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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갑엔 돈이 많다 , 하지만 인생이 더 중요하다

내 지갑엔 돈이 많다 , 하지만 인생이 더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이 왜 세계 최강국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인의 인생의 깊이를 맛봤다. 지난 3월 21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워런 버핏(81)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단독으로 만나고 나서다. 그는 대구텍 제2공장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찾았다.
3월 21일 대구텍을 방문한 버핏이 핸드프린팅을 하고 있다.

꾸밈 없는 목소리, 해맑은 미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첫인상이다. 81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얼굴이 깨끗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소탈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세계 부자 2위다. 재산이 56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99%를 사회에 기부한다. 그가 기부한 액수는 44조원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버핏은 늘 기업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부자가 되는 길과 부자로 사는 법을 얘기했다.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서 태어난 워런 버핏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공화당 하원의원에 당선돼 수도인 워싱턴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워싱턴 포스트’를 배달하는 일을 한다. 이때부터 그는 기업인으로서 부자의 면모를 보였다. 경쟁지를 포함한 5개의 신문을 돌려 짧은 기간에 부수를 대폭 늘린 것이다. 버핏은 1974년 워싱턴 포스트 이사를 맡기도 했다.



‘신문’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매우 사랑한다. 매일 5개 신문을 읽는다. 중·고등학교 때 신문 배달을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영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신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라디오보다 신문을 더 열심히 읽었다. 어제 야구경기 결과, 지역 정치뉴스, 주식시장 정보도 신문에서 얻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보와 오락거리를 신문이 아닌 다른 채널에서도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 신문 부수가 줄어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직 사회에 신문이 필요하다. 신문은 여전히 여론을 이끌어가는 매체다.” 신문 얘기로 인터뷰를 열고 나서 곧바로 현인의 지혜 탐구에 나섰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나?“외길보다 다양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또 창의적인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그렇다. 그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제품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 지적 능력보다 어떤 기질이 있는 사람이 돈을 번다. 또 세상에 휘둘리거나 군중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줏대가 있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성만큼 감성이 중요하고, 총명함 못지않게 침착함과 냉정함이 필요하다.”

버핏이 기자에게 지갑을 보여주며 밝게 웃고 있다.

미국서 안 태어났으면 사과장수 됐을지도

워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린다. 기부를 많이 해서만은 아니다. 삶이 검소하고 인간미가 넘친다고 해서 그렇다. 그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스테이크와 햄버거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부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사실 한국의 부자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현재 당신이 부자라면 꼭 당신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부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구석에서 사과를 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 미국 사회가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기부한다. 재산의 1%만 나와 내 가족이 쓰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를 위해 쓴다. 기부하고 남은 돈으로 손자들과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는 세계 경제와 관련해 낙관적 견해를 보였다. 낙관은 그의 인생에 밴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미국 9·11테러, 동일본 대지진도 그의 인생관을 바꿔놓지 못했다. 버핏은 인류가 진화한다고 확신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굿(good)’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좋은 기업과 좋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간다는 뜻에서다.



동일본 대지진이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영향을 받긴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 회복에 대한 견해를 바꿔놓을 만큼은 아니다. 미국이나 세계 경제는 점점 회복되고 있다. 미국 경기는 개인 주택건축 사업을 빼고 모두 상승 기류다. 물론 일본이 도시를 재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미미할 것이다.”

중국 번영이 곧 세계 번영



중국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굉장히 중요한 주제다. 과거 100년 동안 중국은 정체된 국가였다. 하지만 경제를 개방하며 경쟁력이 쌓였다. 중국이 좋은 제품을 만들면 중국에도 좋고 세계 경제에도 좋다. 가령 중국이 암 치료 기술을 개발하면 인류 전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중국의 번영이 곧 세계 번영이라고 본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중동의 불안한 정세, 유럽과 미국의 경기 침체, 중국의 인플레이션 등 외부 변수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계속 전진할 것이다. 한 나라 경제는 섬처럼 고립돼 있지 않다. 한국이 좋은 상품을 만들면 미국에도 좋다. 대구가 의료 신기술을 개발하면 인류 70억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미국에 살지만 세계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은 세계 번영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것이 한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시스템으로부터 나온다. 100년 전 세계와 비교하면 우리는 믿지 못할 정도로 발전했다. 인간의 능력이 세계적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폭격에서 보듯 한국 경제엔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북한 문제에 대한 대처법은 한국인이 더 잘 알 것이다. 한반도에는 2개의 서로 다른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 게임을 하고 있다. 한쪽은 생산적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 군사적 문제보다 경제적·도덕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북한 주민도 한국인처럼 똑똑하고 삶의 희망이 있으며 열심히 일하지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언젠가 그들이 남쪽 시스템이 더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버핏의 애정은 뜨거웠다. 그는 한국 방문에 매우 흡족해 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조찬, 대구텍 기공식 참석, 기자회견, 이명박 대통령 예방, 기업인 접견 등 빡빡한 일정을 거뜬히 소화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는가?“(웃으며) 조언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지난 15년을 되돌아보면 한국처럼 발전한 국가는 없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유연성’이다. 도시 건설에 성공한 것처럼 의료 분야도 발전하면 좋지 않겠나.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이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뛰어난 것 같다.”



한·미 FTA 체결에 대한 의견은?“자유를 좋아한다. 자유무역이 옳다고 주장해 왔다. 한·미 FTA도 좋은 일이다. 길게 바라보자. 한국이 잘하는 것이 있고 미국이 잘하는 것이 있다. 한 국가 안에서도 무역 교역을 한다. 한·미 간 역시 그렇다. 두 나라 모두에 이득이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역은 지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대구텍은 절삭공구 업체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손자 회사다.

기업 선정 기준은 CEO의 역량



어떤 기업에 투자하나.“투자 기업을 선정하는 핵심 기준은 지속성장 가능성과 CEO의 역량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자금을 원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먼저 숨은 알짜 기업을 찾아 분석한다. 그리고 주식이나 회사를 사들인다. 회사를 면밀히 살피는 동시에 훌륭한 중간관리자를 찾아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한다. 투자한 기업 CEO를 만나고 친분을 쌓는 데 매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또 그들과 많은 일을 함께 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70개 기업에 투자한다. 한국의 대구텍과 포스코도 거기에 포함된다.”



대구텍 외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은?“회사 이름을 얘기하면 경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밝힐 수 없지만 또 다른 기업 4개에 투자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한국 경제는 기적처럼 발전해 왔다. 한국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7~8년 전부터 투자 계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정보를 모아 한국에 투자할 기업을 찾고 있는 중이다.”



중소기업인 대구텍에 투자한 이유는?“대구텍은 IMC그룹의 자회사로 독립 법인으로 성장할 만큼 매출액과 수익 규모가 크다. 무엇보다 전망이 밝다. 세계적으로 절삭공구 분야에 대한 수요가 더 늘 것이다. 공장을 확장할 계획도 있다. 대구가 기업에 매우 우호적이어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버핏은 사인을 해줬다. “대단한 인터뷰였다(It was a great interview)”고 소감을 표했다. 그리고 기자를 다정하게 포옹했다. 먼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하기도 했다. 버핏은 사진을 찍으며 기자에게 지갑을 보여줬다. “내 지갑에 돈이 많다.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는 삶의 통찰력이 있는 마음의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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