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한국경제 회생 유전자 찾다
과거에서 한국경제 회생 유전자 찾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수많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불황 파도가 연일 거세지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조각배에 매달릴 처지에 몰렸다. 하지만 문제를 모르니 해결책도 쉽게 찾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 후대에 생존DNA를 전하려면 문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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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19개·15%), 금융감독 시스템의 개혁방안(11개·9%)을 묻는 질문도 적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컨셉트 인터뷰를 했다. 진념(노사갈등), 이승윤(출구전략), 강경식(금융시스템 개혁) 전 부총리, 강봉균(잠재성장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응했다.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노사화해의 기술
“노사 상생하려면 자신을 버려라!”
독립노조 활동 지켜볼 만 … 스킨십 통해 노사 심리적 거리 좁혀야
1988년 진념(69) 전 부총리는 해운항만청장에 임명됐다. 차관급 승진이었지만 고생문에 들어선 것과 다름없었다.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 항운 노조 때문이었다. 진 전 부총리는 책상을 버리고 야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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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노조는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노사 분규 역시 잦아들었다. 그렇다고 노조의 불평까지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진 전 부총리의 고집은 대단하다. 한 번 세운 원칙을 스스로 허문 적 없다. 가까워질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우는 게 그의 습성이다.
노사문제의 야전사령관, 해법 찾다
항운 노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형님이라 부르던 항운 노조원들이 불쑥 찾아와 “1시간 여유를 줄 테니,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자 양복 윗도리를 집어던지며 “마음대로 하라!”고 호통 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이들은 파업을 결행하지 않았다.
쌍용차의 ‘옥쇄 파업’이 77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리해고를 놓고 으르렁거리던 노사는 극적 타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상흔이 너무 깊다. ‘산자’와 ‘죽은 자’ 그리고 ‘죽을 자’ 모두 배신의 칼날에 마음이 베였다. 더 이상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파업 이후 생산차질은 1만4590대, 손실액은 3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극렬한 노사대립이 문제였지만 한편에선 ‘열성을 쏟는 중재자가 있었더라면’이라고 아쉬워한다. 노조의 마음을 꿰뚫어볼 만한 중재자가 부족했다는 한탄이다.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진념 같은 분은 (노동부 장관 시절) 재떨이에 폭탄주를 마시다 술상이 엎어져도 산업평화만 온다면 몇 번 엎어져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 자세를 가진 관료가 지금 어디 있는가?” 진념 전 부총리를 8월 6일 삼정 KPMG에서 만났다. 쌍용차 노사갈등이 극적 타결되기 바로 직전이다.
걸걸함은 여전했지만 인터뷰 중간 상념에 빠지는 모습도 수차례 보였다. 그는 “왜 (쌍용차 옥쇄파업의) 중재자로 나설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며 “나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 쌍용차 옥쇄파업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진 전 부총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노사갈등을, 그들의 멱살잡이를 더 이상 보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노사관계의 성격도 달라져야 합니다. 산업화 초기, 노사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노사 간 신뢰가 전혀 없습니다. 갈등 조정 시스템도 전무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별노조 무의미, 세 과시 “이제 그만”
>> 노사 갈등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첫째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첫째 걸림돌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은 맞죠. 노사관계가 선진화되지 않고선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진 전 부총리는 경제문제든 노동문제든 중요한 주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은 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신념. 그가 노동부 장관 시절(1995~1997년),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신(新)노사문화운동을 밀어붙였던 이유다.
‘노사상생으로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자’는 게 취지였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는 노사관계가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할까?
>> 노동부 장관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노사관계는 어떻습니까?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십니까?
“잘하는 기업도 물론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과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노사관계가 성립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입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성년이 훌쩍 지났다는 이야기인데…. 아쉽습니다. 쌍용차 파업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노동부 장관 시절 겪었던 쌍용차에 얽힌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1996년 어느 날, 진 장관이 쌍용차 평택 공장을 찾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경영진 타도’라고 적혀 있는 빨간색 플래카드 뿐. 그는 노조위원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진념: 쌍용차가 지금 흑자입니까?
