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키는 생활용품 만든다
환경 지키는 생활용품 만든다
대표이사 부회장이라고 들었는데 그 직함은 온데간데없고 비둘기를 모티브로 한 회사 로고와 함께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겸임 교수’라고 쓰여 있다.
피죤 이주연(46) 부회장의 명함 얘기다. 실제 이 부회장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메릴랜드대 칼리지 오브 아트와 뉴욕 퀸스칼리지 대학원을 거치며 10년 가까이 미술 공부를 계속했다.
한국에 돌아와 피죤 직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서울여대와 동국대에서 소묘, 미술사를 가르쳤다.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던 이 부회장은 현재도 틈 날 때마다 스케치 작업을 한다.
2년 전 이화여대는 디자인, 마케팅 분야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이 부회장이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다는 점을 평가해 교수로 초빙했다.
이 부회장은 회사 경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1주일에 3시간 강의를 위해 손수 파워 포인트로 강의물을 만들고 신문을 스크랩한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며 “젊은 층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회사 경영에 접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발용품에 진출할 계획그런데 어떻게 경영자로 나서게 된 것일까. 이 부회장은 피죤 이윤재(76) 회장의 맏딸이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남동생(이정준 미국 메릴랜드대 주립대 경제학과 교수)과 달리 이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기업 경영에 매력을 느꼈다. 디자인 팀장으로 피죤에 합류한 후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8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자연스레 부녀 간 경영 승계 구도가 이뤄진 셈이다. 여성 경영자로 느끼는 애로사항은 “남성 중심 한국 사회의 보수적 가치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너가(家) 출신이든 전문경영인이든 여성 CEO가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이들이 아직 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 부회장은 바지와 하얀 셔츠에 스카프로 포인트를 낸 옷차림이었다. 40대 중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활기찬 모습을 연출했다. 남다른 패션 감각과 디자인을 공부한 경력을 살려 패션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피죤은 1978년 회사 설립 후 섬유유연제, 주방세제 등 생활용품 분야에서 고집스레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이에 대한 이 부회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세계 최고의 종합생활용품 기업이 되자’는 게 피죤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생활용품 시장에서도 할 일이 많아요. 헤어제품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고 남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한 생활용품 개발 또한 큰 관심사입니다. 이처럼 한 우물 파기도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사업 다각화에 눈 돌릴 여력이 없습니다. 피죤은 앞으로도 생활용품이라는 핵심 역량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 부회장의 말은 이어졌다. “피죤의 신성장동력은 ‘친환경주의’입니다. 전혀 다른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 기존 핵심 역량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신성장동력을 찾을 겁니다. 실제 피죤은 친환경주의 전략 아래 피죤의 신성장동력이 될 만한 신제품을 많이 개발했어요. 액체세제 ‘액츠’와 살균세정제 ‘무균무때’가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신제품뿐이 아닙니다. 피죤을 뉴질랜드산 천연 달맞이꽃 오일이 함유된 ‘피죤 자연이야기’로 업그레이드했어요. 천연섬유 함유 업그레이드 피죤이 또 다른 틈새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죠.”
이 부회장의 명쾌한 설명으로 피죤이 지켜가고 있는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피죤은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눈앞의 이익보다는 ‘100년 뒤 환경을 지킬 제품을 만든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제품을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피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피죤의 의지는 비둘기를 의미하는 영어 ‘Pigeon’에서 얻은 기업명에서 찾을 수 있다. 비둘기는 평화와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순하고 부드러우며 품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 피죤은 가장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파랑과 흰색을 제품 디자인에 사용했다.
파랑과 흰색은 피죤이 추구하는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섬유유연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과 자연을 암시하고 있다. ‘피존한다’는 빨래할 때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군다는 뜻으로 보통명사처럼 쓴다. 브랜드 전문가들은 피죤을 “브랜드 전략에서 성공한 사례”로 꼽는다.
피죤은 지난해 5월 중국 톈진에 공장을 세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소득 수준과 위생 의식이 높아진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 피죤은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뒤 중국 시장을 개척해왔다. 이 부회장은 “중국에서 피죤은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며 “중국 시장에서의 실적은 향후 피죤의 세계화를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전회사와 공동마케팅 펼친다
물론 현재 피죤이 진출한 미국과 러시아 시장을 더욱 탄탄히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공동마케팅 전략을 활발하게 펼쳐 세계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은 삼성, LG 등 한국 가전회사와 제휴해 세탁기 구매자들에게 샘플을 나눠줘 사용하게 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부친인 이 회장에 대해 물었다. 이 부회장은 “나보다 훨씬 개방적인 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를 배운 것이 나의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6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7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8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
9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