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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로비스트 합법화 왜 안 되나?

WHY? 로비스트 합법화 왜 안 되나?

▎11월 5일 청원경찰법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이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11월 5일 청원경찰법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이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입법 로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의원이 조심한다. 그런데 그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특정 이익단체가 국회 의원회관 휴게실에서 보좌관을 만나 입법청원 식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이 로비인가? 그리고 혹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을 경우 고마운 마음에 단체 회원들이 소액으로 후원금을 보내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불법 로비인가?”

전직(17대) 국회의원의 얘기다. 이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청목회 사건도 그런 부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입법과 관련해 로비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모 업체가 법 개정과 관련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여비를 하라며 건넸는데 거절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청목회 사건으로 불거진 입법 로비입법 로비는 비단 국회의원을 상대로만 하지는 않는다. 지난 국회 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있던 A보좌관은 “모 업체로부터 수도권에 있는 시가 수십억원 상당의 건물을 뇌물로 제안 받았다”고 털어놨다. A보좌관은 “당시 해당 업체에 매우 중요한 법 개정을 앞두고 있었다”며 “이를 거절하고 청와대에 보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보좌관들이 실무를 많이 하다 보니 보좌관을 상대로 한 불법 로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최근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의 입법 로비 의혹 수사(이하 청목회 사건)로 입법부에 대한 불법 로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청목회 사건은 청원경찰의 정년을 늘리고 보수를 올리는 내용으로 개정된 청원경찰법 입법 과정에서 청목회가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하고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여야는 모두 ‘소액 후원금까지 어떻게 확인하느냐”며 반발하지만 검찰과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는 분위기다. 검찰은 이미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 33명의 후원 계좌를 추적하고 의원 12명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게 수사했다.

입법을 둘러싼 불법 로비 의혹 사건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1998년 타이거풀스가 체육복표 독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벌인 로비 사건이 대표적이다. 민간기업이 국회에 전방위 입법 로비를 한 대표적 사례로 남은 이 사건은 로비가 벌어진 3년 뒤에나 알려지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남겼다. 입법 로비 말고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린다 김 로비 사건, 오포개발 비리 사건, 바다이야기 불법 로비 사건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의혹도 부지기수다. 한 국회 보좌관은 “이해관계가 다른 업체나 이익단체 간에 서로 로비를 했다며 고발하며 싸우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불법 로비 사건이 터지면 이곳저곳에서 제기되는 대안이 있다. 바로 ‘로비스트 합법화’다. 이번에도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조짐이다. 하지만 로비스트 합법화는 공론화될 때마다 논란만 일으키고 이내 사라졌다. 왜일까?

17대 국회 때는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됐다. 이승희 당시 민주당 의원과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로비활동 공개 및 로비스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다. 두 법안은 모두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로비 활동을 종식하고 국민 여론을 정확히 국회 및 행정부에 전달하기 위한 건전하고 투명한 로비활동을 장려할 목적”으로 발의됐다.

▎2006년 바다이야기 파문이 일어난 후 ‘로비스트와 브로커, 경계선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

▎2006년 바다이야기 파문이 일어난 후 ‘로비스트와 브로커, 경계선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

로비스트 합법화가 제기될 때마다 찬반 논란은 거셌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불법 로비문화 개선,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균등한 로비 기회 보장, 다양한 정보 수집을 통한 합리적 정책 결정 등을 근거로 관련 법 제정에 손을 들었다. 상당한 지지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대개 ‘우리나라의 풍토나 수준에서는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다. 두 건의 법안을 검토한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크게 네 가지 반대 논리가 나온다.

우선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화적 사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비스트 제도가 법제화된 미국이나 캐나다와 달리 우리나라의 로비 활동은 개인적 인맥과 친분을 이용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한다고 해서 사적 관계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로비를 제도화해도 불법 로비가 판 칠 것이라는 논리인데, 불법 로비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해 모든 로비 활동을 불법적 상태로 두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 채…또 다른 반대 이유는 로비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약한 이익집단이나 단체, 개인은 유능한 로비스트를 고용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국회 관계자는 “대부분 로비를 하는 경우 이익단체 간 대립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결국 돈싸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이는 더 많은 액수로 로비하는 쪽의 편을 들어주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이는 관련 시민단체가 소외계층를 대변하거나 경제력 있는 이익집단의 과도한 로비 활동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로비력의 차이는 관련 제도가 없는 현재도 발생하는 문제다.

결과적으로 법안 검토 보고서는 “반대 의견이 제시하는 논거도 설득력이 있지만 현재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로비 제도를 법제화해 로비 활동을 공개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자못 크다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법안 찬성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가 검토된 적도 있다. 2006년 말 국가청렴위원회(현 국가권익위원회)는 로비스트 합법화를 추진했다. 당시 청렴위는 한국행정학회에 연구용역을 맡겼고 연말에 보고서가 작성됐다. 하지만 이 보고서 내용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법 취지는 로비건, 컨설팅이건, 브로커든 어떤 이름을 갖다 붙여도 중간매개 역할은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우리 국민이 제3자를 통한 청원권 행사를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밝힌다. 청원권 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변호사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으로 로비행위가 사실상 금지돼 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로비 규제법을 통해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로비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근본적 쟁점”이라고 밝히면서 이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모색한다.하지만 이 보고서 역시 사실상 사장됐다.

청렴위에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모 서기관은 “결과 보고서는 로비스트를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나왔고 공청회도 열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성숙하지 못했다”며 “역시 음성적 방법을 차단할 명확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추진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이뤄진 설문조사가 이 사안에 대한 여론을 드러냈다. 보고서 용역을 맡은 행정학회가 일반인 1000명, 공무원 500명,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로비활동 법제화에 대해선 일반 국민 88%, 공무원 78%, 전문가 83%가 찬성했다. 로비활동 공개가 부정부패를 막는 효과가 있을까라는 설문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동의했다.

이 설문 결과는 그러나 당시에도, 그 이후로도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만약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를 내일 실시하면 결과가 반대일까? 재논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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