노조위원장: ….
진념: 그럼 쌍용차가 흑자를 낸 적 있습니까?
노조위원장: ….
진 전 부총리는 대노했다. “이렇게 투쟁만 하는데 회사가 잘될 리 있겠는가? 빨간색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는데 누가 투자하고, 누가 경영하고 싶겠는가? 생각을 전환하기 어렵다면 빨간색 플래카드부터 파란색으로 바꿔봐라. 그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렇다고 진 전 부총리가 노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투명경영이 정착되지 않았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 사실 노사 간 타협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가령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측이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노조가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노조도 살아야 하니까요? 번번이 물러선다면 그게 무슨 노조냐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노사 모두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상책은 아니더라도 제2, 제3의 대안이 먹힐 수 있는 환경쯤은 만들어놔야죠.”
>> 최근 양대 노총 중심의 노조 활동에 반발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노동운동의 방향과 색깔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보이는데요.
“산별노조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위별 노조로는 교섭력, 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뭉쳐서 대항하자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런 세 과시 전략은 좋지 않습니다.”
>> KT노조의 민노총 탈퇴로 독립노조 활동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1999년 2만7389명에 불과했던 독립노조 조합원 수는 2007년 현재 26만5056명으로 10배가량 불어났다는 통계도 있는데요.
“올바른 방향입니다. 노동운동은 사업장 단위로 가야 합니다. ‘노사’(勞使)가 아니라 ‘노경’(勞經)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와 회사가 아니라 노동자와 경영자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노동 전문가, 쌍용차 사태로 반성해야
문제는 산별노조든, 독립노조든 사측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할 길이 없다면 독립노조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 사업장 단위의 노조가 구축된다고 꼭 극단적 노사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건은 노사가 상생할 마음이 있느냐로 보이는데요. 노사 상생을 꾀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내던져야 합니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끈질기게 대화해야 합니다. 스킨십을 많이 하면 할수록 신뢰관계가 구축되게 마련입니다. 단순한 해법 같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종래의 노사 문화, 정신자세를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 전 부총리의 별명은 해결사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성품에 빗댄 것이다. 특히 술잔을 나누며 대화하는 방식은 끈질기기로 유명하다. ‘좌삼삼 우삼삼 앞으로 한잔’은 그의 전매특허다. 노동부 장관 시절, ‘고용조정’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안’ 타협을 위해 박인상 노총위원장과 소주 댓 병을 비운 적도 있다. ‘자신을 내던질 각오로 임해야 (노사가) 상생할 수 있다’는 조언은 괜한 말이 아니다.
>>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을 묻겠습니다. 이번 쌍용차 파업에 대해 정부가 수수방관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중재자 역할에 소홀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쌍용차 파업은 민간 부문에 해당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부분이 아닙니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충분히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금부터입니다. 의지와 다르게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해고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됩니다. 바로 그것이 정부의 책무입니다. 사실 반성해야 할 사람은 저를 포함한 노동 전문가들입니다.”
>> 무슨 뜻입니까?
“노동부 장관 시절 교류했던 노동계 전문가들과 최근도 연락을 합니다. 여기엔 변호사도 있습니다. 종종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 일찌감치 쌍용차 파업의 중재자로 나설 생각을 왜 못했는지 요즘 반성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옥쇄 파업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노사관계는 성년을 지난 것치곤 아직 미성숙하다. 제2, 제3의 쌍용차 파업사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념 식 처방전’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승윤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출구전략의 기술
“긴축 예산 지금부터 준비하라!”
출구전략 타이밍 중요 … 풀린 돈 부동산 유입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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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글로벌 경제위기라면 그땐 ‘한국만의’ 불황 국면이었다. 조순 경제팀은 안정을 택했다. 정치권의 인위적 경기부양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물가 안정을 당면 과제로 삼은 것이다. 조순(81) 전 부총리는 이때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곡식과 잡초가 함께 자라고 있는데 성장이 더디다고 해서 비료를 뿌렸다간 잡초만 무성하게 자란다.”
