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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 힘든 ‘보통사람’ 타령

참기 힘든 ‘보통사람’ 타령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세라 페일린이 CBS 뉴스의 앵커 케이티 쿠릭과 대담할 때였다. 쿠릭은 페일린에게 대법원의 판결 중에서 동의하지 않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의 참모들도 그 질문이 공평했다고 인정했다).

그 질문을 받고 페일린은 잠시 뜸을 들였다. “글쎄요. …물론 미국의 위대한 역사에서 모든 미국인이 동의할 수 없는 판결이 있었죠. 예를 들어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같은 판례 말이죠. 나는 그것이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 지방 법원의 차원에서 결정되는 게 옳았다고 봐요. 미국 역사를 훑어보면 그 외에 다른 판례들도 있지만….”

쿠릭이 물러서지 않고 캐물었다. “생각나는 다른 예가 없나요?” 페일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글쎄요. …지방 차원에서 다뤄지는 게 가장 좋았을 판결이 있었죠. 내가 이의를 제기할 만한 판결 말이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시장으로서, 다음에는 주지사로서, 심지어 만약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통령으로서 나는 그런 판결을 바꿀 입장에 있지 않아요. 현재 해석되는 대로 우리나라 법을 지지해야 하는 입장이죠.”

나중에 그 대화에 관해 묻자 매케인의 한 고문은 그 질문이 공평했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판결 사례를 열거할 수 있는 미국인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대법원의 판결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은 그녀 자신이 보통의 미국인들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페일린이 공화당 대선 티켓에 합류한 것은 그녀가 보통 미국인들과 똑같기 때문이다. 정·부통령 후보팀을 꾸리는 데 정치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일은 앤드루 잭슨(미국의 7대 대통령·최초의 서부 출신 대통령으로 민주당의 현 체제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이 존 C 칼훈과 함께 출마한 이래 줄곧 있어 왔다. 잭슨은 나중에 칼훈을 죽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출마 이유에 대한 페일린의 그런 솔직한 설명은 선거 자체만이 아니라 민주적인 리더십에 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공직을 떠맡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알래스카에서 태동하는 반골주의가 출사표이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인들이 평범한 보통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원할까?

아니면 보통사람을 충분히 이해하는 지도자를 원할까? 거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차이다. 한발 더 나아가 만약 매케인-페일린 공화당 티켓이 승리한다면 미국의 통치 체제도 그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페일린은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인 조셉 R 바이든 상원의원과 TV토론을 하기 전에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행자 휴 휴잇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는 답변을 했다.

“주지사님의 출마는 극단적인 적대감에 불을 붙였습니다. 좌익 일각과 진보 언론에서는 노골적인 증오가 표출되고 있습니다”라고 휴잇이 말했다. “본인으로서는 이런 반응이 뜻밖인가요? 또 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하나요?”

애리조나주 세도나에 있는 매케인의 목장에서 휴잇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페일린은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은 외부에서 누군가가 들어와 ‘이봐요, 마침내 이제는 아주 평범한 조 식스팩(깡통 맥주 6개 들이를 사들고 귀가할 정도로 평범한 미국인이라는 뜻)이 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시대가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아주 불쾌해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 일부 사람의 허를 찔렀고 그래서 그들은 기분이 좋지 않고 화가 났겠죠.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은 매케인과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티켓이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의욕을 북돋워 줘요. 우리는 미국 정부를 나 같은 ‘조 식스팩’의 편으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죠. 또 우리는 부패 척결과 개혁 등 미국인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갈 거예요.”

그게 진짜 멋진 정치 수완인지 모른다. 나약함에서 힘을 창출해 내는 것. 그것은 언제나 유권자들에게 잘 먹혀드는 약삭빠른 전술이다. 페일린의 핵심 주장은 본질적으로 이렇다.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는 미국인 전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고 있으며, 지금은 미국인들이 새 대통령이 구세주로 나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부통령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페일린 자신이 킨키나투스(농사일을 하다가 전투에 나서 나라를 구한 뒤 권력을 다 포기하고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 고대 로마의 장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킨키나투스는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알았다는 점이다. 페일린은 때로는 영화 ‘찬스(Being There)’의 촌시 가디너(정원사로 세상과 격리돼 살다가 우연하게 각광받게 되는 인물)와 ‘파고(Fargo)’의 마지(임신 중인 몸으로 살인 사건을 수사해 범인을 체포하는 여자 보안관)를 기이하게 뒤섞어 놓은 인물처럼 비친다.

