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산불에 농산물 펀드 ‘활활’
러시아 산불에 농산물 펀드 ‘활활’
올해 하반기 들어 국제 곡물 값이 대폭 올랐다. 특히 밀은 7월 이후 42% 상승해 8월 5일(현지시간) CBOT(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밀 값이 부셸(27.2㎏)당 8.155달러를 기록했다.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8월 초 밀 값 급등과 관련해 “앞으로 몇 년 동안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곡물 값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곡물 값 내년 상반기까지 오른다곡물 공급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선진국보다 일찍 경기를 회복한 신흥국의 곡물 소비가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곡물뿐 아니라 육류 소비가 늘어 사료용으로 더 많은 곡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 절상도 곡물 값 상승 이유다. 하나대투증권 이미용 펀드 담당 연구원은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면 구매력이 커지고 상품 수입량이 늘어나 곡물 값이 오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수는 국제유가다. 유가가 오르면 대체에너지 수요가 늘어 연료로 쓰이는 옥수수(바이오에탄올)와 대두(바이오디젤) 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화년 수석연구원은 2009년부터 10년 동안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연평균 7.1%, 바이오디젤 생산이 9.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달러도 곡물 값을 좌우지하는 요소다. 유럽이 경제 체력을 회복하고 미국이 유동성을 더 공급하면 달러가 약세를 보여 곡물이 주목 받게 된다. 우리투자증권 장춘하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회복 속도가 더디고 더블 딥(이중침체) 우려가 있어 주식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다”며 “이에 원유나 금, 비철금속뿐 아니라 농산물에까지 투기 자금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김화년 연구원은 수요 증가, 공급 감소, 투기적 자금 유입을 이유로 국제 곡물 가격이 내년 상반기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용 연구원 역시 곡물의 소비량 증가 속도가 생산량 감소 속도보다 빠른 추세에 따라 추가 가격 상승을 점쳤다. 신영증권 오광영 펀드 담당 연구위원은 “밀의 경우 호주·미국·아르헨티나 등 주요 밀 생산국의 작황이 나쁘지 않아 올가을을 지나 가격 상승이 해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10일 밀 값 상승이 가라앉으면 옥수수 값이 급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지난해 풍년이 들어 세계적으로 재고량이 많기 때문이다. 값이 급등한 밀 역시 2008년 초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보다 재고율이 8%포인트가량 더 높다. 김화년 연구원은 “가격 상승이 생활에 불편함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며 현재 상황을 ‘마일드 애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곡물 값 상승 전망에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 바로 농산물 펀드 투자자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주요 농산물 펀드의 3개월 수익률은 10%를 웃돈다. ‘우리애그리컬처인덱스’ 펀드는 3개월 수익률 17.7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유형 평균 수익률은 -1.21%다. 에너지 섹터에 투자하는 펀드는 -5.14%를 기록했다.
파생상품형, 가격 변동에 민감지금이라도 농산물 펀드라는 밭에 씨를 뿌려야 할까. 먼저 수확할 ‘농작물’에 대해 알아보자. 농산물 펀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농산물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 농산물 펀드와 농산물 관련 선물이나 지수에 투자하는 파생상품형 농산물 펀드다. 농산물 ETF(상장지수펀드)도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설정 규모는 주식형보다 파생상품형이 더 크다. 오광영 연구위원은 “파생상품형은 가격 상승이 수익률에 곧바로 반영되고 주식형은 대체로 가격 상승에 선행해 파생상품형이 가격 변화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미용 연구원은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포트폴리오에서 헤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파생상품형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는 파생상품형이 주식형보다 좋고, 2년 이상 수익률은 주식형이 더 높다.
파생상품형은 벤치마크로 삼는 지수나 대상이 펀드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가 다 다르다. 주식형 역시 해당 주식시장과 투자 종목이 다양하다. 환 헤지 여부도 펀드마다 차이가 있다. 같은 밀이라도 어디서 거래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오광영 연구위원은 “파생상품형은 벤치마크로 삼는 지수와 선물이 무엇인지, 주식형은 사업 내용과 리스크를 알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주식형은 편입 종목이 주로 선진국에 포함되므로 기존 해외펀드와 중복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파생상품형은 월물 간 스프레드(가격 차이) 때문에 가격이 50% 올라도 수익률은 30%만 오르는 등 노이즈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 가격 차이를 꾸준히 살펴야 한다.
변동성이 큰 것 역시 농산물 펀드에 투자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다. 농산물 펀드의 2년 수익률을 보면 -33%에 달하는 상품도 있다. 오광영 연구위원은 “추가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위성 펀드로 활용하는 것이 알맞다”며 전체 포트폴리오의 5% 이내에서 투자할 것을 권했다.
곡물 값은 물가 상승과 연동하기 때문에 농산물 펀드는 대표적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다. 장춘하 연구원은 “2008년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지수는 꾸준히 상승해 왔지만 곡물 값은 최근의 급등에도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여 두 지수 간 차이가 크다”며 “곡물 값이 추가 상승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기존 농산물 펀드 투자자는 그대로 보유해도 좋다는 얘기다.
또 농산물 펀드는 주식과 상관관계가 낮기 때문에 분산투자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장 연구원은 “아직 농산물 펀드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주식형 펀드 투자 비중이 큰 투자자는 위험 분산 수단으로, 채권형 펀드 투자 비중이 큰 투자자는 인플레이션 헤지 목적으로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오광영 연구위원은 “이번 곡물 값 급등이 6개월~1년 정도 이어질 단기 호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투자를 결정할 절대적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 것도 부담이다. 오 연구위원은 “3년 이상 장기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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