1990년 3월 대폭 개각이 이뤄졌다. 그때 새 경제팀 수장에 오른 이가 이승윤(78) 전 부총리다. 그는 조 전 부총리와 달리 확장적 재정정책을 폈다. 제2금융권의 실세금리 1%포인트 인하 유도, 특별설비투자 1조원 증액, 수출투자지원 확대, 주택공급을 위한 주변녹지 및 임야 택지허용 등이 골자였다.
금융실명제도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유보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이었다. “성장 우선을 내세운 새로운 경제라인(이승윤 경제팀)은 금융 실명제를 연기하고 경제 활성화 대책을 속속 내놓았다.”
조순과 다른 길 걸은 이승윤
경기 침체기 땐 ‘헬리콥터를 이용해서라도 돈을 뿌려라’고 말한다. 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이 꼭 경기부양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면 인플레이션에 빚이라는 혹까지 붙일 우려가 있다. 이승윤 경제팀의 재정정책도 당장 큰 효과를 일구진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현 정부의 재정정책은 성공작이라고 할 만하다.
침체의 늪에 빠졌던 한국 경제에 ‘부활의 청신호’가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번 풀린 돈을 어떻게 회수하느냐다. 출구전략의 때를 놓치면 한국 경제엔 거품이 낄 공산이 크다.
빨리 썼다간 간신히 불붙은 회복 불씨가 걷잡기 어려운 화재로 번질 우려가 있다. 1989년 강도 높은 확대 재정정책을 추진했던 경험이 있는 이 전 부총리를 성북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 일단 “기민하게 잘 대응했다”고 평했다.
>> 1990년 부총리에 임명됐을 때 조순 경제팀과 반대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조순 전 부총리와 다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감각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감각의 차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조순 경제팀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후유증을 걱정한 것 같습니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물가가 급등할 것을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봤습니다. 당시는 석유 값이 급등해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죠. 수요 증가를 우려해 재정정책을 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게다가 경기가 급속하게 침체되고 있었습니다. 재정정책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하지만 당시의 재정정책은 경기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모순입니다. 재정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을 것입니다.”
노태우, 부동산에 울다
1990년 이 전 부총리는 한국의 상황을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급증한 수요는 공급능력을 훌쩍 넘어섰다. 당연히 수입이 증가했고, 1989년 53억 달러에 달했던 국제수지는 -82억 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소비자 물가도 덩달아 1989년 5.7%에서 1990년 8.6%, 1991년 9.3%로 치솟았다.
그렇다고 이런 침체의 원인을 이승윤 경제팀의 실책으로 봐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결정타는 노태우 정권 초기부터 추진됐던 신도시 개발계획이었다. 생산 부문에 유입돼야 할 돈이 비생산적 부문인 부동산에 몰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초래됐던 것이다. 이 사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돌파카드로 ‘재정정책’을 꺼내든 현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무엇보다 재정정책이 꼭 경기부양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정책으로 풀린 돈이 부동산에 유입되면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끼친다. 시중에 풀린 자금이 경기회복에 도움을 주려면 생산량 확대를 유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배분의 왜곡현상이 일어난다. 조짐은 벌써 감지된다.
올 7월 정부는 수도권 비투기 지역 담보인정 비율을 6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증가추세다. 돈이 부동산에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 글로벌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현 정부는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는데요.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도 많아 보입니다.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나온 돈이 비생산적 부문에 유입되는지 모니터링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풀린 돈을 언제 회수하느냐도 관건이죠.”
>>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물론이죠. 어쩌면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고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복지재정 수요가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죠.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재정정책의 후유증을 고려하지 않아도 고민거리입니다. 재정정책으로 늘어난 빚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자칫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출구전략 논쟁이 한창입니다.
“출구전략의 핵심은 방만해진 재정지출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죠. 너무 이르면 간신히 회복되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고, 늦으면 그야말로 너무 늦습니다.”
