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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외면과 금융권 불신이 걸림돌

소비자 외면과 금융권 불신이 걸림돌

쌍용차는 과연 정상화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대충돌 직전에 끌어낸 대타협의 분위기 속에서 회사는 빨리 앙금을 떨고 일어설 분위기지만 안팎의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쌍용차 회생을 결정하는 7가지 키 포인트를 긴급히 짚는다.

악수는 했지만…. 지난 6일 쌍용차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 합의를 했다. 하지만 쌍용차 회생은 이제부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6일 쌍용차 노사는 77일간의 파업을 마감했다. 노사 간의 악수도 있었고, 그럴듯한 합의문도 있었지만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의의는 쌍용차의 회생이 아니라 노조원과 경찰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았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사는 ‘극적인 노사 대타협’을 이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극적인 타협이 쌍용차의 극적인 회생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1. 가동률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나?


생산능력은 이미 바닥… 가동률 60~70%는 돼야 


현재 쌍용차의 제조 생산성은 경쟁업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쌍용차 생산직원 1명이 연간 생산하는 차량은 16대에 불과하다. 현대차(51.9대), 기아차(48.8대)보다 턱없이 떨어진다.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HPV: Hour Per Vehicle)도 쌍용차는 81.8시간 걸려 현대차(31.1시간)와 기아차(37.5시간)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다. 이번 파업이 아니었어도 쌍용차의 미래는 상당히 어두웠다. 물론 쌍용차 공장이 이처럼 비효율적인 이유는 판매 부진과 연관이 깊다.

쌍용차 평택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23만 대. 단순 계산으로 매월 1만9000여 대를 생산하면 공장 가동률이 100%다. 하지만 파업전인 4월에도 평택공장에서는 3800여 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가동률이 20%에 머물렀다. 파업 이후인 5~7월은 10%대 이하였다. 2~3주간 생산시설 점검을 마치고 9월부터 생산이 재개된다 해도 올해 생산량은 2만~3만 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연간 가동률로 따지면 10%대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회사는 가동률이 60~70%는 돼야 지속 가능하다.



2. 금융권의 판단이 관건


잔존가치와 청산가치에 대한 회계적 계산에 촉각 



지난 7월 초 서울 청담동
파업은 그만뒀지만 쌍용차는 이미 자체적으로 회생하기 힘든 상황에 들어섰다. 산업연구원은 “파산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정부와 금융권의 자금 지원 없이는 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당장 공장을 돌릴 돈도 남아 있지 않다. 임직원 월급도 4개월째 밀려 있는 상태다. 노조의 점거농성 기간 중 생산차질 대수는 1만6800여 대, 매출 손실액은 3600여억원에 달했다.

또 지난 5월 삼일회계법인 조사에서 쌍용차의 ‘잔존가치’는 1조3276억원으로 ‘청산가치’ 9386억원보다 3900억원 정도 높았다. 하지만 그동안 파업으로 인해 청산가치가 잔존가치와 거의 비슷하거나 높아지게 됐다. 금융권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3. 판매 회복할 수 있을까?


영업점 고사 직전… 브랜드 이미지와 서비스 안정성도 추락 


쌍용차는 지난달 국내외에서 단 71대만을 판매했다. 대부분 전시 차 위주였다. 본사 지원 없이 판매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전국 140개 영업점은 고사 직전이다. 지난 두 달간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한 영업소도 있다. 그 여파로 한때 4000여 명에 달했던 영업직 중 500여 명만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요 딜러조직이었던 아주모터스는 쌍용차와 결별하고 GM대우자동차와 손을 잡았다. 판매 부문에서 볼 때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지난달 말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끝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는 사실상 종료시점 1~2개월 전에 판매가 집중됐다.

현대차가 올 2분기에 1분기보다 무려 43.4%나 판매가 증가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연말, 연초에 구매를 미뤘던 물량이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 종료를 앞두고 쏟아져 나왔다. 이 기간 쌍용차는 공장을 점거한 파업이 한창이었다. 문제는 회복이다.

쌍용차가 주력으로 삼는 대형차와 SUV 시장은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나 서비스의 안정성이 소형차보다 훨씬 중요하다. 또 서비스센터나 영업점의 수준도 높아야 한다. 하지만 쌍용차는 이번 파업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땅에 추락했다. 특히 쌍용차는 최근 2~3년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되면서 연구개발과 관련된 투자가 부진해 신차 출시를 계속 미뤄왔다.

