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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하청기업 지원 혜택, 2·3차 기업에 흘러가야

1차 하청기업 지원 혜택, 2·3차 기업에 흘러가야

요즈음 ‘대-중소기업 상생 협약’ 소식이 이어진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소기업이 겪는 애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 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대-중소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간 거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해 7월 협력업체와 공정거래협약식을 맺은 삼성전자.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2007년 말 하도급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한 대기업이 실제로 협약을 잘 이행했는지에 대한 평가 발표였다. 8개 대기업이 평가 대상이었다. 공정위는 이 중 4개 기업에 C등급을 부여하고 회사명을 공개했다.

‘하도급 공정거래협약’은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약속하고 그 이행상황을 공정위가 1년 주기로 점검·평가하는 제도다. 그동안 14개 기업집단 89개 대기업이 3만4764개 협력사와 하도급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공정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회사명을 공개한 것은 ‘기업 평판에 손해를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협약을 맺어놓고 만약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면 더 큰 페널티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하도급 공정거래협약’은 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만 맺는가? 이는 ‘협약 이벤트’가 ‘대-중소기업 상생’이라는 큰 프레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하도급 시장의 실상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 열 곳 중 여섯 곳이 수급기업이다. 중소 제조업체 매출의 절반이 납품 수입이다. 그런데 2006년 기준으로 수급기업 중 대기업과만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13.2%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와 거래하는 경우가 24%, 나머지는 중소기업의 하청 중소기업이다.

기업 규모별로 중층적인 하도급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래처 다변화가 가능한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을 꼭대기로 한 단계적 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납품 수요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것이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급 거래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지속되면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3년 중소기업청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하도급 관계에서 납품 단가 인하 요구, 불규칙한 발주 및 납기 단축 요구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단가 인하 압력 2차 벤더에 거의 전가

2008년 실태조사에서는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원자재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애로가 가장 많았다. 관행처럼 굳어진 납품단가 인하 요구, 납기단축 압박, 납품대금 결제기일 장기화 등이 뒤를 이었다. 7년 전이나 지난해나 중소기업의 애로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중기청 관계자는 “매년 실시하는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 법적(하도급거래공정화법)으로 위법행위에 해당하는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30% 안팎”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기업과 1차 수급기업 간에는 안정적인 거래 관계 속에 만족도가 높은 반면, 하도급거래공정화법 적용을 받지 않는 2·3차 하도급 관계에서는 불공정 행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어음 결제 기간이 법정 기한(60일 미만) 미만 비중이 63%인 반면, 2차 이하 하도급 거래의 경우 3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완성차 1차 협력업체에 조명 부품을 공급하는 2차 벤더의 대표는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안다는 것은 중소 하청기업 간에는 예외”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10년 사이에 원청사인 1차 벤더에게 받는 납품가가 3분의 2로 줄었다. 우리가 납품하는 부품 중에는 현재 납품가가 20년 전보다 싼 것도 있다. 1차 벤더는 우리도 위에서(대기업 원청업체)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사실은 다르다. 1차 벤더들은 본인들이 받는 CR(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2차 벤더에 거의 전가한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얘기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목적은 대기업을 견제하는 데 있지 않다. 중소기업이 공정한 시장과 일정한 지원 속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2분류 시각이 아닌 다각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현행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우선 현행 법규는 모기업의 범주를 고용 인원 300명 이상이고, 수급기업보다 매출액 또는 상시 고용 인원이 2배 이상인 기업에 한정한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간 2·3차 하청 관계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계약서도 없는 하청 거래