두 번째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는 다시 매케인에게 관심이 쏠릴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엘리트주의의 편견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위 공직 후보자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며,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관점에서 엘리트주의는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계급을 문제 삼지 않는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명사인 ‘Summer(여름)’를 동사로 사용하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어디서 삶을 시작했든 탁월함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점을 문제 삼는다. 잭슨·링컨·트루먼·아이젠하워·존슨·닉슨·포드·카터·레이건·클린턴은 전부 평범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주변 세계에 관심과 호기심을 내보이며 평생 비범한 일을 했다. 하지만 페일린에게는 그런 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매케인은 능력도 있고 호기심도 충분한 인물이다. 여러 방면에서 많은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녔고 경험도 갖췄다. 그는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똑똑하다. 그는 법안도 발의했고 책도 썼다. 누구나 쉽게 대통령감으로 상상할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페일린을 두고 솔직하게 똑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미국인이 얼마나 될까?

페일린이 취임 첫날부터 금융시장 붕괴나 테러 공격에 맞설 준비가 된 인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매케인의 경우 그의 정치관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췄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페일린의 자격을 두고는 말이 많다. 매케인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부통령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 잣대를 대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열성적인 공화당원들조차 페일린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부통령 후보 간의 토론이 끝난 뒤 공화당의 한 고위 인사는 내게 페일린이 “보통사람의 소박함”에 대한 이야기를 적게 하고, 대신 거대한 알래스카주의 주지사라는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런 상황은 있었다.

1970년 로먼 L 흐루스카(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은 리처드 닉슨이 연방 순회 판사 G 해럴드 카스웰을 대법관에 임명하는 문제를 두고 닉슨을 옹호했다. 카리스마가 없는 카스웰은 너무 ‘평범해’ 승진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흐루스카는 흥미로운 반론을 폈다.

“그가 평범하다고 하지만 판사나 변호사들 중에도 평범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도 어느 정도는 대표로 나설 자격이 있고, 약간이나마 기회를 잡을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대법원에 모두가 브랜다이스·프랑크푸터·카르도조 같은 기라성 같은 대법관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함을 수용하기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열망을 품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보통 사람이 정부 고위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은 오래된 논쟁의 주제다. 철학자 로버트 데일 오언(19세기 미국의 공상적 사회주의자)과 제러미 벤담(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자)은 공직의 순환 원칙을 철저히 믿었다. 일반 시민이 일정 기간 동안 정부에서 일하다가 다시 개인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초기에 앤드루 잭슨은 연방정부에 관해 비슷한 논조를 폈다. “모든 공직자의 임무는 너무도 평범하고 단순해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잭슨은 우체국장을 얘기한 것이지 대통령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초라한 배경 출신으로 뛰어난 업적을 쌓은 대통령과 부통령도 있었고, 특권층 출신이지만 형편없었던 대통령과 부통령도 있었다.

페일린에 대한 불안감은 사회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과 직결된 문제다. 페일린은 떠오르는 정치 스타다. 44세로 젊고 비범한 일을 해 온 인물이다. 부통령 후보를 승낙하고 그 직책을 떠맡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공직에 나서기보다는 관중석에서 야유를 보내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페일린은 주지사다. 또 그녀는 싸움터에 나설 용기가 있다.


그 점에서 페일린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그녀가 상원의원에 출마했다거나 각료로 지명됐다면(예를 들어 에너지부나 내무부 장관) 그녀에 관한 우리의 대화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페일린은 상원에 출마한 것도, 각료로 지명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녀가 실제로 재난에 의한 유사시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인물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1∼2년 뒤면 그녀도 준비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재난은 우리가 생각한 시간표대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만약 페일린이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이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게 정상이다. 페일린이 윙크를 하며 말했듯이 그녀가 혜성처럼 등장한 지 ‘5주’가 지났다. 이 시점에서 미국인들은 페일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뛰어난 정치 배우(토론에서 바이든을 상대로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잘 버텨 냈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인가? 아니면 형편없는 배우(토론에서 너무 많은 질문을 묵살했고, 쿠릭과의 대담에서는 끔찍한 순간으로 가득했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인가? 하지만 인간이니까 실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누구한테나 운 좋은 날과 운 나쁜 날이 있다.

