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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My Life] 재활의학계 대부에서 글로벌 의료의 개척자로

[My Way My Life] 재활의학계 대부에서 글로벌 의료의 개척자로


박 원장 주도 아래 이뤄진 세브란스병원의 JCI 인증은 한 발 앞선 병원 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요즘 한국 의료계의 화두를 꼽으라면 ‘의료관광’이 맨 위를 차지한다. 이는 달리 말해 의료계의 글로벌화를 말한다. 의료 서비스와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자는 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연세의료원의 글로벌화 사업을 이끌어온 박창일(63) 연세의료원장의 행보는 주목 받을 만하다. “우리 병원 의사들의 임상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대학의 연구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병원에도 합리적인 경영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 의료기관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지난해 8월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연세의료원장에 취임한 박 원장의 사무실엔 ‘의료원 개발 청사진’이 걸려 있다. 10년 후의 한국 의료계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연세의료원의 미래 설계도다.

올 들어 매스컴에 오르내린 연세의료원과 관련된 기사 제목만 봐도 그가 추진해 온 일의 대강을 엿볼 수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글로벌 ‘명품병원’으로 새 출발(2009년 2월 26일).

세브란스병원, 아시아 로봇수술 메카로 ‘우뚝’(3월 12일). 세브란스, 뇌·심혈관질환 연구 ‘선도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1월 21일) 등등.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세브란스 재활병원장, 새병원개원사업본부장, 세브란스병원장을 두루 거쳐왔다.

연세의료원이 최근 펼치는 혁신 사례 가운데 그의 손을 타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다(연세의료원은 신촌·강남·용인 세브란스병원과 의과대학, 간호대학, 치과대학 등 연세대 산하의 모든 임상·연구 의료기관을 아우른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들라면 세브란스병원의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 평가인증을 꼽을 수 있다.

2007년 병원장 재직 당시 세브란스는 국내 병원 가운데 최초로 JCI 인증을 받았다. “JCI 인증은 한 병원의 진료 수준과 체계가 글로벌 기준에 맞느냐를 가늠하는 잣대이자 글로벌 병원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JCI는 미국의 병원평가기관인 제이코(JCAHO)가 만든 일종의 국제표준으로 존스홉킨스병원, 메이요클리닉, 하버드의대병원 등 미국 병원의 80%가 제이코의 인증을 내걸고 영업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32개국 179개 병원이 JCI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해외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치료기관과 병원을 소개하는 중개영업을 하는데, 이때 해외고객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JCI 인증이다. 아시아의 대표 의료관광국으로 널리 알려진 싱가포르, 태국의 주요 병원들도 JCI 인증을 소지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1962년부터 자체 국제진료소를 설립해 운영해 왔다.

지난해에만 진료한 해외환자 수가 2만8000명에 이른다. 박 원장은 세브란스 병원의 글로벌화와 해외환자들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해서는 JCI 인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이뤄냈다. 세브란스병원의 JCI 인증은 당장 국내 의료계에 반향을 불러왔다. 현재 고려대안암병원, 서울성모병원(구 강남성모병원), 건국대병원, 인제백병원,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등이 세브란스병원의 뒤를 이어 JCI 인증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의 글로벌화 사업은 지난 3월엔 강남세브란스병원의 혁신사업으로 이어졌다. 서울 강남의 최초 대학병원으로 자리 잡은 영동세브란스가 간판을 강남세브란스로 바꿔 단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해외환자와 VIP 환자들을 위해 특화된 병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박 원장의 오랜 구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남세브란스는 명품진료를 모토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고 그가 말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장의 인선 과정에도 병원에 ‘경영’을 이식하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동안 임상 교수가 병원장을 맡는다는 의료계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신임 조우현 병원장은 병원관리학을 연구하고 보건행정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의료행정의 전문가로 통한다.

“새로 출범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행정력이 검증된 인물이 필요하다”고 박 원장은 의사들의 반발을 물리치며 이를 밀어붙였다. 박 원장의 이런 뚝심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 스스로가 국내외 의학계에 행정력과 경영력을 겸비한 인물로 인정받는다. 그는 대한재활의학회 회장, 세계재활의학회(ISPRM) 회장, 대한스포츠의학회 회장, 세계장애인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을 두루 맡아왔다.

2006년 맡았던 ISPRM 회장직은 의료계 분과학회가 아닌 모학회 차원에서 세계 회장이 된 한국의학계 최초의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그가 원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3년 반 동안 세브란스병원은 연평균 매출 63% 증가, 교직원 1인당 매출액 23% 증가라는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연세의료원 교수평의회의 직접투표를 통해 연세의료원장으로 뽑혔다.

그런 박 원장을 일러 의료계 안팎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마당발, 불도저 같은 추진력의 소유자로 평가한다. 두 해 전 연세의료원 123년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을 겪으면서도 박 원장은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해 ‘원칙주의자’로서 그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연세의료원 ‘노사화합선언문’을 이끌어내 긴 파업으로 생긴 조직 내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했다.

박 원장은 자신의 그런 추진력의 근원을 “올바른 방향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병원이 중환자 치료와 연구에 전념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반 건강검진을 거부하고 수백만원대 검진사업에 주력하자 비난여론이 일었다.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들이 해외환자와 VIP를 모시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에 나서는 모습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없지 않다.

큰 병원들이 제 잇속만 차리려 일반 국민 건강은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고품격 서비스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의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경영이 어렵다는 병원과 의사들의 토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 정서와 병원 경영 사이에서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국내 병원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국제인증 평가를 얻기 위해 앞다퉈 나서고, 부자 고객과 해외 환자 유치에 적극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사립대학병원장협의회 초대회장을 맡는 등 병원업계의 현실을 정부정책에 반영하는 데 노력해 온 그지만 대중 정서와 소통하는 의료인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재활의학전문의 제도조차 마련돼 있지 않던 시절, “모두가 물리치면 이 나라 재활의학은 누가 짊어지겠느냐”는 신정순 박사(국내 뇌성마비 치료와 재활의 권위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어쩌면 박 원장에게는 경영자로서의 성과보다도 재활의학 전문의로서 환자들과 다져온 신뢰관계가 더 큰 재산인지도 모른다.

그는 의학계 안팎에서 흔히 ‘한국 재활의학의 대부’로 불린다. “재활의학은 그 특징상 여러 분야가 함께 모여 논의하고 협력해야 하는 진료과목이다. 그것이 진짜 의사로서의 내 눈을 뜨게 해줬다”고 그가 말했다. 박 원장은 한국 의료계에 또 다른 숙제도 차근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바로 연구개발 수준의 향상이다.

올 초 세브란스병원은 정부로부터 뇌·심혈관계 질환 관련 ‘선도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연세의료원은 연구 부문에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그가 말했다. “연쇄의료원이 글로벌 의료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선진 외국병원과의 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 연세의료원은 2011년까지 인천 송도국제자유도시에 세계 최고의 암 연구기관인 MD앤더슨과 함께 전임상시험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전임상시험이란 신약의 효과를 사람에 앞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을 말한다. “다국적 제약사의 전임상시험도 적극 유치해 외화벌이에 나서겠다”고 그는 말했다.

2011년 개원 목표인 암전문병원, 병상 1000개 규모의 새 용인병원 건축,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과의 연계사업 등도 그의 손길을 기다린다. 이제 그의 어깨에 한국의료의 세계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얹혀 있는지도 모른다. 세브란스병원이 추구하는‘섬김이 있는 병원’에 박 원장의 ‘아시아 허브 의료기관’의 꿈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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