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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의 이유 있는 항변

돼지고기의 이유 있는 항변

돼지고기 뒷다리와 등심이 시위를 한다면 구호는 정해져 있다. “삼겹살만 고기냐, 우리도 고기다!” 저지방 웰빙 식품으로 꼽히는 돼지 뒷다리와 등심, 안심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좋아지고는 있다지만, 아직 멀었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지난 5월 열린 요리대회에서 한 관람객이 돼지 뒷다리로 만든 요리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요리대회에서 한 관람객이 돼지 뒷다리로 만든 요리를 살펴보고 있다.

천대받던 돼지고기 안심과 등심, 뒷다리를 찾는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돼지고기 하면 삼겹살 또는 목살만 찾는 음식문화가 웰빙 트렌드에 맞춰 서서히 변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불황기 소비행태 변화로 삼겹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부위를 찾는 손길이 늘어난 것도 소위 ‘비선호 부위’로 불리는 등심과 안심, 뒷다리의 인기가 올라가는 이유다.

비선호 부위 판매를 늘리기 위해 정부와 양돈 관련 협회 및 농가가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나서고 관련 식품 개발에 힘써온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06년부터 올 6월까지 돼지고기 소비패턴을 분석한 결과 부위별 구매 비중은 여전히 삼겹살, 목심, 갈비 등 전통적 인기 부위에 치중돼 있었다.

하지만 선호하는 부위의 구매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인기가 없던 등심과 안심, 앞다리와 뒷다리 구매 비중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고기 부위별 구매 비중을 살펴보면 2006년 33.6%였던 삼겹살은 올해 30.8%로 줄었다. 목심(목살)도 같은 기간 17.2%에서 15.2%로 줄었다.

반면 등·안심은 5.2%에서 6.7%로, 전·후지(앞다리와 뒷다리)는 14.9%에서 21.1%로 늘었다. 특히 비선호 부위의 소비 증가 추세가 매년 이어진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팔린 돼지고기 중 58%가 삼겹살하지만 여전히 돼지고기 부위별 소비 편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삼겹살 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지나칠 정도다. 수입량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육류유통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 수입된 삼겹살은 1만t에 가깝다. 목심은 2000t, 보쌈이나 수육 재료로 많이 쓰이는 앞다리는 4700t이다.

반면 뒷다리는 140t, 등심은 165t에 불과하다. 국내에 유통되는 삼겹살이 모자라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돼지고기 재고량은 2만4000t이다. 이 중 삼겹살 재고량은 3700t 정도였다. 삼겹살 수입이 많은 것은 싸게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돼지고기 부위 중 삼겹살이 제일 비싼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각 부위를 국제 기준 가격으로 보면 등심과 안심이 가장 비싸고, 전·후지와 갈비 순이다. 목살과 삼겹살은 가장 싸다. 우리나라와 반대다. 입맛의 차이 때문인데, 미국의 경우 신선육보다는 가공육을 많이 먹고 일본의 경우도 부위별 소비 비중을 보면 안심과 등심이 60%를 넘고 삼겹살은 15% 정도에 그친다(농림부 2006년 자료).

반면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소비의 절반을 삼겹살이 차지한다. 일반 가계의 소비행태를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국축산경제연구원의 ‘2분기 소비자 이용 실태’ 자료에 따르면 농협이나 일반 정육점, 할인마트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하는 소비자 중 69%가 선호하는 부위를 삼겹살이라고 답했고, 목살은 21%였다. 저지방 부위인 뒷다리를 지목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실제로 7월 1일부터 한 달간 농협에서 팔린 105t의 돼지고기 중 58%가 삼겹살이었다. 일반 정육점의 삼겹살 판매 비중 역시 50%를 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한 해 900만 마리 정도다. 이 중 110만 마리가 도축된다. 육류유통수출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생산된 삼겹살은 1만2000t이다. 비선호 부위는 두 배가 넘는 2만6000t이다.

목심과 갈비는 각각 5800t, 4000t이다. 돼지 한 마리로 치면, 삼겹살은 전체 살코기 생산량의 15~18%라고 한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 대부분이 삼겹살을 선호하면서 앞다리나 뒷다리에 비해 가격은 두 배 정도 비싸다. 올 8월 기준으로 일반육의 ㎏당 도매가격(냉장육)은 삼겹살이 1만4000원인 데 비해 등심은 4700원, 안심은 5300원, 뒷다리는 3800원이었다.

그나마 비선호 부위 판매가 조금씩 늘고, 이 부위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삼겹살과의 가격차가 그나마 좁혀진 것이다. 가령 2004년 삼겹살 가격을 100원으로 봤을 때 등심은 32원에서 43원으로, 뒷다리는 28원에서 39원으로 올랐다. 돼지고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곳이다.

삼겹살은 출하량 변동에 따라 ‘금겹살’로 변하곤 한다. 공급은 주는데 수요는 그대로면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 올 초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돼지 사육두수는 50만 마리 줄었다. 곡물 가격 인상에 따른 사료값 증가가 원인이었다. 그 영향으로 돼기고기 생산량이 줄면서 올 초 삼겹살 값이 폭등한 것이다.

또한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늘면서 돼지고기 수입도 감소했다.반면 돼지고기를 즐기는 소비자는 계속 늘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0㎏ 정도였다. 15년 전에 비해 한 사람당 10근을 더 먹은 셈이다. 문제는 20㎏의 돼지고기 중 절반이 삼겹살이라는 것이다.

음식문화와 입맛을 탓할 수는 없지만, 이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짝퉁 삼겹살’이다. 지난해 돼지고기 소비량은 100만t에 달했다. 삼겹살 도소매 판매 비중을 감안하면 삼겹살만 50만t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국내 양돈농가가 제공할 수 있는 진짜 삼겹살은 한 해 10만~15만t 정도다.

여기에 수입 삼겹살 10만t을 더한다 해도, 지난해 소비자들이 삼겹살이라고 믿고 먹었던 것 중 절반은 ‘짝퉁’이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나서 진짜 삼겹살 구별법을 홍보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생기는 것이다.



가공육 시장 거의 정체

몇 년 전부터 정부와 양돈 관련 단체는 ‘비선호 부위 판매’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등심과 안심, 뒷다리를 ‘웰빙 3총사’로 부르며 TV광고를 하고, 전국 각지에서 시식회를 열고 있다.

국내 양돈 농가들도 돼지고기 소비촉진을 위해 만든 기금인 ‘양돈 자조금’을 통해 저지방 부위 요리를 개발하고 요리강좌를 여는 등 소비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삼겹살, 목살, 뒷다리, 등심 등을 한 팩으로 포장해 판매에 나서는 등 갖가지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비선호 부위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공육 시장은 거의 정체 상태다.

결국 가계의 소비가 늘어나야 문제가 해결된다. 손재현 양돈자조금관리위원회 과장은 “소비자들이 삼겹살만 찾는다면 생산 농가나 육가공 업체, 브랜드육 업체 모두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며 “양돈 농가를 위해서라도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양돈 농가는 어렵고 힘들다. 잇따른 FTA 체결로 위기에 몰려 있다. 이미 국내에서 소비되는 삼겹살의 절반 가까이는 수입육이다. 지난해 2000여 양돈 농가가 폐업했고, 올해도 많은 농가가 양돈을 포기하거나 위탁생산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하루아침에 입맛을 싹 바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구가 삼겹살 세 번 먹을 때 한 번만 등심과 안심, 뒷다리를 요리해 먹는다면 상황은 호전될 수 있다. 입맛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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