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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休] 부모님 집에서 해장라면 끓이기 시합

[CEO의 休] 부모님 집에서 해장라면 끓이기 시합

동갑내기 두 친구가 한 살 위인 외국인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 밤새 셋이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요리 얘기가 나왔다. 서로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며 옥신각신했고 결국 해장국 대결을 벌이자며 서울 강남구 수서에 있는 한 친구의 집으로 몰려갔다. 다음날 아침 메뉴는 해장라면이 됐지만 대결은 약속대로 진행됐다. 심사위원은 한 친구의 어머니였다.

여느 20대 청년들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특이한 점은 있다. 20대 청년들이 요리 얘기로 밤을 새운다는 점과 이 세 친구가 사실은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코리아의 공동대표라는 사실이다.

황희승(27) 대표의 집에 새벽녘 쳐들어간 친구는 윤신근(27) 대표, 칼 요셉 사일런(28) 대표였다. 황희승 대표는 양파로 단맛을 높인 라면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윤신근 대표는 파와 계란을 풀어 정통성을 강조했다. 사일런 대표는 꼬들꼬들한 면 맛을 강조하기 위해 첨가물을 넣지 않았다. 해장라면 대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황 대표 어머니는 윤 대표 손을 들어줬다. 손맛이 있다는 평가였다.

지난 4월 소셜커머스의 원조이자 세계 최대 업체인 그루폰이 한국지사를 내면서 CEO에 20대 청년 세 명을 앉혀 화제가 됐다. 이들의 일에 대한 열정은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토종 소셜커머스 업체가 많은데도 월매출 100억원을 연내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던 이 청년 CEO들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20대라면 한창 놀고 싶은 나이다. 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지, 취미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농구쯤 되려니 했던 기자에게 세 명은 입을 모아 “요리!”라고 외쳤다. 요리가 취미이고 그 시간만큼 주어지는 여유가 휴식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유학 시절 향수 음식으로 달래세 명의 배경을 들으니 수긍이 갔다. 황 대표와 윤 대표는 중학교 때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황 대표는 독일, 윤 대표는 미국 플로리다였다. 거기서 4~5년씩 홀로 지내야 했다. 편식이 심했던 두 사람의 입맛이 달라졌고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은 미국 조지아주 에머리대학. 03학번 새내기로 만난 둘은 ‘창업’과 ‘요리’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 쉽게 친해졌다. 기숙사에서도 같은 방을 썼다.

윤 대표는 살림꾼이다. 그가 꼽은 자신의 대표요리는 밑반찬이었다. 듣고 있던 황 대표가 “그때 먹은 시금치무침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고 한마디 거든다. 윤 대표는 “술 마시고 들어오면 다음날 북어국이나 소고기무국도 끓였다”며 한술 더 뜬다. 황 대표는 메인메뉴 담당이다. 그가 꼽은 대표요리는 닭복음탕과 깐쇼새우. 황 대표는 손도 커서 스파게티를 한번 만들면 두 친구는 3일 내내 같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허투루 만들진 않았다. 스파게티에 얹어낼 미트볼을 직접 만들 정도였다.

조기유학을 간 외국에서 깻잎 통조림과 맨밥에 라면수프를 비벼 먹던 것이 ‘생존 요리’였다면, 대학 때 밑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내던 시절은 ‘생활 요리’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이들은 요리하는 시간만큼의 여유를 즐기는 취미형 요리를 하고 있다.

이 취미형 요리를 가장 즐기는 사람은 사일런 대표다. 내공도 깊다. 두 한국인 대표가 오랜 객지생활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에 잠시 빠져 있던 게 사일런 대표의 요리를 한발 앞서게 했다.

“한국에는 6개월 전에 왔지만, 오스트리아를 떠나 혼자 생활한 지 10년입니다. 지금 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토마토 소스를 만드느냐예요. 책도 참고하고 나름대로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일런 대표가 이처럼 겸손한 이유는 아직 그가 자신의 미식가 여자친구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대로 된 소스를 만들려면 생각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키워나가야 하는 게 사업과 요리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요리가 취미여서 좋은 이유로 “음식점에 갔을 때 원가 계산을 비교적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소셜커머스 업계 경쟁이 치열한 지금 음식점 쿠폰이라면 맛과 품질 유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기본은 항상 얼마에 딜(할인 쿠폰을 발행하는 것)을 할 수 있느냐다.

세 명의 공동대표는 요리를 하는 것만큼 먹는 것도 즐긴다. 맛집 탐방을 다니면서 선릉역 인근에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레스토랑 밀집지역 업체를 소개하는 둘레길 이벤트도 만들 수 있었다. 산낙지, 곱창, 번데기 가리지 않고 먹는 사일런 대표 덕에 최근에는 신림동에 있는 산낙지 비빔밥 집에 함께 다녀왔다.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만 아는 사람이 식당에서 왜 이리 늦게 나오느냐고 소리지르는 법이다. 살림하는 주부가 식당에 앉자마자 종업원을 재촉하는 경우는 드물다. 요리를 만들 줄 아는 CEO로부터 직원들은 여유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도 다음 미팅이 잡혀 있어 초조할 법했지만, 공동대표들은 농담을 해가며 요리 얘기에 들떠 있었다.



사일런은 산낙지에 번데기까지이들의 요리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윤 대표가 잡채를 만들 때 어려웠다고 했지만,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 고난도는 아니다. 그래도 윤 대표는 당면을 삶을 때의 타이밍과 색을 내기 위해 간장을 섞는 비율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황 대표도 자신의 주메뉴인 닭복음탕에는 라면수프 3분의 1 스푼이 들어간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남이 해주는 음식의 고마움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친구들을 모아놓고 만드는 요리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메뉴일 필요는 없지만,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줬던 것이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식 가짓수를 늘려준 것 같습니다.”

밑반찬이 특기여서 자신만의 메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윤 대표는 “남이 해주는 음식은 고마움이고 내가 하는 음식은 보람”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가끔 내가 만든 요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며 지지 않는다. 사일런 대표는 “매운 스파게티에 필요한 스패니시 햄을 사려고 한두 곳을 다닌 게 아니었다”고 거든다. 조만간 그루폰코리아에서 공동대표 3인의 요리 대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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