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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루이뷔통이 온다 명품 숍들이 떤다

[르포] 루이뷔통이 온다 명품 숍들이 떤다

인천국제공항이 시끄럽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입점을 둘러싸고서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한 치 양보 없이 전쟁을 벌이는 곳, 인천공항 면세점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을 찾은 2월 10일, 면세점 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상업영업팀 정필주 차장은 자리에 없었다. 다음날 있을 공판을 준비하느라 인천지방법원에 갔다고 했다. 롯데가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법원에 ‘신라 면세점의 루이뷔통 입점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2008년 신라가 인천공항 면세 사업자로 선정된 후 두 회사는 자존심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뤄 왔다. 특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루이뷔통 유치전을 벌이면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접전 끝에 지난해 11월 이부진 사장이 루이뷔통과 손잡는 데 성공했고, 올 6월 입점을 앞둔 가운데 롯데가 반발에 나선 것.

인천공항 관계자는 “현재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진행됐고 법원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구체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3월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벌전의 중심에 있는 루이뷔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열어 16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다. 세계 57개국에 45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매출이 9조원, 브랜드 가치는 198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명품 브랜드 중 단연 최고다.



터미널 정중앙에 최대 규모로 입점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이뷔통이 공항 면세점에 입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루이뷔통의 모기업인 LVMH 측은 “좁고 혼잡스럽다”는 이유로 공항 입점을 기피해 왔다. 쉽게 말하면 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지난해 4월 인천공항 면세점을 방문한 뒤 입점을 결정했다. 당시 이부진 사장이 그를 만나 설득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숱한 화제를 뿌린 루이뷔통 인천공항 매장은 어느 자리에, 어떤 컨셉트로 개점하게 될까. 임시 출입증을 받고 직원 전용 통로로 공항 여객터미널 3층 면세 지역에 들어섰다. 곧바로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뒤쪽에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큼지막하게 써 붙인 ‘28’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탑승구 28번 앞에 있는 북 스토어. 몇몇 승객이 책이나 잡지를 고르고 있었다. 이곳이 오는 6월 루이뷔통이 입점할 예정지다.

루이뷔통은 이 서점과 바로 옆 패션·액세서리 매장(신라 사업장)을 합쳐 550㎡(약 166평) 크기로 점포를 연다. 인천공항 면세점 중 가장 넓다. 기존 명품 매장(150㎡, 약 45평)의 4배 가까운 넓이다.

루이뷔통이 들어올 자리 바로 앞에 샤넬과 에르메스 매장이 보인다. 그 옆으로 불가리, 코치, 프라다, 구찌, 펜디, 디올, 페라가모가 줄을 잇는다. 모두 신라 면세점 사업장이다. 공항 관계자는 “다른 브랜드들과 명품 거리를 조성해 고객 유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동·서 라인, 그리고 탑승동으로 나뉜다. 여객 동선과 항공사 주둔지 등에 따라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게 매장을 디자인했다. 주로 동쪽으로 롯데 면세점이, 서쪽으로 신라 면세점이 배치돼 자웅을 겨룬다. 신라는 탑승동과 탑승구 중앙의 사업권을 갖고 있다.

터미널 메인 통로에는 양쪽에 뿔처럼 뻗어 있는 탑승구가 있다. 이곳의 이름은 ‘엔틀러’. 사슴 뿔이라는 뜻이다. 엔틀러와 터미널 메인 통로가 삼거리를 이루는 곳이 이른바 ‘A급’ 상권이다. 동·서쪽 모두 엔틀러에서 나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류·담배 매장이 있다. 삼거리를 이루는 코너는 샤넬, 구찌, 펜디 같은 명품 매장 자리다. 코너에 있어 일자로 있는 매장보다 넓고 눈에 잘 띄었다. 루이뷔통은 양 엔틀러 중앙에 입점하게 된다. 이곳은 탑승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을 앞두고 명품 브랜드 사이에선 ‘전운’이 감도는 듯했다. 매장 디스플레이 노하우가 유출될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 매니저들은 어떤 질문에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한 매장이 규모를 확장할 공식 계획은 없다”며 “다만 신라 면세점이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 루이뷔통 입점에 따른 문제를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루이뷔통 매장은 무엇보다 이부진 사장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최근 부쩍 면세점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국제공항 ‘윈-윈’ 기대전무후무한 입점 시나리오를 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천공항 역시 ‘루이뷔통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 루이뷔통 입점을 계기로 ‘명품 이미지’를 더해 경쟁 공항을 따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이채욱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언론에 공식 발표하기 전부터 사석에서 루이뷔통 입점을 자랑했다고 한다. 아르노 회장 역시 “인천공항은 아름답고 유동 인구가 많으며 쇼핑이 편리한 곳”이라고 입점 이유를 설명했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루이뷔통은 인천공항 입점 후 최소 2년 동안 전 세계 어느 공항에도 입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만큼 인천공항을 ‘대접’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LVMH의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다. LVMH는 전체 매출의 33%를 아시아 시장에서 올린다. 인천공항 관계자가 “한국을 찾는 중국·일본인뿐 아니라 홍콩·싱가포르·베이징 공항을 찾는 쇼핑객도 유혹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천공항의 국제선 출발 여객 1인당 구매 금액은 74달러(2010년 상반기 기준, 현재 환율로 8만2000원)에 이른다. 2위인 두바이공항(56달러)보다 20달러 가까이 많다. 인천공항처럼 면세점에 다양한 명품 매장이 있는 홍콩 첵랍콕 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비교해도 전체 매출이 월등히 앞선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쾌적한 쇼핑 환경과 다양한 상품 구색, 중국어 통역 서비스 같은 현지화 전략 등이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루이뷔통 유치로 프리미엄까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학회가 추정한 루이뷔통 인천공항 입점 시 연 매출은 972억~1093억원이다. 인천공항 측은 루이뷔통 입점 이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 영국 런던의 히스로공항에 이어 세계 3위인 인천공항의 면세점 전체 매출이 세계 1위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공항의 상업시설 브랜드인 ‘에어스타 애비뉴’를 해외에 수출하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브랜드 전문가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은 “루이뷔통은 명품 중 명품이라는 인식이 짙다”며 “세계 최초의 루이뷔통 입점으로 인천공항은 서비스뿐 아니라 ‘유통·브랜드 파워’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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