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망령 떠도는 ‘링컨의 땅’
부패 망령 떠도는 ‘링컨의 땅’
로드 블라고예비치(52)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는 친구들에게 자신에겐 두 명의 영웅이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닉슨과 엘비스 프레슬리다. 닉슨과 엘비스가 민주당의 이 막가는 정치인과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지나친 과대망상과 자신이 잘났다는 착각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엘비스와 비교해 봐도 공통점이라곤 머리 숱이 많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상한 말과 행동을 잘도 한다. 왜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는 아름답고 착한 부인을 두고도 매춘부와 놀아났을까? 왜 빌 클리턴 전 대통령은 집무실 옆방의 인턴 여직원과 성관계를 가졌을까?(왜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했으며 누가 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까? 그런 예는 끝도 없다.)
지난주 시카고 정가에서 TV토크쇼까지 전문가들은 블라고예비치 주지사의 심리분석을 하느라 바빠졌다. 그가 조금 별난 사람일까? 아니면 완전히 맛이 간 사람일까? 그 두 가지 결론을 모두 뒷받침할 증거가 있는 듯하다. 먼저 그가 체포될 때까지 보여준 과대망상적인 행동을 살펴보자.
12월 5일 시카고 트리뷴지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일리노이주의 부패에 대한 장기 수사의 일환으로 주지사를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8일 블라고예비치는 기자들에게 “누군가 나의 대화를 도청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라”고 큰소리쳤다. 당시 지지율이 13%이던 그는 한 공장의 연좌농성장에 나타났을 때도 태연히 “내게 먹구름은 없다. 오직 햇볕만 내리쬘 뿐”이라고 말했다.
9일 오전 6시 FBI가 주지사를 깨워 체포영장을 지닌 요원들이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말했을 때도 그는 마치 농담인 양 반응했다고 한다. 미국에 아무리 많은 예외가 있다지만 일리노이주 정계는 정도가 조금 심한 듯하다. 사실 일리노이주는 ‘정직한 에이브’ 에이브러햄 링컨을 우리에게 선사한 곳 아닌가?
지금의 기대대로라면 일리노이주 출신인 버락 오바마에게 그의 청렴한 환생이 비춰진다. 동시에 일리노이주는 주지사가 10년에 한번꼴로 기소되는 곳이기도 하다(지금까지 8명 중 4명이 그랬다. 블라고예비치는 전임자인 조지 라이언 주지사가 공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어둠 뒤엔 빛이 오게 마련이다. 블라고예비치의 부패를 폭로한 패트릭 피츠제럴드 일리노이주 연방검사는 마치 세상에 정의와 선을 구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기자들에게 “무덤 속의 링컨이 대경실색할 주지사의 잇단 범죄 행각”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나섰다고 말했다.
블라고예비치의 존 해리스 비서실장도 지난주 체포됐다가 사임했다. 12일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주 검찰총장은 주 대법원에 주지사의 직무를 일시적으로 정지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둔 상태다. 일리노이주에선 정치 헌금을 대가로 정부가 특혜를 제공하는 전통이 있다. 선거 때 정치헌금을 내지 않으면 정부 발주 공사계약이나 특혜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전통은 다른 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따지면 의회도 예외가 아니다(그곳에선 그런 관습을 보다 점잖게 “접근” 기회라고 부른다). 사실 블라고예비치가 기소된 사유는 자신의 탐욕을 드러내놓고 자랑했기 때문이다(모두 녹음됐다). FBI가 도청한 테이프의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나는 돈을 벌고 싶다”며 한 아동병원의 고위 관계자를 협박한 적도 있다(병원 관계자가 자신의 선거기금에 5만 달러를 기부하지 않으면 소아진료 부문에 대한 800만 달러의 보조금 지원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블라고예비치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직을 놓고 매직을 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한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좋은 물건이 생겼어. 황금 같은 물건이야. 죽여 주게(f---ing) 값나가는 자리인데 맨입으로 내줄 순 없지. 게다가 내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거든. 내가 직접 낙하산을 타고 그 자리에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주 의회의 탄핵 위협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를 연방 상원의원직에 임명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뜻밖에도 불똥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튀었다. 도청 테이프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연방 하원의원인 제시 잭슨 2세의 한 대리인이 블라고예비치에게 접근해 그에게 최소 50만 달러를 모금해 주고 그 대가로 잭슨이 연방 상원의원직을 요구한 듯하다.
그러나 잭슨 의원은 “나는 정치적 흥정을 거부하고 비난할 뿐만 아니라 어떤 불법행위에도 연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비스 노조 국제연맹(SEIU)도 자신들은 주지사와 결코 ‘거래’를 흥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SEIU 측이 오바마의 친한 친구이자 차기 행정부의 백악관 선임고문 내정자인 친노조 성향의 밸러리 재릿을 상원의원 자리에 앉히는 대가로 블라고예비치에게 노동조합의 고임금 일자리를 제안했다는 거래다.