적용 범위에도 제약이 있다. 제조, 수리, 건설, 용역 하도급으로 한정돼 있어 유통 및 서비스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 법 관련 처벌 조항이 미약해 상습적 위반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의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직권조사 범위를 확대해 법 집행 의지를 확실히 밝힐 필요도 있다. 구체적인 제안을 하자면, 우선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의 적용 대상 범위를 법 조항에 예외로 명기하지 않는 모든 거래를 포괄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불공정 행위로 수급기업에 끼친 피해액의 3~5배의 피해 보상을 적용하는 징벌적 피해 보상 방식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상습적 위반자에게는 정부 수의계약 참여를 차단할 필요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인력 및 예산을 증강해 공정위의 감시 능력을 강화하고 공정위와 지역 중기청이 협조하는 직권조사를 확대해 법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만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보다 훨씬 많은 상황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정책’을 2·3차 수급기업에 대한 1차 수급기업의 지원에 초점을 두어 재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차 수급기업이 2·3차 수급기업에 지원을 제공할 경우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10년 연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거래질서 확립도 요구된다. 중소기업청 실태조사(2005년)에 따르면 2차 이하 하도급 거래의 경우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24%나 된다. 따라서 정부는 2차 이하 하도급 거래 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지자체 관할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하도급 거래 계약에 관한 정보를 전산화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한다.

전산화되지 않은 거래가 적발될 경우 우선적으로 공정거래 관련 심사를 시행함으로써 거래를 문서화·전산화할 동기를 부여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 수평적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수평적 협력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기업 간 계약을 활용하는 조인트벤처 방식보다는 임의적인 협동조합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평적 협력에 대한 부당 공동행위 규제를 완화하고 협동조합 같은 협력조직을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대상에 포괄함으로써 수평적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법 19조 2항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격의 공동 결정 등 일반적으로 부당 공동행위로 볼 수도 있는 일부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같은 법 60조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조합을 공정거래법 적용에서 면제하고 있다.



협동조합 통해 규모경제 실현

하지만 공동행위 허용과 관련해 1991년 이후 인가 사례는 없다.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활발한 일본의 경우는 조합에 대해 독점금지법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명기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60% 이하인 협동조합에는 독과점 금지법 적용을 면제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제공되는 금융 및 지원 대상에 협동조합을 포함할 수 있다.

물론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과 마찬가지로 조합에 대해서도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민간 금융기관을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이 신규로 조합을 반복적으로 결성해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행태를 제약하기 위한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 협동조합은 참여한 기업이 상호 동의한 계약 혹은 정관을 준수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가격 카르텔이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가 약속을 어기고 가격을 내릴 경우에 얻는 이익이 큰 것과 마찬가지다. 협동조합 역시 공동투자 회피, 회비납부 거부, 인력 빼가기 등 참여 기업들의 기회주의적 행위로 유지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정책자금이 지원된 조합에 대해서는 지원 기구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성과를 지원 기구의 평가에 반영해 정책자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모든 협동조합에 대해 계약 및 정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적 처벌을 엄정히 집행함으로써 공동 행위를 이탈할 유인을 억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수평적 협력의 성공사례에 대한 지속적 홍보를 통해 협력을 통한 규모의 경제 추구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클러스터 만들어 생산요소 공급의 규모경제 실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수평적 협력 촉진 방안

스웨덴의 IT클러스터인 시스타사이언스시티 전경. 한국도 중소기업 중심의 클러스터 활성화가 시급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수평적 협력 촉진에 효과적인 수단은 클러스터 형성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입지가 적합한 지역에 클러스터를 형성함으로써 정보 습득, 노동 및 생산 요소 공급 등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지역 금융기관 간의 관계형 금융이나, 지역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간의 지속적 상호작용도 지역적으로 밀접해 있으면 더욱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모이는 이익’을 강화해 주는 지원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클러스터 건설과 같은 대형 사업은 매몰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재정 지원이 불가피하다. 단 지역과 중앙정부 사이에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자체가 사업설계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 또는 지자체 연합체는 클러스터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들과 민관 합의체를 결성해 사업을 설계하고 중앙정부는 사업안을 공모해 자금 지원 대상을 선별한다.

또한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포괄 정액 교부금’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성과 협약을 체결해 그 성과에 따라 예산지급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효과적인 클러스터 운용을 위해서는 지자체가 입주 기업의 지원 업무를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집행기관을 민관 합동으로 결성해야 한다.

중앙정부 역시 정액 교부금 지원을 받은 지자체를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해 예산 낭비를 억제하고 지자체의 부족한 역량을 지원하는 ‘자원 공급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각종 클러스터 사업의 모범 사례를 개발하고 필요할 경우 법률·회계 등 사업 서비스를 실물로 제공한다.

또한 각 지역 클러스트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중앙정부가 ‘클러스터를 전파하는’ 가상센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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