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에덴’으로 불리는 섬
[Travel] ‘에덴’으로 불리는 섬
갈라파고스 제도는 멀리서 봐도 거칠고 황량한 느낌을 준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80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용암 덩어리들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며 솟아올랐다. 이 섬들을 황량하게 만드는 요소(예를 들면 민물이 부족한 점)는 동시에 그 섬들을 매우 중요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척박한 환경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물이 극소수이며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섬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쉽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년 1월부터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은 일련의 관광제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곳에 가기가 더 어렵고 복잡해질 듯하다.
안 그래도 가보기 어려웠던 곳인데 한층 더 다가가기 힘들게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실망감이 크게 마련이다. 우선 여기 소개되는 갈라파고스 여행기를 읽어보고 과연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바란다. 관광객이라는 표시라도 내듯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한 섬에 도착했다. 카메라에 풍경을 담으려고 눈에 갖다 대는데 갑자기 되새 한 마리가 카메라에 내려앉더니 렌즈 안을 들여다본다. 이 호기심 많은 새의 부리와 커다란 눈이 파인더에 잡혔다.
살아남기가 이렇게 어려운 섬에 ‘에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달리 적절한 이름이 없는 듯하다. 갈라파고스의 새와 다른 동물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에콰도르 정부의 섬 접근 제한 조치가 꽤 효과적인 듯하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동물들을 보면서 왠지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특별히 어떤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잔인성과 이기심이 부끄럽게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사람과 동물 사이에 저런 신뢰가 가능한데 다른 곳에선 왜 안 될까?
갈라파고스 여행은 흔히 사파리 여행에 비유되지만 적절치 않다. 그 두 경험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 케냐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로 사파리 여행을 떠나 보라. 우거진 숲의 녹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지만 동물이 너무 많다 보니 때때로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황량한 갈라파고스의 섬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의 암석 정원에 온 듯 정적감이 느껴지면서 감각이 예민해진다.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아주 기이하게 느껴진다.
“저 물 좀 보세요.” 가이드가 말했다. “마치 진처럼 약간 기름기가 있어 보이지 않나요? 소금기가 너무 많아서 그래요. 아마 바닷물보다 더 짤 거예요. 저 물속에서 어떤 생물이 살 수 있겠어요? 놀랍지 않아요?”
얕은 호수 속을 천천히 거니는 홍학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멀리서 보니 홍학들이 머리를 모래 속에 묻고 걸어가는 듯했다. 사색에 잠긴 듯 천천히 걷는 모습에서 종교적인 숙연함이 느껴졌다. “홍학들이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세요.” 가이드가 말했다. “하나도 겹치지 않아요. 놀랍죠?”
갈라파고스 크루즈의 첫째 날이 그렇게 지났다. 가이드는 설명 중간에 툭하면 “놀랍죠?”라며 내게 동의를 구하려는 듯했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유람선을 떠나 파란색 고무 모터보트를 타고 한 섬으로 갔다. 갈라파고스의 섬들은 되새가 많기로 유명하다. 되새는 부리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짧은 부리, 긴 부리, 뾰족한 부리, 바늘처럼 생긴 부리, 넓적한 부리, 집게처럼 생긴 부리 등) 다윈의 진화론을 입증하는 듯하다. 내가 그 차이점을 구분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조류 관찰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기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각각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구분됐다.
되새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다. 흙 위를 깡총깡총 뛰는가 하면 선인장 위에 내려앉기도 했다. 부리가 작은 되새는 식물의 종자를 주로 먹고 산다. 반면 부리가 큰 되새는 좀 더 딱딱한 먹이를 부숴서 먹는다. 길고 뾰족한 부리를 가진 되새는 부리로 선인장도 뚫고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모든 현상에 이유가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큰 부리를 가진 새는 몸집도 커서 더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되새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고 나서 더 주의 깊게 관찰한 덕도 있지만 종류별로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되새가 선인장의 어느 부분에 내려앉는가도 몸집의 크기나 부리의 모양과 연관이 있었다.
그날 아침 관광은 몇 시간 만에 끝났지만 의미가 컸다. 그 후로 나는 어떤 광경을 보든 그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 게들은 왜 어려서는 껍질 색이 어두운데 자라서는 더 밝은 색을 띨까? 어린 게는 껍질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용암 바위와 비슷한 색을 띠고 바위 사이에 숨어서 산다. 바다 이구아나는 왜 이가 포크처럼 생겼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위에 붙어 사는 조류를 쉽게 떼어내기 위해서다.
축구를 좋아하는 한 영국인 친구는 언젠가 농구가 품위 없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농구에서는 점수를 올리기가 너무 쉬워서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칼로리만 많고 영양가는 없는 사탕 같다고 했다. 반면 축구에서 어렵게 얻은 점수는 좀 더 성숙하고, 실생활에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갈라파고스의 섬에서 내가 본 새와 동물은 사파리 여행에서 본 동물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적극적인 자세로 관찰했기 때문인 듯하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군함새의 새빨간 목을 보면서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빨간색 하이힐이 떠올랐다. 해가 비치는 절벽 위에서 거대한 흰 날개를 펼쳐놓고 쉬는 신천옹들은 멀리서 보니 꼭 볕에 말리려고 넣어놓은 빨래 같았다. 모터보트를 타고 맹그로브가 무성한 석호를 돌아보면서 보트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물속을 들여다보니 천천히 헤엄치는 녹색 거북과 로켓처럼 재빨리 움직이는 바다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갈라파고스 여행에서는 관광객 각자가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느냐와 얼마나 자질 있는 가이드를 만나느냐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이 여행에서 가이드는 진정한 의미에서 선생님 역할을 한다. 내가 탔던 유람선 이클립스호는 48인승으로 크기가 작아서 큰 배들이 다가가지 못하는 섬에도 정박했다. 하지만 이 배의 진정한 장점은 학구적인 크루즈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숙련된 가이드들이 안내를 맡는다는 점이다.
어느 날 오후엔 스쿠버다이빙을 했다. 가이드 한 명이 물속으로 안내했다. 나는 온갖 장비를 다 갖췄지만 그는 간편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처음엔 물속이 훤하더니 깊이 들어갈수록 어두컴컴해졌다. 가이드는 마치 “이것 좀 보세요” ‘“이것도 좀 보세요”라고 말하는 듯 점점 더 깊은 물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볼 것이 무궁무진한 듯했다.
내가 물 밖으로 나가자고 안 했더라면 가이드는 얼마쯤이라도 더 깊이 들어갈 기세였다.
[필자는 ‘순종적인 아버지(An Obedient Father)’의 저자로 올해 말엔 신작 소설 ‘다른 하늘의 별(Stars From Another Sky)’을 펴낼 계획이다.
번역 정경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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