끌어들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해외 펀딩을 “눈물겨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세드코라는 회사에서 자금을 받은 그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열사의 땅에 혈혈단신으로 건너가 사우디 부호들을 만나기 위해 온갖 포럼이란 포럼은 다 찾아 다녔고, 이 과정에서 명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e메일을 수백 통 보냈다. 그는 그렇게 어렵사리 끌어들인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국내에서는 낯설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인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을 도입했다. 캐피털 콜은 벤처 펀드 총액을 모두 모은 후 기업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투자 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금을 받는 방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목돈을 한꺼번에 내지 않아도 벤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도 회장은 여기에 중간중간 이익금까지 챙겨주며 신뢰를 쌓았다. 그는 “현재 해외에서 7000억원가량을 모았는데 올해 1조원이 넘을 것”이라며 “앞으로 해외 펀딩 비중을 전체 자금의 80%선으로 끌어올릴 목표”라고 말했다. 해외 펀딩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스위스를 넘어 독일, 영국 등으로 늘릴 계획이다. 해외에서 받은 자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투자한다. 도 회장은 실리콘밸리, 홍콩, 상하이(上海) 등 세 곳에 현지 법인을 두고 현지에서 투자를 받아 현지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의 채택하고 있다. 도 회장은 특히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투자 지형을 넓혀 팬 아시아 투자사로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스틱인베스트먼트=도용환’이란 인식을 깨기 위해 지난해 말 이사회를 열어 이 회사의 부회장으로 한발 물러난 그는 현재 일상적인 펀딩과 투자는 후배들에게 맡겼다.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낯선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해 모든 의사결정을 파트너회에서 내릴 수 있게 바꿔놨다. 대신 그는 이제 막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이 회사의 글로벌화에 매진할 계획이다. 누적 투자 자산이 1조원을 넘긴 상황에서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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