>> 출구전략의 적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환자 상태가 조금 호전됐다고 메스를 들이대선 안 되지 않습니까?”
>>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간단하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습니다. 우리 경제의 부활은 미국, 중국 등 해외 소비수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국내 증시가 회복됐다고 곧바로 출구전략을 꾀했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증시는 경기를 선행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건전한 소비수요가 완전히 회복되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는 이르면 올 하반기, 늦으면 내년 상반기로 예상됩니다.”
이 전 부총리의 조언이 마냥 기다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야구 선수가 웨이팅 박스에서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중요한 것은 준비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향후 개선 속도와 폭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만약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더블 딥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전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는 이런 가능성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적절한 출구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내년 예산을 하루빨리 검토해야 합니다. 증가한 예산 항목을 긴축할지 여부를 지금 결정해 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기득권화됩니다. 늘어난 예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긴축 항목에 대한 큰 그림 정도는 그려놔야 합니다.”
출구전략, 타이밍 중요
>> 국회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입니다. 출구전략에 대비한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놔야 합니다. 지금은 총체적 위기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야가 한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이 전 부총리는 이 말을 하면서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국회의 입법기능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장본인은 국회”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경제는 순환한다고 했다. 아침이 오지 않는 저녁은 없고, 그치지 않는 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지 않으면 부메랑을 맞을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불황 속에서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금융개혁’의 기술
“멀쩡한 금융감독시스템 왜 칼질 하나?”
옛 재경원·한은, 국가 위기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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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 전 부총리가 저술한 『환란일기』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 감독을 여러 기관에서 나눠 하게 되면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더욱이 금융기관 간 업무 영역의 장벽이 무너지는 추세여서 앞으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감독기능을 한 지붕에 통합해서 운영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다.”
한은에서 감독기능을 분리한다? 전가의 보도를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은행에도 뭔가 선물을 줘야 했다. 그것이 바로 재경원이 가지고 있었던 통화정책기능이었다.
당연히 재경원도 크게 반발했다. 곳곳에서 외환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국회에 진을 쳤다. 한은법 개정안 등 13개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법안들은 결국 보류됐다.
김영삼 정부가 IMF행을 결정한 것은 이로부터 사흘 뒤였다.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할 기관들이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했던 얘기다.
밥그릇 싸움에 금융감독시스템 누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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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은행감독원은 금융감독원에 통합됐고, 통화정책 기능은 한국은행으로 넘어왔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금융권은 또다시 비슷한 문제로 논쟁을 벌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라는 점도 똑같다. 국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는 올 4월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권을 한은에 제한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은행감독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강력 대응을 다짐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안정은 금융기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있는데, 은행 조사권을 강화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중복 조사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은행 역시 물러설 의지가 없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감독이라면 인가, 규제, 제재권이 있어야 하는데 조사권 강화를 감독으로 봐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제2의 한은법 파동이 예상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97년판 한은법 파동 때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윤증현), 한은 기획부장(이성태)으로 양측의 실무를 책임졌던 주인공들이다. 금융감독시스템, 진짜 문제일까? 1997년 금융개혁을 이끌었던 강경식 전 부총리를 만났다. 그는 현재 동부그룹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12년 만에 재격돌, 또 밥그릇 싸움
>> 1997년 한은법 개정 등 금융개혁을 진두지휘하셨는데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외환위기를 초래한 장본인 한보의 경우, 은행 대출의 난맥상은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부실채권을 관리하는 조직도 중요했지만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감독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시는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등으로 감독기구가 흩어져 있었죠.”
>> 당시 은행 감독기능을 국가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국민은 정부가 허가한 간판을 믿고 금융기관에 돈을 맡깁니다. 그런 정부가 허가 조건을 제대로 지키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한국은행에서 은행감독원을 뺀다는 것은 전가의 보도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었을 텐데요.
