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수, 슴슴, 시원, 깔끔 4대 냉면 4味

시원한 냉면 한 그릇 간절한 계절이 다가왔다. 특히 평안도 지방의 겨울 별미에서 유래한 평양냉면(이하 냉면)은 여름철 최고의 인기 음식이다.
‘구수한 향이 진동하는 육수, 소면 굵기의 쫄깃한 메밀 면발, 그리고 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냉면의 매력이다. 늦가을에 메밀을 빻아 국수를 뽑고, 초겨울 김치가 익을 무렵의 동치미 국물로 담근 냉면은 태생부터 이런 매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돼지고기·쇠고기 수육이나 만두를 곁들이면 여름철 최고의 외식 아이템이 된다. 현재 서울의 유명 냉면집들은 한국전쟁 이후 이북 출신들이 청계천·을지로 등지에 가게를 내면서 시작됐다.
각자의 조리 비법을 고수하며 전통의 명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현재 2세대 오너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대로 하고 있다” “우리 집은 본래 이랬다”고 강조한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대를 이어 가계의 비법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이 넘쳐난다. 냉면 매니어들은 저마다 서울 시내 3대 냉면집이라는 둥, 7대 냉면집이라는 둥 소위 냉면집 순위 매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냉면은 각자의 기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유명 냉면집의 내력과 조리 과정을 전한다. 그릇에 담긴 냉면이 아니라 주방 문지방 너머로 본 냉면에 관한 정보다.
서울식 평양냉면의 역사 ‘우래옥’

그는 “새벽 4시 주방장이 발로 차서 깨우면 냉큼 일어나 고기 삶을 물을 끓였다”고 전한다. 그는 현재 봉피양의 냉면 주방장으로 있다. 우래옥은 요즘 냉면보다는 불고깃집으로 더 유명하지만 1960∼70년대에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 초반부터 우래옥에서 일한 김지억(77)씨는 “일요일에 창경궁 구경 나온 사람들이 전부 우리 집에서 외식했다”며 “늘어선 줄이 1㎞는 족히 됐을 것”이라고 전한다.
우래옥 냉면 맛은 진한 육수로 대변된다. 커피로 치자면 에스프레소쯤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집 냉면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다른 냉면은 모두 ‘밍밍한 냉면’이 되고 만다. 간혹 쇠고기 맛이 진해 ‘누린내가 난다’는 말을 듣는 것도 같은 연유다. 김지억씨는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른 집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한우 중에서도 양지와 사태만 쓴다”고 강조한다.
냉면 주방장 설동창(42)씨는 “고기 삶은 물에 소금과 간장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대개는 육수를 끓일 때 채소를 넣어 고기 냄새를 제거하기 마련이지만 우래옥은 그렇지 않다. 구수한 맛의 비결이다. 동치미 국물은 쓰지 않는다. ‘꿩고기 육수와 동치미의 조화’라는 평양냉면의 특성과 차이가 있다.
면의 재료는 메밀과 고구마 전분이다. 겨울철 3대 1, 여름철 2대 1 비율로 반죽한다. 최근에는 거칠한 메밀 껍데기를 뺀 미끈한 메밀가루로 면을 뽑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래옥은 이처럼 지난 수십 년 동안 평양냉면의 맛을 주도해 왔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결과다.
덕분에 ‘서울식 평양냉면’의 대표 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우래옥은 현재 여러 개의 분점이 있다. 창업자 장원일(작고)씨의 자녀들이 한 군데씩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을밀대 고집하는 옹고집 냉면 ‘을밀대’김영길(47)씨가 아버지 김인주(2005년 작고)씨의 뒤를 이어 마포구 염리동 한자리에서 40년째 냉면을 내고 있다. 김 사장은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1999년부터 냉면 일을 배웠다.
그러나 본격적 2세 경영이 시작된 2003년, 을밀대는 위기를 맞았다. 월드컵 이후 손님이 많아지자 옥상에 예전보다 더 큰 솥을 걸고 육수를 냈는데, 이때 맛이 변했다.
김 사장은 “솥의 크기가 달라지니 레시피도 달라져야 했다”고 들려줬다. 을밀대는 현재 ‘선대와 다름없는 맛’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을밀대 육수는 슴슴(심심)한 맛이다. 여름철에는 보통 이틀에 한 번 육수를 내는데, 약 1000L 솥에 소 반 마리를 넣고 밤새 끓인다. 고기는 등심·차돌·양지·사태·갈비·사골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 넣는다.
냉면 육수는 모두 부위별 고기의 조화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늘·양파 등 야채를 함께 넣는다. 쇠고기만으로 육수를 조리하는 법은 우래옥과 같다. 구수한 맛이 나도록 만든다는 설정 또한 비슷하다. 비교하자면, 우래옥에 비해 때깔은 말갛고 맛은 더 슴슴하다.

