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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여주인공은 이제 그만!

나약한 여주인공은 이제 그만!

KATIE CALAUTTI 기자

새로 개봉한 액션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Megamind)’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외계인과 남자다. 잠깐만, 여주인공 록산느 리치(티나 페이의 목소리 연기)도 있었다. 톡톡 튀는 뉴스 기자 록산느는 영화 속에서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남자들이 하는 일의 중계와 인질로 납치되는 역할이다.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서서 브래드 피트가 구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록산느를 보며 드는 생각 하나. 도대체 아이들 영화에서 강인한 여성상은 언제나 등장할까?

수십 년 동안, 만화나 가족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병풍처럼 서 있다가 마초형 남자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거나 배를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바비 인형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뉴스위크가 주최하는 제 3회 여성과 리더십 회의를 맞아 영화배우 지나 데이비스가 11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서 성에 따라붙는 고정관념을 줄이고자 설립한 ‘매체 속 여성’ 연구소의 최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아동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 세 명당 여자 주인공이 단 한 명 등장했다. 여성 등장인물의 25%는 몸에 꼭 맞는 섹시한 의상을 입었고(허벅지와 가슴 위쪽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분은 주로 공주였으며, 사랑을 찾는 일이 인생의 최종 목표였다. 이제 할리우드 최악의 여주인공들을 만나 보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백설공주가 불명예스러운 전통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백설공주는 동화 속 여주인공과 관련된 모든 고정관념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비율의 몸매를 지녔을 뿐 아니라, 사랑을 찾는 일 말고는 인생에 어떤 야망도 없다. 남성들 덕분에 목숨을 이어나가다가 결국에는 백마 탄 왕자님에게 구출된다. 백설공주를 제외하고 그나마 주연급에 속하는 유일한 여성은 바로 사악한 여왕인데, 백설공주를 없애려고 혈안이 된 인물이다. 왜 그렇게 백설공주를 미워할까? ‘백설공주가 너무 예뻐서’다. 그렇다면 백설공주 같은 젊은 여자가 할 일은 도대체 뭘까? 키가 한참 모자라고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곱 총각의 뒤를 쫓아다니며 집안 정리를 해주는 일이다.



알라딘(1992)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디즈니 영화 최초의 유색인종 공주라는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는 다른 수많은 퇴보 속에 빛을 잃는다. 자스민의 몸매 강조, 공주라는 지위, 배꼽을 드러낸 의상,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는 모습은 가족영화 속에 그려진 왜곡된 여성상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아버지 술탄이 왕명까지 내려 결혼을 금지한 평민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는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에게 반항한답시고 입을 삐죽 내밀거나 끊임없이 우는 소리를 해대고 가출을 시도한다. 이는 떼를 쓰는 다섯 살 아이의 행동이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은 아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기존 누아르 영화 형식을 차용해 전혀 새로운 관객에게 선보였다는 점에서는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노래하는 요부’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만 지나치게 집착했다. 누아르 고전 속 여주인공 바바라 스탠윅, 베로니카 레이크, 라나 터너 등의 팜므 파탈을 참고해 만든 듯한 등장인물 ‘제시카 래빗’은 앞서 배우들이 연기한 영리하고 수완 좋은 요부가 아닌, 주체성이 결여된 주변 인물로 전락한다. 제시카가 처음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한번 살펴보자. 남성이 대부분인 나이트클럽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세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요염하게 춤을 추고 유혹하듯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드레스는 그녀의 섹시하고 (전략적으로 강조된) 굴곡 있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다. 유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몸매(제시카처럼 얇은 개미 허리로 그렇게 풍만한 가슴을 지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외로 치더라도 바람기 다분하면서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영화의 주요 갈등을 촉발하는 매개체이면서도 섹시함을 빼면 아무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적어도 우린 제시카 래빗을 누가 모함했는지 안다. 바로 제작사의 남자 간부들이다.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미아 서모폴리스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괴짜 소녀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는 한 나라의 여왕이었다! 미아는 자연스럽게 공주가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공주라면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점이다. 공주임을 알게 된 미아는 이미지 대변신(안타깝게도 성격은 오히려 나빠진다)을 하고, 몰라보게 예뻐진 미아는 미용실에서 외모를 가꾸기 전 자신을 왕무시했던 남자에게 키스까지 받는다.



