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밀착형 물가관리 절실
서민 밀착형 물가관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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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 11월 15일 옛 상업은행 명동지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채업자에게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주었다가 제때 입금되지 않아 문제가 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가짜 CD 사건과 맞물려 금융시장에 혼란을 주고 파문이 커지자 당시 재무부는 서둘러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과장과 함께 결재 서류를 들고 장관실로 들어서는 담당 사무관에게 이용만 재무부 장관이 물었다. “자네 CD 본 적 있나?”
직원이 답변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가서 CD 실물부터 먼저 보고 대책을 다시 세워 오게.” YS 정권 때인 1994년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무더위를 견뎌내지 못한 닭과 돼지들이 축사에서 쓰러져 죽을 정도였다. 그 여파로 닭과 돼지, 채소류 등 농축산물 가격이 치솟았다.
언론은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뛴다고 보도했고, 당시 물가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경제기획원은 비상이 걸렸다.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방법을 찾아 오라”고 직원들을 다그쳤다. 고심하던 농축산물 물가 담당 생활물가과장은 농림부에 SOS를 쳤다. 돼지고기 값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어떻게 하면 무더위 속에서도 돼지 접을 잘 붙일 수 있을까를 놓고 농림부 직원들과 함께 궁리했다.
MB 정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1일 국회에서 삼겹살 값을 몰라 혼쭐이 났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삼겹살 한 근의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윤 장관은 즉답을 못한 채 “여쭤볼 것 같으면 (시장에) 가 보고 올 것을 그랬다”고 했다. 전임 강만수 장관도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삼겹살 1인분 가격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했다가 “삼겹살 잘 안 먹는다”고 대답했다.
육류와 채소, 과일 등 ‘식탁 물가’가 치솟아 서민 가계를 위협하고 있다. 삼겹살은 100g에 2250~2300원으로 1년 전보다 50% 가까이 올랐다. 미국산 LA갈비보다 비싸 ‘금겹살’로 불린다. 회식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외쳤다간 세상 물정 모르는 한량 소리 듣기 십상이다.
닭고기도 50% 이상 올랐다. 국제 곡물 가격이 뛰면서 사료 값도 치솟아 지난해 4월부터 돼지고기 값도 올랐는데, 사료 값이 진정된 지난해 10월부턴 환율이 뛰어 돼지고기 값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겹살 값을 모르고, 정부는 식탁 물가 급등에 팔짱을 끼고 있다.
경기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자 세금감면 혜택을 들고 나오면서 고환율 때문에 수입 사료 값이 뛴 데는 한시적으로 관세를 깎아주는 (할당관세 적용) 대책이 없다. 겨우 내놓은 게 농업진흥청의 진짜와 유사 삼겹살 식별법이다. 지난해 3월 대통령 지시로 52개 생필품 물가(MB물가)를 특별 관리한다더니만 지금은 이마저도 시들해졌다.
바쁜 장관이 삼겹살 값까지 일일이 외우기는 어려우리라. 그래도 국회에서 ‘정확히는 몰라도 너무 올라 걱정이다”는 정도로 대답했어야 국민이 걱정을 덜할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장관이 삼겹살 값까지 챙기면 부처가 민생경제 대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데 탄력을 받는다.
현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고, 그래서 많은 역대 장관이 현장을 챙겼다. ‘금겹살’로 불리는 삼겹살 값 때문에 이 땅의 돼지들이 더 이상 기가 막혀 하지 않도록 지하벙커에서 회의만 하지 말고 팩트(fact)가 있는 현장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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