이렇게 낸 육수는 곧바로 땡땡 얼려버린다. 냉동 창고에서 2~3일 보관한 후 다시 음식점 냉장 창고로 옮겨 이틀 해동한다. 그러면 반은 얼고 반은 녹아 있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몽둥이로 깨 살얼음 상태로 그릇에 퍼붓는다.
아버지 김인주씨가 하던 방식 그대로다. 면과 육수의 양 조절 또한 중요하다. 김 사장은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그 둘의 비율이 제대로 돼야 간(입맛)이 딱 맞는다”고 말한다.
을밀대는 40년 동안 유일 점포를 고수하고 있다. 김인주씨 아래 2남2녀가 있지만 가업을 이어받은 이는 장남 김영길씨뿐이다. 다른 유명 냉면집들이 문어발처럼 분점을 내는 추세 속에 을밀대는 오직 한 집뿐인 것이다. 김영길씨는 “아버지는 늘 이 집 하나만 잘하자고 말씀하셨다”며 “앞으로도 을밀대는 분점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면 어르신’의 깊은 손맛 ‘봉피양’봉피양은 벽제갈비에서 2004년 문을 연 냉면 전문점이다. 방이동 본점과 2개의 분점이 있다. 전통의 명가는 아니다. 그러나 50년 넘게 냉면을 내온 김태원씨가 2002년부터 냉면 파트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냉면 명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봉피양 직원들은 그를 ‘냉면 어르신’으로 부른다. 그는 “서울에서 이름 있는 냉면집은 대부분 코치했다”고 할 만큼 냉면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 냉면집 주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평양냉면을 전파했다는 점은 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인정하는 바다.
봉피양 냉면 육수는 ‘잡고기의 조화’에서 나온다. 육수를 내는 솥에는 쇠고기·돼지고기 등뼈·노계(늙은 닭) 등 갖가지 고기 종류가 골고루 들어간다. 김태원씨는 “등뼈는 진한 맛을 낸다”며 “닭은 예전에 썼던 꿩 대신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기를 한 번 삶은 물에 파·무·마늘·생강·양파 등 많은 양념 재료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잡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독특한 점은 육수 10L에 동치미 국물 1L를 섞는다는 점이다. 애초 평양냉면 육수의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 냉면집 중에서 이렇게 철저한 비율로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어내는 집은 봉피양와 남포면옥 정도다. 그러나 동치미 국물은 서울 음식에 가깝다.

봉피양 냉면은 50년 넘게 냉면을 만들어온 김태원씨의 손맛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년 전 한 매체에서 실시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봉피양이 수위를 차지한 것도 김씨 덕분이다. 벽제갈비 본점이 있는 방이동에서 만들어진 육수는 봉피양 방이점·도곡점 두 군데서 쓰인다.
이북식 냉면에 가장 근접한 맛 ‘필동면옥’

그래서 현재 장남은 의정부평양면옥을 이어가고 있고, 두 딸은 서울에서 각각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을 열었다. 필동면옥은 1985년 장녀 홍순자(56)씨가 결혼 후 서울 을지로에 문을 연 곳이다.
현재 필동면옥은 본점보다 더 유명하다. 왜일까? 주말 오후 명동·필동 인근의 성당·교회 주변은 예배를 마친 이북 실향민 출신 신자들로 북적거린다. 평양냉면 전문점은 이들에게 일주일의 안식을 제공했다. 필동면옥이 서울을 대표하는 냉면으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배경일 것이다.
냉면 육수 내는 법은 세 곳 모두 비슷하다. “아버지는 항상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의정부를 포함해 4남매가 하는 냉면집 모두 가게 안에 방앗간이 있지요. 육수 레시피는 예전 방식 그대로고요. 그때도 돼지고기·쇠고기를 함께 삶았어요. 다른 데는 양지 살을 같이 쓴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사태만 써요.” 홍순자씨의 말이다.
메밀은 커피를 로스팅하듯 그날그날 쓸 양만 빻고, 육수 재료로 기름기가 적은 사태 살만을 고집한다. 필동면옥 매니어들의 평가 또한 주인장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물이 깔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육수는 텁텁하지 않고, 간도 삼삼하다. 이는 슴슴한 맛으로 대표되는 정통 평양냉면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홍씨는 “육수 원액에 소금으로 간을 살짝 더하고 물을 조금 붓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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