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사람들- 세상에 없는 ‘골프 제국’ 건설
골프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사람들- 세상에 없는 ‘골프 제국’ 건설
시뮬레이션(스크린) 골프업계 1위인 골프존은 지난해 14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 스크린 골프 인기가 시들해질 것이란 비관론을 비웃듯 2008년보다 45%나 성장했다. 2000년 5명으로 시작한 골프존은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매출 목표는 2010억원. 이미 상반기에 절반이 넘는 1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골프존은 커진 덩치에 걸맞게 국내 골프산업의 지형도까지 뒤흔들고 있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골프존 문화’를 만든다는 목표가 무색하지 않게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스크린 골프를 경험한 사람 수는 지난해까지 13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연간 이용자 수로 따지면 3000만 명. 필드 내장객 수(2500만 명)를 웃도는 수치다.
골프 대중화에 한몫국내 시장 점유율 80%를 넘나드는 골프존은 스크린 골프 대중화에 큰 몫을 했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3차원 그래픽,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 웹 기반의 실시간 네트워크 서비스로 자신의 스코어와 퍼팅 수, 그린 적중률, 페어웨이 적중률 등을 프로 골퍼처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김영찬(65) 골프존 사장은 “2002년 골프의 파생상품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어엿한 스포츠이자 골프의 새로운 재밋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스크린 골프 인구는 골프 저변을 넓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필드에 나가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스크린 골프방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 등으로 필드에 나갈 형편이 되지 않는 20, 30대 젊은 층도 골프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1~2년 사이 스크린 골프방에서 회사 단합대회나 부서 회식을 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한 골프장 CEO는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스크린 골프가 손님을 뺏어가는 경쟁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골프가 여전히 귀족 스포츠라거나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스크린 골프가 중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골프용품 시장도 골프존의 영향권에 있다. 스크린 골프방이 나오면서 클럽과 장갑, 구두, 그리고 골프공 등에 대한 수요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골프존의 전국 스크린 수만 현재 1만3000개다. 올해 말이면 1만5000개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골프용품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골프용품 시장도 위축됐다가 스크린 골프방 덕에 숨통을 텄다”고 말했다.
고용 창출도 무시하지 못할 대목이다. 시뮬레이터 개발·제조·판매와 스크린 골프방 서비스 등으로 3만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이 덕에 김영찬 사장은 지난해 고용 우수 기업으로 뽑혀 노동부 장관상을 받았다.
다만 스크린 골프방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골프방 사업자가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뮬레이션골프문화협의회 발기인 대회도 열었다. 스크린 골프방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영찬 사장은 “대개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내는 시점을 16개월 정도로 보지만 어느 사업에서든 모든 사람이 돈을 벌진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그러나 “새로운 제품과 이벤트로 분위기를 띄우는 한편 (시뮬레이터) 물량도 적절히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방 사업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오는 건 이 사업이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골프존 측에서는 하드웨어의 포화 시기는 2011년 이후로 보고 있다. 아직은 스크린 골프 인구가 늘어날 여지가 많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그 후는? 김영찬 사장은 “포화상태도 반갑다”고 말한다. 골프존은 단순히 시뮬레이터 개발 회사가 아니란 뜻에서다.
김 사장은 “골프존은 골프·IT(정보기술)·문화가 어우러진 콘텐트와 네트워크 회사”라고 강조한다. 골프존은 이미 기술 개발 벤처기업에서 문화 콘텐트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시뮬레이터란 하드웨어에만 목을 맸다면 돈 있고 기술 좋은 대기업에 밀려 망하기 십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 제조업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콘텐트와 네트워크 회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 시뮬레이터가촘촘히 깔릴수록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늘어난다고 본다.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예로 스크린 골프방 이용자가 파3홀에서 미리 1만원을 걸고 홀인원이나 파온을 했을 때 상품을 주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전국의 이용자가 건 도전비는 스크린 골프방 사업자와 나눌 수 있다. 필요한 경품은 광고로 마련할 수 있다. 홀이 바뀌는 도중 나오는 광고의 주목도는 꽤 높다. 특히 골퍼라는 타깃이 분명한 광고에 효과적이다.
어느 자리에서건 좋은 아이디어나 조언을 접하면 꼼꼼히 메모하는 김 사장은 해보고 싶은 사업이 무궁무진하다. 골프존에서는 퍼터와 골프 게임 등을 개발하고 있다. 단 기존 경쟁자와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 고민 중이다. 내년 4월에는 G-투어(글로벌 골프존 투어)도 개최할 예정이다. PGA나 LPGA투어를 능가하는 ‘스크린 투어’다. 방송 중계료 등으로 거액의 상금을 걸면 유명 선수도 부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대회를 열다 보면 세계 구석구석에 스크린 골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시장 포화는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기회기존 스크린 골프방에 그린과 그린 주변은 실제 필드와 똑같이 만들어 넣은 새로운 개념의 공간도 구상하고 있다. 두바이의 실내 스키장처럼 스키린 골프방을 확대한 것이다. 시뮬레이터뿐만 아니라 퍼터 시뮬레이터, 게임기, 레슨 장비, 스윙 분석기 등을 깔아 네트워크로 묶는 아이디어도 있다. 이런 제품을 얼마나 많이 모아 두느냐에 따라 스크린 플라자, 스크린 파크, 스크린 랜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이런 사업을 묶어 새로운 ‘골프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품고 있다.
김 사장은 올바른 골프 문화 확산에도 관심이 많다. 스크린 골프의 영향으로 골프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골프 룰과 에티켓 홍보를 강화한다. 또 유소연 프로를 모델로 라운드 전 스트레칭 동작을 모은 동영상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법령 정비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스크린 골프가 새로운 산업이다 보니 설치 기준 등이 기존 법령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30년 전 광부로 독일에 갈 생각을 했던 김 사장이 은퇴할 나이인 50대 중반에 시작한 사업이 어느덧 한국의 골프산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 성에 차지 않았을까. 김 사장은 새로운 사업 생각에 가슴이 뛴다. 그가 그리는 골프 제국을 완성하려면 여전히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글 남승률 기자, 사진 정치호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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