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굿바이?
두바이, 굿바이?
2000만 달러를 들인 아틀란티스 리조트 개장식 파티. 경기 침체의 위협이 이 화려한 행사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먼(1912∼89)은 정평이 나있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사에서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화려한 장례식을 평화 시대의 대단원을 상징한 것으로 묘사했다. 유럽 다른 나라의 국왕 9명이 열을 지어 말을 타고 지나가는 장관은 “숨이 막힐 듯한 감탄을 자아냈다”고 터크먼은 썼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자 한 영국 귀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거쳐온 해로를 표시한 모든 부표가 파도에 말끔히 쓸려 간 것 같다.”지난 11월 20일 두바이에서는 그와 전혀 다른 화려한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터크먼이 아직 살아 있다면 분명히 한마디 했을 만한 파티였다. 야자수처럼 생긴 거대한 인공섬 팜 아일랜드에 건설된 15억 달러짜리 아틀란티스 호텔 리조트 개장식이었다.
2000만 달러를 들인 이 행사는 세계 최고의 파티로 불렸다. 샬리즈 시어런, 린지 로한, 마이클 조던, 로버트 드 니로 등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불꽃놀이의 규모가 너무도 커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했을 정도였다(실제로 우주에서 보였다). 파티의 주안점은 두바이가 환상이 실현된 나라로서 최상의 휴양지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고 행사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축하객들 사이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확연했다. 폭죽이 터지는 동안 세계 경제가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었다. 빚더미로 쌓아 올린 두바이의 부(富) 가운데 상당수가 허물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과거에 세워놓은 부표들이 파도에 휩쓸려간 듯했다.
“비극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두바이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 중 하나의 임원이 샴페인 잔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많은 꿈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과거의 부자들만이 아니라 투기꾼들도 지칭한 말이었다.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이미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완공하지 못한 마천루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흉물스럽게 서 있다. “수평선 위에 줄지어 정박해 있는 배들을 봤는가”라고 그가 바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배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강철과 콘크리트를 가득 싣고 하역하지 못한 채 마냥 저곳에 머물고 있다.”두바이가 무너지면 세계화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없는 세계는 상상하기 힘들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도시 국가인 두바이는 지구상 어느 곳보다도 왕성한 세계적인 상거래로 성장했다. 가장 신속하게 가장 높은 수익을 노렸다가 수익이 사라지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핫머니를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그 자금 중 많은 부분이 이웃 아랍 산유국들로부터 나온다.
특히 UAE의 원유 중 90%가 매장돼 있는 인접 토후국 아부다비가 가장 많이 투자했다. 그러나 이란·인도·중국·러시아·유럽·미국을 비롯해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도 수십억 달러가 두바이로 유입됐다. 두바이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국민 스포츠’였다. 단독 주택과 아파트(다수는 아직 설계도만 있을 뿐이다) 가격이 올해 1분기(1∼3월)에만 43% 올랐다.
담보대출이 쉬웠고 부동산 투기꾼들은 종종 월 상환금 납입 시기가 되기도 전인 몇 주, 심지어 며칠 만에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팔아치웠다. 모두가 그 게임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직원들은 업무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한 운송 회사 회장이 불평했다. “모두가 겨우 10%거나 그보다 적은 계약금을 걸고 부동산을 사는 데만 혈안이 됐다.”
지난 6월 기준으로 두바이는 건설 중인 사무실 공간이 390만㎡였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넓다. 사무실 천국이라는 상하이도 그 정도는 아니다. 20년 전 삭막한 사막이었던 곳이 지금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계곡이 됐다. 그곳의 명소인 하드록 카페는 1997년 공터 한가운데 세워졌지만 그동안의 부동산 열풍을 말해주듯 지금은 마천루에 둘러싸여 있다.
두바이에는 현지 주민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더 많다. |
이젠 또 다른 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그곳을 헐어야 하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드록 카페가 유적지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러나 두바이는 세계의 자본을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국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6년 세계적인 항만운영 업체인 국영 두바이 포트 월드(DP World)는 미국의 주요 컨테이너 항만 6곳의 관리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그러나 외국인의 주요 시설 장악에 거부감을 보이는 미국 의회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정치적으로 그 거래가 무산됐다).