이에 비해 현대, 기아차는 물론 르노삼성과 GM대우도 꾸준히 신차를 출시하면서 대형차는 물론 SUV에서도 격차를 좁히거나 앞서가고 있다. 이는 이미 시장에서 반영되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SUV 시장에서 쌍용차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5%로 르노삼성(4.5%)과 GM대우(4.0%)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에 비해 쏘렌토R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아차는 41%, 현대차는 43%를 차지하면서 쌍용의 SUV 명가라는 말마저 무색하게 하고 있다. 대형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체어맨은 1~7월까지 총 2838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대형차 시장의 3% 남짓한 점유율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9%대에 이르던 점유율에 비해 급격히 추락한 수치다. 반면 에쿠스 신형과 제네시스, 그랜저, SM7, 오피러스 등의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올랐다.



4. 소비자들 외면 이미 시작


중고차 가격 일제 하락… 소비자들 ‘위험한 선택’ 외면



전문가들은 생산보다 판매 현장의 문제점이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당장 쌍용차 노사 측은 2~3주 안에 공장을 정상화해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생산재개가 아니라 판매재개다.

도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이 ‘잘 만들어서 판다’가 아니라 ‘팔리는 것만 만든다’인 것도 자동차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능력이 아니라 판매능력임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쌍용차의 회생여부도 생산시설 재가동이 아니라 판매망 재가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쌍용차는 이미 상당수 영업인력이 이탈한 상태고, 소비자들도 미래가 불투명한 쌍용차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승용차의 평균 사용 연수가 7년인 점을 감안하면 공적자금 투입, 제3자 매각, 청산 등 다양한 변수가 놓인 쌍용차를 소비자들이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조짐은 이미 중고차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쌍용차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고차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농성 기간 중 렉스턴 중고차 값은 50만~100만원, 체어맨 중고차 값은 100만~150만원씩 일제히 하락했다. 이미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쌍용차를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고차가 신차 가격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쌍용차는 앞으로 정가 정책을 고수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가격하락은 판매망 마진과 본사 마진을 줄여 회사 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계 어디서나 중고차 가격은 궁극적으로 신차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잔존가치를 높게 평가 받으려는 것도 신차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 외상보다 더 깊은 내상


협업이 기본인데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소비자의 외면, 판매망 붕괴, 생산시설 피해가 외상(外傷)이라면 직원끼리 장기간 대치해 서로 폭력을 휘둘렀던 점은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내상(內傷)이다. 살아남은 사람과 떠나야 할 사람 간의 갈등 못지않게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골이 깊게 파였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한 퇴직자는 “자동차 생산은 협업이 기본인데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끼리 같이 작업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간 합의로 생산직에서 영업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영업현장에서는 우려의 소리가 있다. 교육도 안 된 상태에서 영업에 나설 경우 고객의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고, 각종 클레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쌍용차를 판매하는 한 영업사원은 “영업도 고도의 기술인데 생산직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영업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관행적으로 영업사원들이 지켜오던 룰을 깨뜨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쌍용차는 노사 간의 문제는 극적으로 봉합했지만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 기업과 시장의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쌍용차의 미래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공급과잉인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부갈등(노사갈등)이 외부 경쟁력(기업 순위)과 직결되는 경향이 있다.



6. 협력업체도 타격


이미 13개사 부도에 10개사 폐업 


자체 공장뿐 아니라 협력업체들의 타격도 크다. 부품업체 단체인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측은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부품업계의 납품 차질액을 3817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이미 13개사가 부도를 내고 10개사가 폐업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파업은 타결됐지만 자금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특성상 공장 재개와 대급 지급이 조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파산하는 기업은 점점 늘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 2만여 개 중 단 1개만 공급 차질을 빚어도 생산라인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품업체의 붕괴는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파업이 없었던 도요타가 미국의 ‘빅3’를 넘어선 것이나 노사관계가 안정된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도 다 이런 배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사장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기업도 노사 간에 문제가 생기면 시장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제한 뒤 “하물며 3~4등 기업이 노사협력 없이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쌍용차 노사 앞에는 어쩌면 77일간의 파업보다 더 힘든 77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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