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효과’, 창의적 IR의 성과였나
‘버핏 효과’, 창의적 IR의 성과였나
지난 2월 4일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지난해 철도회사인 벌링턴노던산타페 인수 시 재무에 부담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인수에 들어간 돈은 270억 달러로 버핏 생애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여기에 버핏의 후계자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면서 이번 인수로 버크셔 해서웨이가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버핏은 장기간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대표적인 투자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27일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1965년 방직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이후 2008년까지 연간 투자 수익률이 평균 20.3%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연평균 20.3%. 이 성장률이면 기업이 두 배가 되는 데 4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44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는 3048배 성장한 셈이다.
총 자산 중 투자 주식은 18%에 불과 S&P500을 시장 평균이라 할 때 30%포인트 이상 시장 평균 수익률을 앞지른 적이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지만 자산가치 상승률이 S&P500을 밑돈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는 닷컴 열풍이 불었을 때다. 이때 S&P500의 자산가치는 21% 오른 반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버핏이 인터넷 기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닷컴주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물간 ‘굴뚝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난을 샀다.
하지만 결국 투기 열풍은 ‘닷컴 버블’을 불렀고 버블은 바로 다음 해에 꺼졌다. S&P500 지수는 10% 떨어졌지만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30% 올라 버핏은 명성을 되찾았다. 그는 기업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낮은 주식을 사서 장기보유한다. 이 투자법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투자론을 강의한 벤저민 그레이엄의 이론을 따른 것이다.
버핏은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을 주식이라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말라”며 장기투자를 강조했다. 세계의 많은 투자자가 버핏의 투자법을 따라 한다. 무엇보다 100달러로 시작해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버핏 자신이 그를 부의 상징이자 투자의 전설로 만들었다. 하지만 버핏을 숭배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일반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투자회사가 아니다. 버핏 역시 순수 펀드매니저라 하기 어렵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2008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2674억 달러 중 투자한 주식은 491억 달러로 18% 남짓이다. 이 비율은 2000년에는 30% 정도였다. 버핏이 점차 주식 비중을 줄였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자산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한 비상장기업이다. 버핏은 초기에 보험회사를 운영하면서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코카콜라, 질레트 같은 대기업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다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기업 인수에 나섰다고 한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는 버핏은 사업가일 뿐 주식 투자자가 아니라며 “버핏은 STX, 금호아시아나, 두산그룹 같은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과 다를 바 없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버핏은 투자자가 아닌 최고경영자(CEO)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때마다 체리 코카콜라를 마신다. “코카콜라 덕분에 건강하다”는 그의 말은 코카콜라의 주가를, 그리고 코카콜라의 지분을 보유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포장이다. 올해 1월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오마하로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버핏은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라며 투자할 회사를 치켜세웠다.
상장기업의 주가 올리기뿐 아니라 인수한 비상장기업 홍보에도 열심이다. 2007년 10월 손자회사인 한국의 대구텍에 들른 그는 “대구텍을 파느니 내 가족을 팔겠다”고 해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버핏이 거쳐간 기업에 투자자들이 몰린다고 해서 ‘버핏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가 보여준 창의적인 기업설명활동(IR)이 ‘CEO 프리미엄’을 만든 것이다.
투자한 주식과 비상장기업을 절묘하게 혼합한 그의 ‘하이브리드 경영법’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09년 7월 52배로 당시 S&P500의 PER인 17배와 비교해 훨씬 높았다. PER이 높으면 주가가 고평가된 것이고 낮으면 저평가된 것으로 보지만 성장성을 고려하면 좀 다르다.
가령 이익이 매년 50%씩 늘어나는 기업은 3년 후에 약 3.4배의 이익을 낸다. 현재 주가를 3년 뒤 이익으로 나누면 PER은 15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현재 PER이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당 순이익은 2004년 4753달러에서 2006년 7144달러로 늘었다.
이 기간 연평균 순이익 성장률은 22%가량. 같은 기간 동안 S&P500에 편입된 기업의 주당 순이익 성장률은 15% 수준이다. 평균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52배라는 높은 PER을 뒷받침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는 77개로 보험업종과 비보험업종으로 나뉜다.
보험업체인 내셔널인뎀니티, 제이코, 제너럴콜론리를 비롯한 시스(캔디), 헬츠버그다이아몬드(보석) 등의 다양한 업체가 앞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장성을 결정할 주인공이다. 전문가들은 이 회사들의 업종을 두고 성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워런 버핏은 애초에 성장성보다 가치에 투자해 왔다”고 말했다.
버핏은 인수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세전 7500만 달러 이상 이익’ ‘강한 현금 창출 능력’ ‘전혀 없거나 미미한 부채’ ‘높은 주당 순이익률’ ‘이해하기 쉬운 사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상장된 기업의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워런 버핏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장기업과 마찬가지로 투자한 주식 역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후계자 문제 공식 논의1930년생인 버핏은 언젠가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떠나야 한다. 그는 3월 1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후계자 선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몇 명의 후보가 있다”고 밝혔다. 벌링턴노던산타페 인수를 두고 “버핏이 은퇴 후를 생각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철도회사를 골랐다”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2010년 2월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의 PER은 35배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S&P500의 PER은 19배 정도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다시 고평가를 되찾을 수 있을까. 헤지펀드 시브리즈 파트너스 매니지먼트의 창립자 더글러스 카스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버핏의 투자 스타일은 표류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팔아야 하는 이유 11가지를 제시했는데 ‘제2의 워런 버핏’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카스는 1년 후인 2009년 말에 “벌링턴노던산타페 인수로 버핏이 그의 그림을 완성해 할 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버핏의 은퇴를 점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아직 버핏의 실력과 운과 성과를 믿는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45년 동안 워런 버핏이 독단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렸겠느냐”며 “그와 비전을 공유하는 직원들이 이미 시스템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펀드매니저 출신 투자 전문가는 “펀드매니저도 사람이라 감정에 따라 눈앞의 이익을 발로 차버릴 때가 있다. 버핏이 자회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 역시 “모든 데이터 분석 뒤엔 직관이 따른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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