현재 두바이는 다른 업체들도 많이 소유하고 있지만 특히 나스닥 OMX(나스닥 주식시장과 북유럽과 발트해 지역 7개의 증권거래소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국 기업) 지분 43%와 런던 증권거래소 지분 20.6%를 갖고 있다. 두바이가 완전 소유한 외국 기업으로는 영국의 호텔체인 트래블로지, 독일의 정밀 기계 및 총기 제조사 마우저, 그리고 뉴욕의 고급백화점 바니스와 로만스 등이 있다.
2005년 초가 되자 유가 급등으로 터진 대박이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이면서 두바이의 호황이 본격적인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두바이의 고위 금융관리 중 몇몇은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경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유 지분을 가능한 한 넓게 다변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가가 계속 치솟으면서 흥청망청하는 두바이 경제에 더 많은 현금이 수혈됐고, 국민은 세계적인 경제 쇼크와는 무관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4개월 동안의 부동산·주식·석유의 가격 폭락에 대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가는 지난해 여름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두바이는 “절연은 돼 있지만 격리는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이코노미스트 메리 니콜라가 말했다. 상호 연결된 세계 경제에서 많은 것이 그렇듯이 경제위기의 파급 효과가 퍼져나가면서 ‘두바이 드림’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정리해고는 두바이만이 아니라 그곳에 근로자들을 수출한 마닐라(필리핀)와 몸바사(케냐), 트리반드룸(인도)의 근로계층 동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연말 휴가 시즌이 끝나면서 수천 명이 풀 죽은 모습으로 두바이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 근로자들의 초청장은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불평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비통한 감정이 널리 퍼져 있다.
한편 아직 지어지지 않은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가격은 일부 지역에서는 거의 50%나 떨어졌고, 담보 대출금은 동결됐으며, 대형 공사들이 중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됐다. 두바이를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데 필수적인 국적 항공사 에미레이트항공의 상당한 지분이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내부자 거래를 바탕으로 형성된 기업 문화에서는 정부가 그런 매각설을 공식 부인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서 ‘세계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던 두바이의 유서 깊은 금시장에도 혼돈의 장막이 드리워진다.
“금값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불확실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그곳 한 가게의 주인인 피로즈 메르찬트가 말했다. 암담한 분위기를 더욱 음울하게 하려는 듯이 청정 해역으로 소문난 두바이 마리나가 지난 11월 갑자기 오수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두바이의 고층 건물들은 오수를 트럭으로 실어날라 처리하는데 트럭 운전기사들이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못 참아 싣고 가던 오수를 빗물 배수관에 쏟아 부어 바다로 직행하게 만든 것이다.
아틀란티스 호텔 리조트 개장 파티가 끝나고 바로 며칠 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두바이는 국영 개발업체 에마르 프로퍼티스의 모하메드 알라바르 회장이 이끄는 ‘자문위원회’ 설립을 발표했다. 에마르 프로퍼티스는 두바이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를 짓고 있다.
에마르의 주가는 올 들어 80% 넘게 곤두박질쳤고, 초고층 빌딩의 호화 아파트 판매가는 40% 하락했다.“우리는 현실주의자이고 또한 낙관주의자”라고 알라바르는 11월 24일 두바이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말했다. 그곳의 청중과 세계를 안심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는 두바이에선 생소한 개념인 ‘투명성’을 약속했고, 오랫동안 천문학적인 숫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두바이의 부채에 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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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바르는 정부와 국영기업들의 부채가 800억 달러지만 자산은 3500억 달러라고 말했다. “따라서 단언컨대 두바이 정부는 앞으로 모든 부채를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당할 것이다.” 그런 준공식적인 수치가 과거에는 공개된 적이 없으며, 그 세부 사항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자산의 유동성이나 그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분석가들도 알라바르의 낙관주의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두바이의 자산과 부채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최근 페르시아만 국가들에 대한 경제 보고서를 작성한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 무슈타크 칸이 말했다.
