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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환경 모르쇠?

미국은 환경 모르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장에서 가장 힘든 일은 유권자와 세계 지도자들의 높은 기대에 대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바마가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환상과 미국정치의 현실 사이의 괴리는 특히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가장 크게 벌어져 있다.

그래서 세계 지도자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에 모여 기후변화와 관련한 새로운 협약을 마련하기 전부터 우리는 그 정상회담이 실패하리라고 예측했다. 대부분이 미국을 훼방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지난 11월에도 개도국 연합은 선진 부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삭감할 확고하고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코펜하겐 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문제로 미국의 기후변화 협상 대표단이 궁지에 몰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이전에는 기후변화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온실가스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대폭 손질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이 세계에 내놓는 약속과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기대하는 수준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진다.

오바마 자신은 그 간극을 메울 만한 힘이 별로 없다. 미국의 정책입안 과정이 세계의 다른 어떤 주요 국가보다 더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필요한 경제정책은 백악관보다 의회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근래 들어 미국 정치의 당파성이 더 강해지면서 상하 양원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표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대책엔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경제난이 겹쳐 문제가 더 헝클어졌다. 친환경적인 해안 지대는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지만 더 소극적인 중서부와 남부의 주들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주에선 주로 값싼 석탄으로 전력을 생산하며 경기침체의 타격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이는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또 기후법안은 미국 상원에서 결정적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데 의회가 내년 11월 선거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2013년 이후에나 상원에서 기후법안이 본격적으로 검토되리라는 예상도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 구속력 있는 조약에 미국이 가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 다른 나라들의 분노를 어떻게 달래느냐는 점도 미국 외교정책의 또 다른 과제다.

어떤 조약이든 미국에서 법제화되려면 전체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상원에 공화당 의원이 많기 때문에 그 조약의 통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 3월의 갤럽 여론조사에서 지구온난화 위협이 과장됐다고 답한 미국인이 41%에 달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의 견해차는 더 커졌다. 미국이 우물쭈물하는 동안 다른 나라는 더 대대적이고 믿음직한 공약을 내걸 준비를 마쳤다.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수준의 80%로 감축하고 더 나아가 그 비율을 70%까지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잘 돼야 2020년까지 배출량을 겨우 1990년 수준으로 낮추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더 큰 폭의 감축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 EU는 개도국들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대처하고 관련 신기술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의 조성에도 앞장선다(자체 추산으로는 어림잡아 연간 1000억 달러이며 그중 10%가량을 자체 조달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미국의 의회는 기껏해야 10억이나 20억 달러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그 액수조차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머지 자금은 탄소시장에서 조달하겠다고 미국 외교관들은 말하지만 연방정부가 진지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수익성 있는 탄소시장이 존재할 수 없다.

EU의 탄소시장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이며 개도국 배출가스 감축자금의 최대 조달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코펜하겐 회의에 참석한 대형 개도국은 거의 모두 진지한 배출량 규제 계획을 마련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대규모의 에너지 효율 운동으로 앞서 나가며 향후 배출가스 감축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그래도 중국의 배출량은 증가하지만 이는 중국 같은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로서는 정상이다. 하지만 국민 1인당 기준으로는 미국 수준을 훨씬 밑돈다).

인도도 지난 4개월 동안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게다가 인도가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실용주의자들이 요즘 인도 정계에서 기반을 넓혀간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최근 삼림파괴를 억제하는 정책을 통해 배기가스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번 기후변화 회의에서 미국이 테이블 위에 내놓을 게 적으니 오바마가 큰소리를 치기는 힘들 듯하다. 미국의 신뢰성 추락으로 다른 나라들은 무슨 일을 하든 미국이 파트너로 믿을 만한지 의문을 품게 되고, 옛 소련의 몰락 이후 시작됐던 미국 일극 체제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 후보 시절 오바마는 국민에게 워싱턴 정계 개혁의 희망을 심어줬다. 이제 세계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린 그로서는 미국을 향한 기대가 땅바닥에 곤두박질하지 않도록 연착륙을 유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필자는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국제 법·규제 연구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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