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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박용민의 영화로 읽는 세상]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 ‘찾는다’

[외교관 박용민의 영화로 읽는 세상]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 ‘찾는다’

<스타 트렉> (Star Trek)은 탐색 과정을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의 드라마다. 프런티어 정신을 담은 것이다. 첫 우주인을 배출한 우리나라도 이를 계기로 ‘마음 속의 국경선’을 멀리 확장하며 미래를 개척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이 처음 대기권 밖을 다녀왔습니다. 러시아가 돈벌이로 운영하는 우주 관광에 세금을 낭비했다는 등 냉소적인 견해도 있더군요. 하지만 우주 개발은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본인이 최초로 상업용 우주선에 승선한 지 16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우주 정거장 개발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돼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도 우주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주 개발은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의 국경선을 더 멀리 확장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스타 트렉> 은 파라마운트사가 판권을 소유한 5개 TV 시리즈와 10편의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및 파생상품들을 통틀어 일컫는 이름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재방영되고 있는 TV 시리즈의 편수를 헤아려 보면 79편(1966~69년), 178편(87~94년), 46편(93~99년), 172편(95~2001년), 98편(2001~2005년) 등 573편에 이릅니다. 극장용 영화로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11번째 작품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23세기를 배경으로 한 첫 시리즈의 주인공은 고민보다는 행동이 빠른 금발의 커크 함장이었습니다. 80년대 제작된 후속편 에는 신중하고 철학적인 프랑스인 함장이 등장하고, 그 배경은 24세기입니다. 불과 20년 사이에 기술과 문화의 변화 폭이 어찌나 컸던지, 전편으로부터 최소한 한 세기 정도 이후 설정이어야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현실의 진보가 상상력의 속도를 앞지른다는 뜻이니까요. 소련이 해체되던 91년에 개봉된 영화 에서, 행성연합의 숙적 클링온 제국은 우주 재난으로 더 이상 제국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행성연합과 평화협정에 서명합니다. 영화는 불가불 현실의 거울인 것이죠. 탈냉전 시대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며 <스타 트렉> 의 우주도 점점 복잡하게 변해갑니다. 93년 시작한 시리즈는 식민 행성의 독립, 테러리즘, 비밀정보 조직과의 갈등, 전쟁 등 무거운 주제들을 다룹니다. <스타 트렉> 은 당연히 TV 연속극의 한계를 지니고 출발했지만, 과연 얼마만큼 미국 중심적이고 백인 남성 중심적일 것이냐는 질문과 줄곧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습니다. 지금보다 나아진 미래, 지구보다 넓은 사회를 묘사해야 했기 때문이죠.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흑인민권 운동이 아직 큰 어려움을 겪던 어린 시절, 엔터프라이즈호 사령실에서 흑인 여성이 장교로 활약하는 데서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4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스타 트렉> 은 미국의 대중적 정치관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행성 간 관계’에 대한 일반 대중의 평균적 상상력 속에, ‘국가 간 관계’에 대해 그들이 품은 관념의 원형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최근 시리즈 <엔터프라이즈> (Enterprise)는 첫 시리즈보다 한 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행성연합의 수립 과정을 다룹니다. 지구는 우주 탐사에 갓 뛰어든 신참 행성이지만, 엔터프라이즈호가 행성 간 관계 개선에 희생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덕에 중요한 중재자의 지위를 얻습니다. 이런 설정은 비현실적이긴 해도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인생사에서처럼, 외교에 있어서도 최대의 무기는 성실과 진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유능한 외교관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19세기 프랑스 외상 탈레랑은 혁명기를 거쳐 정권이 몇 번씩 뒤집히는 동안에도 외교의 수장 자리를 지킬 만큼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나폴레옹과 은밀히 결탁해 혁명정부 타파에 일조하는가 하면, 나중엔 차르에게 나폴레옹 타도를 권하기도 했던 그는, 한 사람의 외교관으로서 배신과 기만을 거듭하면서 외교의 정도를 역주행 했던 겁니다. 그가 낳은 것은 평화를 영속시킬 정당성이 아니라 전란의 기틀이었죠.
내년 작품서 우주 탐사 본격화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거짓말만 하면서도 아무도 못 속이던’ 사람이라면, 탈레랑은 ‘참말만 하면서도 모두 속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세간의 평이 전해옵니다. 외교관은 때로는 자신감을 때로는 겸손을 연기할 능력을 갖추긴 해야 하지만, 외교적 능력이란 것은 결코 속임수와 등가물은 아닙니다. 성실을 실천하고 인정받는 외교는 국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처럼 강대국 틈에 낀 나라의 장래에 걸어볼 기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행성들이 연합체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성실을 밑천으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지구인 아처 함장의 동화는 그래서 유쾌합니다. 우리말에는 뭔가를 탐색한다는 낱말과, 탐색 끝에 그것을 발견한다는 낱말이 따로 없습니다. 탐색과 발견이란 한자어가 있긴 하지만, 우리말로는 search도 ‘찾다’, find도 ‘찾다’죠. 그러다 보니 예컨대 누가복음 구절은 부득불 (잃어버린 동전을) “찾도록(until she finds it) 찾는다(search)”고 번역됐습니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거기 도착하는 결과 못지않게, 때로는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정을 일컫는 우리말이 따로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과정으로서의 찾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찾는(search) 것보다 많은 것을 찾아(find)냅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여러 발견들은 계획했던 결론의 도출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잡음(noise)들로부터 나왔듯이…. <스타 트렉> 은 탐색 과정을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의 드라마입니다. ‘마지막 변경인 우주’에서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용감히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내년에 개봉될 영화 <스타 트렉> 은 먼 우주 탐사가 본격화되는 시점을 다룬다니까, 우리 속에 잠자는 프런티어 정신에도 자극이 돼 줄 걸로 기대해 봅니다. 별 수 없이 ‘개척정신’이라고 번역되곤 합니다만, ‘프런티어 정신’은 산악인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와 비슷하기도 하고, 연어의 회귀와는 반대로 낯선 곳에 뼈를 묻는 역(逆) 노스탤지어 같은 정서도 포함합니다. ‘미지(未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까요? <스타 트렉> 의 원작자 진 로든베리는 91년 85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우주에 쏘아 올려 졌습니다. 가본 적도 없던 우주공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사후에나마 풀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아직 우주에 대한 관심이 적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드넓은 미지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해줬다면, 최초의 한국인 우주 비행의 참 의미는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호부터 외교관 박용민 씨의 ‘영화로 읽는 세상’을 싣습니다. 박용민 씨는 다양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행간’에 담긴 자칫 놓치기 쉬운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줍니다. 그는 “영화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나 교민들과의 대화에서 서로의 접점을 찾아내기에도 좋은 매체”라고 말합니다. 그는 미국과 중동 지역 대사관을 거쳐 현재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 중입니다. 그동안 ‘곽한주의 시네파일’을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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