“한국은행에서 난리가 났죠. 감독기능 빼앗기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재경원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은행감독 기능을 빼앗는 조건으로 재경원 소관의 통화정책기능을 한국은행에 넘기려 했기 때문이죠. 양측을 조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 한은이 감독권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에겐 중요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한은은 사실 이 기능을 통해 은행을 장악하고 있었죠. 더구나 이를 통해 인사문제도 해결했습니다. 명목은 감독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은행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죠.”
>> 1997년 한은법 개정안 등 13개 금융개혁 법안은 결국 무사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한은, 재경원의 반발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직후엔 일사천리로 통과됐습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글쎄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만 생각했습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은법 개정 움직임도 그래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은이 은행 감독권을 가지고 있을 때 뭐가 달랐습니까? 그들이 은행 감독을 꼼꼼하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넘쳐났고, 결국 외환위기가 초래되지 않았습니까? 금융감독시스템엔 문제가 없습니다.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 한은은 다른 금융감독기관과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서 은행 감독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시스템 문제 아닐까요?
“금융감독원을 만들면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놨습니다. 그것이 있는데 안 됐다고 주장한다면 실제 그런지 따져봐야 합니다. 아마도 금융감독원 측에선 그런 적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정보 공유가 안 돼서 감독을 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또 그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밝히는 게 먼저입니다.”
이 대목에서 강 전 부총리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무리도 아니다. 우리는 문제만 생기면 멀쩡한 시스템에 칼질하기 바쁘다. 어떻게 운영됐는지, 잘 활용됐는지는 뒷전이다. 무조건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 사실 정부의 섣부른 조직개편도 이 문제를 부채질했다. 정부는 감독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재경부의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묶어 금융위를 설립했고,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의 수장을 분리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법령 및 감독규정 제개정 권한, 금융회사 인허가 및 금융정책 수립 권한을 가졌고, 금융감독원은 단순 검사, 감독기관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중복 감독은 감독기관의 책임분산으로 불충분한 감독을 초래한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실제로 권한과 범위를 놓고 티격태격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내가 주관부서”라며 전면에 나서는 조직이 없었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얘기다. 재경부와 금융위, 한국은행, 금감원이 권력을 분점하고 밥그릇 다툼을 하는 현 시스템이 기형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이명박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금융감독체제가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분리됐습니다. 이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유기적 협력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가 만든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독기능은 통합하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중복 감독체제는 책임의 분산을 초래하고, 피감기관에 부담을 줄 뿐입니다.”
운용의 묘 살리는 게 관건
>> 글로벌 금융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금융감독 기관의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21세기 들어 금융시장은 파생상품 거래의 상용화 등으로 다양화됐는데, 금융감독 기관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요.
“통합 감독시스템을 어렵게 만들었으면 여러 가지를 보완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일이 있습니다. 가령 전문 인력 양성 같은 것입니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시스템을 갖춰놔도, 사람의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 제2, 제3의 금융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 기능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시스템을 효율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금융감독시스템은 얼마든지 위기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운용의 묘를 어떻게 살리느냐입니다. 시스템 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제아무리 훌륭한 금융감독시스템을 갖춰도, 이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각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면 시스템은 쉽사리 붕괴된다. 바로 이것이 1997년 금융개혁을 이끌었던 강 전 부총리가 우려하는 점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잠재성장률 올리는 기술
“미래 먹을거리, 워런 버핏처럼 찾아라”
굴뚝산업도 성장엔진 … 새로운 시장 대비해 전통산업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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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학자들은 ‘정보화 혁명’에 성공한 미국 경제가 드디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일시적 생산성 향상일 뿐이라고 맞받아쳤다. 대부분 보수 색채를 띤 학자들이었다. 누구 말이 옳았을까?
