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한나라호, 왜?
삐걱대는 한나라호, 왜?
“이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
중립성향의 중진인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영등포을·3선)은 현재 여당을 이렇게 진단했다. 현 지도부로 내년 총선에 나서면 당이 껍데기만 남는다는 얘기다.
권 의원은 “변화와 혁신이 없이는 안 된다”며 “각자 지역구에서 (민심을 돌리려고) 뛰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당의 전면적인 혁신과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당 지도부 교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수도권 의원 중심으로 ‘조기전대론’ 확산요즘 한나라당에는 조기전대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꽤 늘어났다. 4선인 남경필 의원이 공개적으로 ‘보수혁신운동’을 주장하면서 그 불을 댕겼다.
남 의원은 최근 한 강연에서 “한나라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구조적이며 규모는 쓰나미급”이라며 ▶진짜보수의 가치 확립 ▶총체적 불안에 직면한 개개인 삶의 문제 직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제시 ▶자율적인 개개인 삶을 보장하는 대한민국 건설을 주장했다.
남 의원은 “내 주장은 길게 봐선 보수집권플랜의 일부이자, 단기적으로는 보수의 중심인 한나라당부터 혁신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당 혁신론에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초선의원들이 가장 먼저 호응했다.
근본적인 위기감 때문이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의원들이 체감하는 민심이반이 그 근거다. 수도권 의원들에겐 “안상수 대표를 당의 얼굴로 삼아 총선을 치를 수 없다. 특히 수도권 민심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문제의식이 퍼져있다.
“요즘 서울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서울(48개 지역구 중)에서 15곳이나 (당선) 될까 말까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서울 양천을에서 당선돼 화제였던 김용태 의원은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의 밑바닥 여론을 이렇게 전했다.
김 의원은 의정활동의 대부분을 지역구에 쏟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김 의원도 “요즘 동네에 가보면 내 지지자들까지 ‘한나라당 잘 좀 해라. 김 의원이 만날 지역에서 잘 해도 한나라당이 그 모양인데 (내년에) 잘 되겠느냐’는 말을 할 정도다. 이게 바로 한나라당 위기의 바로미터다”라고 말했다.
서울지역의 또 다른 의원도 “여권이 강경 일변도의 대응으로 남북관계 경색을 초래하고 ‘무상급식’ 등 민심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복지 문제에서 답답하게 대처했다”며 “이대로라면 총선은 물론 대선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기전대론은 개혁성향의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과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친이’ 소장파와 일부 ‘친박’ 의원 사이에서도 힘을 얻는다. 서울의 한 친박 의원은 “수도권 친박 의원들 중에는 ‘안상수 체제’로는 내년 선거에서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렇게 가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필패”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는 4·27 재·보선 결과가 좌우할 전망이다. 특히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패할 경우 ‘안상수 체제’ 책임론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도권 분당을의 사정도 썩 좋지 않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후보로 밀었으나 이른바 ‘신정아 폭로’로 출마가 어렵게 됐다. 현재 강재섭·박계동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으나 경쟁력 우위가 미미하다.
당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출마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 위원장은 약 15%P 차로 이긴다고 나왔지만, 강·박 전 의원의 경우 한 자릿수 승리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현재 확실한 대안이 될 인물을 물색 중이지만 마땅치가 않다. 한 의원은 “분당을까지 (승리 여부가) 아리송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재·보선이 끝나면 아마 당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 혁신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조기전대에 앞서 5월 2~3일께 치러질 차기 원내대표 경선을 당 혁신 움직임의 시발점으로 거론한다. 민본21은 지난 24일 아예 공개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차기 원내대표 경선은 소위 당내 주류의 세몰이식 선출이 돼선 안 된다. 청와대로부터 자유로운 인사, 당·정·청 분리원칙에 복무할 수 있는 중립적 인사가 선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내대표 후보로 당의 주류인 ‘친이’쪽에서 이재오계의 안경률·이상득계의 이병석 의원이 거론되는 움직임을 경계한 목소리다.
18대 국회 들어 여당 내에선 여러 차례 쇄신론이 불거졌다. 여권이 위기에 부닥쳤을 때마다 나왔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제기된 혁신론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안상수 체제’에 비판적인 일부 최고위원까지 목소리를 보탰기 때문이다. 일부 최고위원은 재·보선 결과에 따라 최고위원직을 자진 사퇴해 조기전대를 압박하겠다는 의사까지 주위에 내비쳤다고 한다.
조기전대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이들은 홍준표·정두언 최고위원 등이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남경필 의원이 주장하는 ‘보수의 혁신’에 적극 공감하며 함께 대안마련에 나서겠다”고 한 데 이어 “내년 총선에서 승리의 관건은 야당은 단일화에, 여당은 세대교체에 달려있다”며 조기전대 주장을 폈다. 지역구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나경원 최고위원도 비슷한 의중으로 전해졌다.
조기전대 주장에 일부 최고위원까지 가세한나라당 내의 혁신론이 또 한차례의 파도에 그칠지, 판을 완전히 바꿔놓을 쓰나미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그간 여러 번 당 혁신을 주장했으나 번번이 좌초된 전력이 있다. 한데 뭉쳐 큰 힘을 발휘한 적이 없어 ‘모래알’이란 비아냥도 듣는다. 2009년에는 쇄신특별위원회까지 꾸렸지만 “용두사미”란 비판 속에 막을 내렸다.
가장 큰 이유는 당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인물도, 정책적 차별화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가 버티면서 정책에 민심을 반영하겠다는 당의 노력은 번번이 묵살 당했다.
게다가 현재 특임장관직을 수행 중인 이재오 의원까지 당에 복귀할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4·27 재·보선 이후의 당 혁신론이나 세대 교체론에 맞서 친이계가 ‘이재오 구심론’ 아래 똘똘 뭉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 일각에선 김무성 원내대표의 당 대표론도 나온다. 다음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과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인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임기 동안 원내 관리나 대야 협상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때 ‘친박계의 좌장’이었으나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중립지대에 서게 된 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러나 한 소장파 의원은 “(총선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년밖에 없다”며 머지않아 여당에 회오리가 불어닥친다고 예고했다. 나빠진 바닥 민심으로 내년 총선에서 당선을 낙관할 수 없는 수도권 의원들이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비주류 최고위원들에게 가세할 경우 한나라당의 지도부 개편도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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