그녀의 어법은 때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특이한 세계다. 조지 H W 부시(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는 영어가 친구라기보다 적인 듯이 어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복잡한 상황을 솜씨 좋게, 균형 있게 헤쳐 나간 기민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서민적인 표현들은 일부에게는 거부감을 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근감을 줬다.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지금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연기는 들쭉날쭉했다. 페일린은 부통령 후보를 수락하기 이전에도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그녀의 깜짝쇼는 신속하고도 신비스럽게 시작됐다. 현재 매케인 캠프에서 일하는 부시 대통령의 전 보좌관인 니콜 월리스와 매튜 스컬리는 지난 8월 말 오하이오주의 한 우중충한 호텔로 가면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그 하루 전날 월리스는 뉴욕의 한 치과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그때 매케인의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 슈미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오하이오주로 와 달라고 했다. 월리스는 거절하려 했지만 매케인의 팬인 치과의사가 진통제를 듬뿍 주며 괜찮으니 어서 가 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진통제로 멍한 상태에서 월리스는 신시내티에 도착해서는 스컬리와 함께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으로 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는 매케인이 지명한 부통령 후보가 다음날의 깜짝쇼를 위해 은거하고 있었다. 호텔 밖에서 매케인의 오랜 보좌관이며 연설문 작성자인 마크 솔터와 슈미트가 그들을 맞았다. 슈미트가 두 사람을 안내해 2층으로 올라가 닫힌 문 앞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당신들은 일곱째와 여덟째요”라고 슈미트가 말했다. 부통령 후보로 최종 낙점된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의 수를 의미했다.

문이 열리자 한 여성이 일어나 그들을 맞으며 호쾌하게 악수를 청했다. 아직도 정신이 멍한 스컬리와 월리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페일린이라는 그 여성은 아주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알래스카 주지사인 페일린은 그들과 악수했을 때 이미 현대 대통령 선거운동의 초현실적인 거품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혼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도 계속 외로운 상황을 말한다.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존 에드워즈가 자신의 참모들을 데리고 존 케리 대통령 후보 진영에 합류했을 때 처음부터 삐걱댔다는 사실을 잘 아는 매케인 캠프는 러닝 메이트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했다. 슈미트와 동료들은 노련한 공화당 인사들로 부통령 참모진을 꾸렸다. 페일린 측근들은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다.


페일린은 매케인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몰랐다. 세인트폴에서 예정된 전당대회 바로 전주의 금요일 데이턴에서 부통령 후보 선정 소식이 발표된 뒤 보좌관들은 페일린에게 각종 정책안이 담긴 두꺼운 바인더를 건넸다.

그러고는 매케인의 수석 고문들과 면담을 주선했다. 랜디 슈네먼, 더그 홀츠-이킨, 조 리버먼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페일린은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 날 매케인과 버스를 타고 유세를 돌면서 과제물을 받았다.

매케인이 이번 선거운동에서 한 모든 정책 연설문을 망라한 책자였다. 알래스카에서부터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페일린이 벼락치기 공부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한다. 바이든과 맞붙은 토론에서 그 점이 입증됐다.

알래스카의 지인 중 한 사람이 래리 퍼실리다. 그는 2007년 5월까지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지 기자로 활동하고 2008년 6월까지 페일린의 워싱턴DC 사무실에서 부실장으로 일했다. 그는 끝까지 페일린과 관계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페일린이 다른 좋은 직장까지 제안했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그는 페일린이 부통령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페일린이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는 관리자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하는 브리핑은 아주 짧아야 했다. 두꺼운 책자나 차트·백서·보고서를 몇 시간이고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지 안다. 그래서 ‘요점만 말해 주면 된다’고 했다. 주의력 집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집중하는 데 흥미가 없을 뿐이다.”