강봉균(66) 전 재경부 장관(민주당 의원)은 당시 정통부의 우두머리였다. 미 소장 학자처럼 그도 ‘정보화산업’을 혁명으로 여겼다. 정보통신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나머지 산업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미국 학계의 논쟁
10년이 흐른 지금, 강 전 장관은 “내가 틀렸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미국 학계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새 패러다임 논쟁도 ‘보수 학자의 견해가 맞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무슨 의미일까? 해답을 듣기 위해 강 전 장관을 8월 6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이 답은 우리의 멈춰버린 잠재성장률과 미래 먹을거리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 미국의 ‘새 패러다임’ 논쟁에서 보수 학자가 승리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보통신 등 새로운 산업분야가 꼭 미래 먹을거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섬유·자동차 등 전통산업도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새 산업은 곧 미래 산업’이라는 등식을 깨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미국 소장 학자들은 20세기 후반 정보통신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자 호들갑을 떨었죠. 새 패러다임이 형성됐다면서 말입니다. 때마침 계속되던 미국 경제의 호황도 정보통신산업이 이끌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학자들에게 정보통신산업은 그야말로 미래 먹을거리였죠. 보수 학자는 달랐습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가 호황으로 단순하게 이어진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강조했죠. 물론 소장 학자들이 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수 학자의 의견이 옳았습니다. 정보통신산업이 미국의 호황을 이끈 게 아니었습니다.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했던 게 호황의 원인이었죠.”
신성장동력 하면 흔히 우주항공산업, 대체산업 등을 떠올린다. 요즘은 녹색성장이 대세다. 강 전 장관은 이를 고정관념의 소산이라고 말했다. 굴뚝산업도 때론 새 성장엔진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중국시장의 예를 들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도움이 불가피한 분야가 너무도 많죠. 자동차·전자부품·조선·항공 등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강세를 띠는 분야입니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시장이 우리의 전통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흥미로운 주장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날이 갈수록 추락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잠재성장률 추이와 부진의 원인’이란 보고서에서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1980년대 평균 7.9%에서 외환위기 후 4.5%로 떨어진 데 이어, 글로벌 불황 후엔 3.8%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3% 하락’을 언급했다.
잠재성장률이 추락을 거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성장률의 변수는 노동·자본·기술이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에 진입함에 따라 노동력은 줄고 있다. 기업 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곤두박질쳤다. 믿을 언덕은 기술뿐이지만 이마저도 반신반의다. 기술력 향상에 대한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걱정하면서 ‘미래 먹을거리 찾기’에 부심하는 까닭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밀려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신형 엔진을 장착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산업을 미래 먹을거리로 삼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강 전 장관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시장질서의 변화만 제대로 읽어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세계시장은 어떻게 개편될까? 강 전 장관은 ‘동아시아 경제체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아시아 경제체제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글로벌 금융위기 후 동아시아 경제체제가 강화될 것입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가 구체적 실행단계에 들어가 1200억 달러 규모의 결제기금을 조성하지 않았습니까? 한·중, 한·일 간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 협정도 체결했죠.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 불황을 돌파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경제체제는 향후 더욱 확고해질 것이고, 이 지역의 시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먹을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특히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경제규모로 봤을 때 미국과 유럽연합을 능가합니다.”
>> 녹색성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향은 맞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충분하죠. 하지만 녹색성장을 마치 유일무이한 미래 먹을거리로 치켜세우는 것은 안 됩니다. 무엇보다 녹색성장 전략은 아직 추상적입니다. 10년이 지나야 효과를 볼지 모르겠다는 회의론도 있습니다. 녹색성장 전략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녹색산업, 방향은 좋지만…
>> 지나치게 근시안적 사고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2~3년 앞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잠재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콘텐트를 가진 산업이 필요합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될 게 확실해 보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전통산업의 육성에 주력해야 할 때입니다.”
경제는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면서 순환한다. 어제의 사양산업이 오늘도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어제의 성장산업이 오늘도 성장산업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시장질서가 달라지면 사양산업이 순식간 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강 전 장관은 그래서 굴뚝산업과 전통산업을 절대 소홀히 취급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잠재성장률을 얼마든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벤처붐이 일었을 때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굴뚝산업 투자를 고집했던 워런 버핏의 철학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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