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또 다른 자기 표현
문신, 또 다른 자기 표현
나타샤 카이(27)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 번이나 딴 미국 여자 축구 선수다. 하지만 그녀의 신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리가 아니라 팔이다. 카이의 팔은 폴리네시아 지역의 특색이 물씬 느껴지는 문신으로 뒤덮였다. 그녀의 고향 하와이를 대표하는 상징과 꽃들이 대부분이다. “ 그냥 심심풀이로 새겨봤다”고 카이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무료할 때 쇼핑을 하지만 난 할 일이 없을 때 문신 전문점에 간다.” 카이는 2008년 9월 문신 전문가 캣 본 D가 운영하는 로스앤젤레스의 문신점을 찾았다. 본 D는 신저 ‘문신 연대기(The Tattoo Chronicles)’에 이렇게 썼다. “나타샤는 신의 손을 그리고 그 안에 ‘믿는다(Believe)’는 뜻의 한자어[믿을 신(信)]를 새겨 달라고 했다. 그녀는 ‘믿는다’는 말이 올림픽에서 긍정적인 자기암시의 수단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팀원들이 서로를 믿으면 멋진 일이 일어나죠!’”
20년 전만 해도 문신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무엇을 상징했다.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가수 스티븐 타일러, 셰어 등을 생각해 보라.) 문신이 새겨진 그들의 팔은 반항적인 행동과 방랑생활, 폭주족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문신까지도 주류 사회로 파고들었다. 힐러리 더프, 알리사 밀라노, 제시카 알바, 하이디 클럼 같은 반듯한 이미지의 유명인사들도 몸에 새긴 문신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정도가 됐다. 최근엔 비자카드 광고까지 문신을 소재로 삼을 만큼(몸에 문신을 새기는 도중 돈이 모자라 곤경에 처했을 때 비자카드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 문신은 미국 사회에 널리 퍼졌다. TLC 방송의 문신 리얼리티쇼 ‘LA 잉크(LA Ink)’에도 출연하는 본 D는 이렇게 말했다. “문신의 인기가 확실히 높아졌다. 문신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많다. 예전엔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일이다.”
카이가 취미삼아 문신을 새기게 된 배경에는 본 D[그녀는 14세 때 생애 최초의 문신(당시 남자 친구 제임스의 머릿글자 ‘J’)을 새겼다]의 영향도 있었다. 요즘 미국 젊은이 중엔 카이처럼 문신을 새긴 사람이 꽤 많다. 퓨 리서치 센터의 한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중 문신을 새긴 사람은 15%에 불과한 반면 그들의 자식 세대인 밀레니엄 세대(18~29세)에선 그 비율이 38%에 이르렀다. 미국 사회에 문신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된 데는 대중문화의 역할이 컸다. 본 D의 말을 들어 보자.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출연하는 문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문신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 듯하다.” 그녀는 유명인사들에게 문신을 새겨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팬에게 유명인사의 이미지를 새겨주기도 한다. “마이클 잭슨과 파라 포세트가 사망했을 때는 그들의 초상화를 새겨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건강학 교수 미르나 암스트롱은 1991년 154명의 직장여성을 대상으로 문신 연구를 했다. 당시에는 응답자 과반수가 가슴이나 사타구니, 넓적 다리 위쪽 등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에 문신을 새겼다고 답했다. “문신을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암스트롱은 말했다. “그들은 문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두려움이 거의 사라졌다. 유명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되는 미국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각종 웹사이트에서 앤절리나 졸리의 문신에 얽힌 사연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한다.
메간 폭스는 오른쪽 어깨에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의 대사 일부[“We will laugh at gilded butterflies(우린 모두 겉만 번지르르한 경박한 여자를 비웃게 될 것이다)”]를 새겨 넣었다. 또 스칼렛 요한슨은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는 의미에서 왼쪽 팔뚝에 일출 광경을 새겼다. 피넬로피 크루즈는 발목에 ‘883’이라는 숫자를 문신한 이유를 아직 털어놓지 않았다. “드루 베리모어의 데이지 꽃 문신은 문신의 유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 D는 말했다. “꽃 문양은 다른 어떤 문신보다 여성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든다.”
문신을 보는 인식 변화는 TV에서도 드러난다. 1984년 시트콤 ‘세 친구(Three’s Company)’에서 잭 트리퍼는 술에 취해 엉덩이에 문신을 새긴 채 집에 돌아온다. 그는 술이 깨자마자 문신을 지우려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1990년대 TV 시리즈에선 문신을 새긴 등장인물들[‘후즈 더 보스(Who’s the Boss)’토니와 ‘풀 하우스(Full House)’의 엉클 제시]이 험악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시트콤 ‘프렌즈(Friends)’에선 레이철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엉덩이에 하트 모양의 문신을 새긴다. 반면 ‘로스트(Lost)’와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 등 최근의 드라마 시리즈에선 문신이 복잡한 플롯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저지 쇼어(The Jersey Shore)’ ‘진짜 주부들(The Real Housewives)’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문신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등 국제적 베스트셀러 책 제목에 사용된 예도 많다. 또 2007년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우승자 조딘 스파크스의 한 히트곡에는 “문신처럼 언제나 너와 함께 하겠어(Just like a tattoo, I’ll always have you)”라는 가사가 나온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최근 우승자 리 드와이즈는 팔에 4개의 문신을 새겼다. 드와즈의 설명을 들어 보자. “하나는 셸 실버스타인의 시를 묘사한 그림이고, 하나는 시카고의 시기(市旗)다. 또 하나는 캣 스티븐스의 노래 가사고 다른 하나는 존 레넌의 노래 가사다.” 시청자 대다수가 기독교도로 참가자의 생활방식을 그들의 목소리만큼이나 중요하게 보는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그의 문신이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텍사스 공대의 사회학 교수 제롬 카치는 “대학생들 중에 종교적인 내용의 문신을 새기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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