아이스 에이지(2002)구석기 시대 포유류 동물의 모험을 다룬 이 영화에는 ‘빙하시대 영웅(heroes는 남자만을 지칭)’이라는 슬로건이 붙는다. 영화 내내 암컷은 별다른 역할이 없다는 점에서 이 슬로건은 영화를 아주 잘 표현한 말이 됐다. 중간중간 나무늘보 두 마리가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여자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배경이 선사시대라고 해서 등장인물까지 선사시대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스쿠비두(2002)프레디와 섀기, 스쿠비와 어울려 다니는 두 명의 여성은 할리우드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붉은 머리 다프네는 멍청한 미인, 갈색 머리 벨마는 똑똑한 추녀다. 다프네는 날랜 몸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행동파지만,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임무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반면, 무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들을 구해내는 사람은 항상 똑똑한 벨마다. 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TV 만화를 리메이크한 이 액션 영화는 여성 캐릭터에 현대적 색깔을 입혀 전통적 여성상을 한 단계 끌어올려도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수준에 머문다. 벨마로 캐스팅된 매력적 여배우 린다 카델리니는 일부러 못 생긴 분장까지 했다. 예쁘면서 똑똑하기까지 한 여자는 귀신이나 좀비보다 무서운 모양이다.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2003)2002년 개봉한 ‘다이 어나더 데이’를 보지 못한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들을 겨냥해 코디 뱅크스라는 새로운 주인공이 나와 제임스 본드의 줄거리를 아동 관람이 가능한 영화로 만든다. 덕분에 액션 영웅은 다 남성이고, 그 영웅의 여성 파트너는 금발 미인이어야만 하며, 영웅의 상관은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으로 항상 몸에 딱 맞는 밝은 색상의 바지 정장만 입는다는 고정관념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지니게 됐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닐 게이먼의 2002년 단편소설 ‘코렐라인’은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기심 많고 대담하면서 영리한 코렐라인 존스는 소설에서 당당하고 새로운 여주인공상을 구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렐라인이 겪는 모험의 절정에서 영화는 내용을 바꿔버린다. 책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우리의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지혜로 위기에서 탈출하지만, 영화에서는 집주인의 손자 ‘위비’가 자전거를 타고(자전거가 백마의 현대식 버전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나타나 그녀를 구한다. 아니 처음부터 아무 문제 없었던 스토리에 굳이 남자를 넣어 해결한 까닭은 뭔가?



탱글드(2010)미국에서 11월 말 개봉되는 디즈니 3D 애니메이션 ‘탱글드’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멋진 영화를 만들 기회는 날아가버리고 여주인공은 기존의 라푼젤 동화보다 더 무력하기만 하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길게 붙임 머리를 해도 불가능한 금발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라푼젤은 오직 남자를 얻으려고 갇혀 있던 탑에서 나온다. 2009년 개봉한 ‘공주와 개구리’처럼 구태의연한 옛날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과감한 시도를 해도 좋지 않았을까? 라푼젤의 머리가 금발 대신 붉은 색, 혹은 갈색 곱슬머리였어도 좋았겠다. 긴 머리를 싹둑 잘라서 자선단체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에 기부하는 스토리라면 더욱 좋고.



메가마인드 (2010)여자라고 초절정 악당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수퍼 악당 메가마인드와 영웅 메트로맨의 활약을 취재하던 기자 록산느 리치(전형적 여주인공처럼 주변 인물로 전락한다)는 메가마인드에게 납치되어 인질이 된다(‘위험에 빠진 미녀’는 이제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나?). 록산느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맨조차 어느 순간에는 영웅적 면모를 발휘하는데, 유독 록산느만은 시종일관 무력한 모습이다.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부차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록산느. 정말 소녀들이 이런 모습으로 성장하길 바라는가?

번역·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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