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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보조공학 통합해 장애 극복

정보기술·보조공학 통합해 장애 극복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휠체어에 앉아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시연 중이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휠체어에 앉아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시연 중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시연하기 위해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있습니다.(Hello. I am at the NIA to demonstrate speech recognition SW.)” 지난 11일 열린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 개소식에서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이 교수가 영어로 말할 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 창에 단어가 그대로 입력됐다.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도 없다. 특수 마우스로 입, 턱 등을 이용해 커서를 움직이고 클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묵 교수는 4년 전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지만 여전히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고 있다.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 AT) 덕분이다. AT는 신체나 감각·지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고 지원하는 기술과 공학을 가리킨다. 휠체어나 안내 지팡이도 AT 분야에 속하지만 주로 컴퓨터 관련 기술과 기기를 뜻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보조공학 기기를 활용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기기를 갖추는 것이 부담일 뿐 아니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이 이용하는 방식 바탕으로 구성이날 한국정보화진흥원은 한국MS와 함께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을 열었다. 체험관은 서울 등촌동의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들어섰다. 2008년 5월 한국MS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2년 만이다. 기존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독서확대기, 음성인식 시스템 컴퓨터 등 장애인을 위한 기기를 누구나 사용해볼 수 있도록 전시해 왔다.

여기에 한국MS가 힘을 보탰다. MS 시애틀 본사에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접근성 랩’을 연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IT와 AT가 통합된 체험관을 제안했다. 접근성 랩은 장애인이 직장에서 업무를 보거나 가정에서 휴식을 취할 때 어떻게 신체장애를 IT와 AT를 활용해 극복하는지 보여주는 체험센터다.

이번 체험관에 적용된 접근성 랩은 한국에 맞게 재구성됐다. 장애를 딛고 일어나 장애인에게 역할 모델이 돼 줄 이상묵 교수와 황병욱 엑스비전테크놀로지 대리 등을 섭외했다. 이 교수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난 장애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흔쾌히 참여했다. 장애인문화진흥회 방귀희 대표도 행사 취지에 동감하며 체험관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

이렇게 탄생한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은 여러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먼저 중증 지체장애인인 이상묵 교수가 연구실과 가정에서 강의 자료를 작성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걸 돕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구성된 AT가 있다. 특수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MS 윈도에서 제공하는 음성인식 시스템을 이용하면 문서, e-메일 작성 등을 할 수 있다.

USB 단자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컴퓨터로 통화, 문자, 그리고 와이파이(Wi-Fi)까지 가능하다. 음성인식 시스템은 영어만 알아듣는다. 한글 음성인식 시스템은 개발 중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맹인을 위한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황병욱 엑스비전테크놀로지 대리를 모델로 한 AT도 있다. 황 대리는 컴퓨터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다른 기술은 책 속지에 있는 보이스아이 심벌을 바코드 리더기에 갖다 대면 몇 초 뒤 음성으로 책 내용을 들려준다. 이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영씨에게 많은 도움이 된 기술이다. 시력이 조금 남은 사람들을 위해 컴퓨터의 화면을 확대해 보여주는 시스템도 시연됐다.

저시력 장애인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소장은 컴퓨터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화면확대 기능을 이용해 자유롭게 문서를 작성하고 인터넷을 이용한다. 독서확대기는 컴퓨터 문서가 아닌 일반 문서나 책을 다룰 때 유용하다. 가정과 직장을 기반으로 한 미국 접근성 랩과 달리 한국은 학교를 포함했다.

학교 교실을 재현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언어·지적 장애 아동이 학습하는 시나리오다. 개소식에서는 김성남 나사렛대학교 재활공학과 교수가 장애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은행, 자판기 이용 등 일상생활을 미리 익힐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시연했다. 이 밖에 노인체험관에서는 IT와 영상기기로 전자정부 서비스나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고 여가를 즐기는 IT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MS의 김 제임스 우 사장은 “전 세계에 장애인을 위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개별 전시가 많지만 실제 한 제품만 원하는 사람은 없다”며 체험관이 특별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이번 체험관에 적용된 접근성 랩은 교사나 부모 등 장애인 보호자들이 어떻게 제품을 활용해야 할지 보여준다”며 “이야기를 엮어 활용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에 지역사회에도 쉽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AT 분야 성장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애인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지금은 휴대전화 등 일반인을 위해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AT가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며 “AT는 정말 쉽고 편하게 만드는 기술로 장애인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험관 내 연구 공간 재현에 적극 협조했던 이상묵 교수는 “컴퓨터는 신이 장애인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장애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을 정보화가 열어줬다”며 AT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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