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맛 소박하게 담아내
강릉의 맛 소박하게 담아내
한국음식의 정수는 한정식에서 만날 수 있다. 널따란 교자상에 빼곡하게 차려진 산해진미. 상 차린 사람의 푸짐하고 넉넉한 마음이 한 상 가득하다.
여기에 빨강을 필두로 화려한 오방색이 곳곳을 수놓는다. 멋을 부릴 줄 아는 풍류가 더해졌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어 하나하나 맛을 보면 은은한 장맛이 숨어있다.
오래 묵히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서 나온 깊이다. 그래서 한정식 상차림은 하루아침에 뚝딱 차릴 수 없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니면 친정어머니와 딸의 세대를 이어야 제 맛이 난다.
서로 합심해 제철에 장을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고, 젓갈을 챙겨야 한다. 여기에 또 다른 매력 하나. 한정식은 집집이 지방의 색깔을 담고 있다.
전라도 한정식은 풍성한 젓갈로 ‘쨍’한 맛을 내고, 궁중음식이 더해진 서울 한정식은 심심한 맛이 특징이다. 여행길은 물론 바쁜 출장 중에 지방 한정식집을 꼭 들러보는 것도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가 있어서다. 동해 바다를 끼고 있는 강릉에서 찾아간 ‘초당수라간’.
팔딱팔딱 뛰는 생선횟집을 마다한 게 결코 아쉽지 않은 한정식집이었다. 점심 메뉴로 인기가 최고인 수라간 정식. 따뜻한 숭늉 주전자부터 밥상에 오른다. 주전자 꼭지를 흘러나와 대접에 차오르는 숭늉. 뿌연 탁함이 반갑고 정겹다. 다음에 등장하는 10여 가지 음식. 담음새가 ‘앙증맞다’ ‘깔끔하다’란 단어와 거리가 있다.
‘푸짐하다’ ‘소박하다’가 어울린다. 전채 메뉴로 김치말이 도토리묵 채를 권한다.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이 새콤달콤 매콤한 김치 국물에 푹 빠졌다. 씹을 것도 없이 후루룩 한입에 넣고 나니 입맛이 확 돈다. 전채의 제구실을 한 게다.‘우와~!’ 갑자기 감탄사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자미구이가 사람 수대로 나왔다.
꼬들꼬들하게 말려서 노랗게 익혔다. 그 맛을 안다면 다른 메뉴는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서둘러 한 토막 개인 접시에 담아 살을 발라가며 짭조름한 가자미 맛에 푹 빠진다. 넉넉한 해물전도 바로 부쳐 더 맛난다. 강릉의 명물인 초당손두부 역시 놓칠 수 없는 맛. 두부 토막이 큼지막하고 두툼하다.
지난겨울에 담근 묵은지랑 함께 입에 넣으니 입안이 꽉 찬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문어숙회와 껍질까지 달려있는 돼지보쌈은 강원도의 순박함이 느껴진다. 식사는 청국장(아니면 된장찌개)에 보리비빔밥. 유채나물을 비롯한 여섯 가지 비빔용 나물이 함께 나온다. 입가심은 수정과에 쑥개떡. 한옥을 개조해 고향집 같은 분위기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잠시 누웠으면 좋겠단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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