오바마는 기자들에게 자신이든, 자신의 참모든 간에 블라고예비치와의 어떤 거래에도 연루되지 않았다고 거듭 해명해야 했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오바마와 그의 측근들이 블라고예비치와 정치적 흥정을 할 의향이 없었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바로 녹음 테이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블라고예비치는 “그들은 내게 사의를 표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아. 망할 놈들”이라고 중얼거린다. 동료 정치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블라고예비치는 허황되고, 복수심이 강하며, 살짝(아니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민감한 그는 항상 자동차 앞좌석 도구함에 빗을 넣어둔다.
측근들은 농담 삼아 그것을 ‘핵가방’이라고 부른다(핵가방은 미국 대통령이 유사시에 대비해 늘 지니고 다니는 핵미사일 발사장치가 담긴 가방이다). 일리노이주 정계에서 소외된 블라고예비치는 주도(州都)인 스프링필드를 피해 시카고에 있는 집에서 일할 때가 종종 있다. 그곳은 아첨꾼들이 득실대는 일종의 정치적 ‘벙커’다.
그런 그가 어떻게 주지사에 당선됐을까? 이름을 기억하는 놀라운 재능도 한몫했을 법하다. “만일 당신이 애완동물을 기르면 그가 당신의 개와 고양이의 이름을 기억해 뒀다가 다음에 만날 때면 그 애완동물의 건강상태를 묻는다”고 마이크 제이콥스 일리노이주 주 상원의원이 말했다. 결혼도 잘했다.
교통사고를 취급하던 한직 주 검사 출신인 그는 시카고의 거물급 시의원인 리처드 멜의 딸과 결혼했다. 멜은 기부금을 모으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위를 주 상원의원, 연방 하원의원, 그리고 주지사직에 앉혔다. 대부분 블라고예비치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돈을 많이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블라고예비치는 주지사가 된 뒤엔 얄궂게도 장인에게 등을 돌렸다. 지난주 뉴스위크의 취재 요청에 멜은 시카고 매거진에 맨 처음 등장한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다시 말해 블라고예비치가 측근을 시켜 장인이 지역구인 33구에서 사용하는 공식 편지지의 인쇄문구에서 주지사의 이름을 빼라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멜은 놀랐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시카고 매거진에 “그는 내 사위다. 내게 직접 전화하면 될 일을 다른 사람을 시켜 하다니”라며 분노했다. 블라고예비치는 마이크 매디건 주 하원의장도 계속 적대시했다(매디건의 흑인 지지자들을 “매디건의 원숭이”로 묘사한 삐라를 배포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고 일리노이주 주 의회 의원들은 말했다.
블라고예비치는 이를 부인했다). 블라고예비치는 단지 주 의회 의원들의 휴가를 망치려는 속셈으로 특별회기 소집을 자주 요구했다(자신이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간 사이에도 회기 소집을 요구했다. 결국 격분한 의원들은 주지사가 거의 6000달러에 이르는 여행경비를 반납해야 한다고 따졌다).
주지사의 설득은 종종 협박으로 귀결됐다. 주 상원의원인 제이콥스는 자신이 기업들로부터 70억 달러의 세금을 더 걷자는 법안에 반대해 겪은 수모를 이렇게 돌이켰다. “주지사가 마치 10대 아이처럼 화를 내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나를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파멸시키겠다고 위협하면서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는 노조 지도자들을 시켜 내게 전화를 걸게 해서 내가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불상사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증세 법안은 107 대 0으로 부결됐다. 지난해 10월 블라고예비치는 일리노이주 후생부에서 아동심리학자로 일하던 매디건 주 하원의장 비서실장의 아내를 갑자기 해고했다. 일리노이주의 잭 프랭크스 하원의원은 “그는 권력을 얻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며 “마피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피아는 배우자는 안 건드리지만 그는 그런 불문율마저 깨뜨렸다.” 마침내 의원들도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FBI의 도청 기록에 따르면 자신이 주지사직에 “갇혀 있다”고 불평하던 블라고예비치는 이미 더 높은 데로 도망칠 계획을 세웠던 듯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워싱턴에서 장관직을 손에 넣는 걸 꿈꿨다.
도청 테이프에 따르면 에너지부 장관직을 최고로 여긴 듯하다.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자리”라는 이유에서다(장관 연봉은 다 똑같지만 퇴임 후 민간부문에서 일할 때 가장 큰돈을 벌게 해 줄지 모른다). 아니면 블라고예비치가 내비쳤듯이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블라고예비치는 지금은 “주 정부 업무를 정상화하려 애쓰는 중이며 [12일엔] 자폐증에 관한 법안에도 서명했다”고 게레로 대변인은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섭리는 얄궂게 돌아간다. 2004년 블라고예비치의 선거운동 컨설턴트였던 데이비드 액슬로드는 그에게 너무나 환멸을 느낀 나머지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또다시 정치판에 매력을 느낄 이유를 찾거나, 그렇지 못하면 정치 컨설턴트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액슬로드는 당시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무명의 일리노이주 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에게 매력을 느꼈다.
With JENEEN INTERLANDI and MARK HOSEN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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