최근 몇 주 동안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페일린은 너무도 외로웠다. 페일린에게는 친구들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는 게 힘든 일이었다. 9월 중순 페일린의 야후 계정이 해킹당하면서, 그녀와 친구들 사이의 메시지가 온라인 게시판에 올랐다(그 메시지 중 하나에서 한 친구는 페일린에게 부정적인 언론의 접근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고향 와실라의 친구 크리스탄 콜은 페일린이 부통령에 지명된 직후에는 페일린과 e-메일을 자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킹 사건 후 그런 통신이 중단됐다. 콜은 페일린과 늘 온라인으로 대화해 왔다고 말했다. “바쁘게 활동하는 중에도 대화할 수 있고 오전 2시에도 답신을 할 수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차가 나는데 온라인 통신이 가장 좋은 연락 방법이었다.”

페일린의 야후 계정이 해킹된 이후 콜은 페일린과 단 한 통의 e-메일도 주고받지 못했다. “나는 겁이 많다. 우리는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그 일 이후 개인적인 일을 메일로 전하기가 두려워졌다. 그게 슬프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전환점이 왔다. 페일린이 믿는 크리스 페리가 그녀 곁에 왔다. 페일린의 일정 담당이었던 페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앵커리지에 발이 묶여 있었다.

‘트루퍼게이트(페일린의 여동생 전 남편에 대한 인사 외압 의혹)’ 수사에서 자신이 증언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사가 미뤄지면서 토론 전주의 금요일에야 페리는 앵커리지를 떠나 페일린 곁으로 갈 수 있었다. 페일린이 바이든과의 토론을 앞두고 긴장을 풀고 입장을 정리하는 데는 페리의 도움이 컸다.

페일린과 페리는 6년 전 병원에서 같이 출산을 해 인연을 맺었다(그때 페일린은 넷째인 딸 파이퍼를 낳았다). 그런 페리를 페일린과 떼어 놓은 게 실수였다고 페일린 측에서는 말한다. 페일린의 한 전직 보좌관은 페리가 남편 토드 다음으로 “그녀 주변에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했다.

최근의 불같은 성미에 관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페일린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에게는 짜증보다는 불안과 과도한 집중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페일린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는 젬병”이라고 그 전직 보좌관이 말했다. “휴대전화를 한 손에, 휴대용 정보 단말기를 다른 손에 쥐고 서류를 검토하는 그런 사람이다. 토론 전에 ‘그걸 다 내려놓고 심호흡을 해요’라고 말해 주는 게 필요했다. 매케인의 참모들은 그런 걸 모른다.”

페일린이 무엇을 알며, 미국인들이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까? 이것이 앞으로 몇 주 동안의 이슈다. 버락 오바마가 구세주가 아니고 바이든이 그리스도의 사도도 아니다. 하지만 페일린이 부적격인 것처럼 오바마도 부적격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물론 오바마-바이든보다 매케인-페일린 티켓을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페일린에 관해 제기되는 것과 같은 자격 시비가 오바마와 바이든 후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쿠릭이 페일린을 상대로 한 대담의 한 부분에서 매케인은 페일린과 나란히 앉아 은연중에 그녀를 빌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과 비교했다. 그들 역시 주류 언론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고 무시당했다고 매케인은 말했다. 그러나 성립할 수 없는 비교였다. 클린턴은 여러 가지 인간적인 죄를 저질렀지만 그는 오랫동안 주지사로 중요한 일을 했다. 조지 H W 부시가 클린턴의 자격에 시비를 걸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클린턴의 인격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자질에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직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대선 출마 전에 이미 수십 년 동안 좌우익 정치에 몸담았다. 그도 스스로를 시민정치인이라고 부르길 좋아했고, 가끔씩 사실 관계가 불명확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대의 핵심 이슈에 관해 오랫동안 숙고한 진지한 인물이었다. 좋게 말해 페일린은 그 비슷한 일조차 해 보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유망한 주지사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지 모른다. 페일린은 자신의 미덕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한 기자들에 의해 자기 시대에는 과소평가됐지만 나중에 혼란스러운 역사를 헤쳐 나간 변화의 인물로 부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페일린이 부통령 자리를 포퓰리스트적인 관점으로 보는 게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잘못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 그녀가 부통령이 된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봐요, 식스팩 부통령 각하, 파키스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라.

With HOLLY BAILEY, KAREN BRESLAU, SUZANNE SMALLEY, MICHAEL ISIKOFF and SARAH KLIFF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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