그래도 두바이 지도자들이 위기의 초기 단계에서 몇몇 수정 조치를 신속히 취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두바이 중앙은행은 지난 9월과 10월 두바이의 금융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327억 달러의 구제금융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알라바르는 지난 11월 양대 주택담보대출 기관이 자금 고갈로 사실상 국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동산 시장의 공급 물량 중 70%를 대는 두바이의 3대 건설업체가 서로 협력해 시장을 안정시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폭락은 “건전한 조정 과정”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두바이 국민 중 다수는 과열된 경기에서 한숨을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바이 경제가 실제로 상당한 조정이 필요하는 조짐도 많다. 50년 전만 해도 두바이는 아랍 반도의 잊혀진 구석에 겨우 몇천 명이 사는 먼지투성이의 변경 지역이었다. 40년 전엔 두바이의 최대 사업 중 하나가 금을 인도로 밀수출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초 영국군이 ‘휴전 토후국들’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철수한 뒤 7개 토후국이 합쳐 아랍에미리트가 됐다.
아부다비가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가장 큰 재력을 가졌다. 그러나 두바이는 기업가 정신이 뛰어났다. 1980년대 들어 두바이는 셰이크 라시드 빈 사이드 알 막툼과 그의 아들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아래서 이란과 이라크가 가까이에서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서도 거대한 자유 항구를 건설했다.
동시에 염분을 제거한 바닷물로 푸른 잔디밭을 갖춘 골프장들이 두바이의 풍경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두바이는 돛 모양의 버즈 알 아랍 호텔 같은 초대형 휴양시설을 지었다. 아울러 두바이를 해운과 항공수송의 중심지만이 아니라 통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신기술을 이용해 특수 인터넷 및 미디어 시티들을 건설했다.
1995년에서 2000년 사이 단 5년 만에 두바이의 인구는 25% 늘었고, 지금은 약 160만 명에 이른다. 대다수는 외국에서 온 이주 근로자로 육체 노동에서 경영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일한다. 2007년 UAE 전체의 국적 소지자는 86만4000명에 불과했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360만 명이었다. “인프라 개발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두바이로 몰려드는 외국인 수가 그것을 압도했다”고 시티그룹의 칸이 말했다.
그러나 강제 휴지기가 필요하다고 해도 두바이가 아무런 피해 없이 경기침체를 이겨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두바이의 성장에 뒤에서 조용히 자금을 댔고 두바이가 혁신과 열정의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수년 동안 지켜본 아부다비는 이제 교정 조치에서도 좀 더 큰 몫을 원한다. “공식 성명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칸이 말했다.
“그러나 아부다비의 전략적 도움이 있을 것 같다.” 그와 비례해 아부다비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다. 아부다비는 UAE의 연방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12월 초 연방 헌법이 개정됐는데 그 내용은 총리(두바이의 셰이크 모하메드)와 그의 대리인들, 그리고 연방 각료들이 “전문직이나 상업적인 부업”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연방 또는 지방 정부를 상대로 하는 상거래를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치가 어떻게 시행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크게 보면 두바이는 모하메드 알 막툼이 다스린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부다비가 이제 UAE의 전권을 장악했다는 의미다. 한편 UAE는 말 그대로 휴가 중이다. 이슬람교에서 지키는 휴일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은 성탄절 휴일이 이어진다.
대형 대책이 새해 전에 발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갈라진 틈은 계속 드러난다. 예를 들어 개장한 아틀란티스 호텔 리조트를 보자. 남아공의 솔 커즈너 그룹과 두바이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팜 주메이라 섬을 비롯해 터무니없이 호화로운 시설을 건설한 국영기업 낙힐의 합작 사업이다. 개장 후 며칠 뒤 낙힐은 500명 감원을 발표했다(전체 인력의 약 15%다).
“낙힐은 불꽃놀이에 2000만 달러를 쓰면서도 직원들에게 봉급을 줄 돈은 없다”고 두바이에서 사업을 하는 한 레바논인이 말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제 부자들도 돈에 쪼들린다. 아틀란티스를 마주보는 팜 주메이라 중 하나에 지중해식 빌라를 소유한 한 두바이인은 빌라를 팔려고 내놓으면서 호가를 490만 달러에서 360만 달러로 낮췄다가 급기야 313만 달러로 다시 내리면서 자신이 몰던 고급 승용차 벤틀리까지 덤으로 주겠다고 했다.
“우리 고객은 주식시장에 돈이 묶여 있어 사업 자금이 시급했다”고 부동산 중개인 앤서니 제리시가 말했다. “그래도 아무도 사지 않는다. 어쩌면 벤틀리만 따로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예전의 두바이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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