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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 해결과 국내 정유사 득실 >>국내 정유 4사 엎친 데 덮쳤다

리비아 사태 해결과 국내 정유사 득실 >>국내 정유 4사 엎친 데 덮쳤다

리비아 시민들이 8월 24일(현지시간) 트리폴리 무아마르 카다피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서 거대한 시민군 깃발을 펼쳐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리비아 내전이 반군 측 승리로 굳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떨어졌다.

리비아 내전이 반군 측 승리로 굳어지면서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분주하다. 기름값 하락에 따른 정제 마진 감소를 우려해서다. 정유업종의 매출과 이익은 기름값 등락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다. 리비아 내전이 끝나 산유량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경기둔화로 한풀 꺾인 기름값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원유 150만 배럴을 수출했다. 7월 말 15만 배럴로 줄어든 하루 평균 생산량은 내전이 끝나면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내전이 끝났다고 당장 생산량이 늘어나진 않을 공산이 크다. 리비아 원유 생산량이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2~3년가량 걸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원유 생산공장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

정권을 둘러싼 종파·부족 간 내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MC투자증권 조승연 애널리스트는 “이라크의 경우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나서야 겨우 원유를 제대로 생산했다”며 “리비아 내전 종결이 정유업종에 중장기 악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라고 설명했다.



기름값 하락 국면에서 변동폭 커져 불리정유사들도 마음을 놓고 있진 않다. 기름값이 언제든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 조그만 호재나 악재에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듯 기름값도 마찬가지여서다. 기름값이 큰 폭으로 널뛰는 게 정유사에는 가장 큰 악재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유사들이 중동에서 원유를 사 국내에 들여와 정제한 후 휘발유나 디젤유를 만들어 팔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린다.

그사이 가격 변동이 심하면 이익을 많이 낼 수도 있지만 반대의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대개 들여오는 원유의 반은 배에 실을 때 가격으로, 나머지는 국내 세관을 통과하는 시점의 가격으로 결제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년 사이 두 배로 올랐던 기름값이 다시 반 토막 난 적이 있다. 이때 국내 한 정유사는 기름값을 선적 기준으로 모두 결제했다가 반기 기준으로 이익을 남겼지만 연간 기준으론 적자를 냈다.

원유를 사올 때 헤지를 해도 재고에서 이익 또는 손실을 볼 수 있다. SK에너지는 통상 2000만 배럴의 재고를 가져간다. 기름값이 배럴당 1달러가 달라지면 우리 돈으로 200억원 정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유사들은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7월 이후 기름값이 널뛰는 폭이 커졌다. 7월 두바이유 가격 변동 범위는 105~112달러, WTI(서부텍사스유)는 95~100달러였다. 8월 들어 달라졌다. 두바이유는 100~113달러로, WTI는 79~95달러로 변동폭이 커졌다. 경기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리비아 사태가 시시각각 달라지면서 기름값이 널뛰었다. 특히 경기침체 우려의 진원지인 미국의 영향을 받는 WTI의 8월 26일 가격은 올해 고점이었던 4월 말보다 28달러나 떨어졌다.

아시아가 수요처인 두바이유가 13달러, 유럽이 수요처인 브렌트유가 14달러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변동폭이 컸다. SK이노베이션 서영준 팀장은 “정유회사는 기름값이 높은 수준에서든 낮은 수준에서든 안정되는 게 가장 좋다”며 “그런 측면에서 리비사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 이현복 부장도 “원유 수급이 가장 중요한데 리비아의 현재 생산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생산시설이 망가졌다면 얼마나 빨리 예전만큼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의 셈법이 복잡한 건 2분기에 예상대로 최악의 성적표를 내놔서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의 영업이익은 1분기 7132억원에서 2분기 971억원으로 급감했다. 화학·윤활유를 비롯한 다른 사업 분야가 없는 현대오일뱅크는 전체 영업이익이 1분기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24억원으로 줄었다. 1분기 4~7%였던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 정제 부문 영업이익률은 2분기 1% 아래로 뚝 떨어졌다.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이 급감한 건 기름값 100원 할인과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등 이른바 ‘규제 리스크’ 탓이 컸다. 정유사들은 치솟는 물가와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3개월간 기름값을 내려 7000억~8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더구나 5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원적지 관리 담합과 관련해 4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수출과 윤활기유 사업 등으로 버텨정유업계 관계자는 “2분기에 기름값이 비교적 높았고 정제 마진도 커 해외 경쟁사인 엑손모빌과 로열 더치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등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는데 국내 정유사들만 기름값 할인으로 실적이 엉망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물가도 중요하지만 실적 악화로 투자 여력이 작아지면 산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유사들이 그나마 견딘 건 2분기 아시아 시장에서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SK에너지는 1분기보다 11%나 늘어난 4321만 배럴을 수출해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GS칼텍스도 2분기 수출액이 분기 최대인 8조200억원으로 수출이 전체 매출의 66%를 차지했다. 여기에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파라자일렌과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 사업도 실적에 버팀목이 됐다. 예컨대 GS칼텍스는 매출 규모가 정유 부문 대비 3.7%에 불과한 윤활유 사업에서 94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에쓰오일은 윤활유 부문 영업이익이 1786억원으로 전체의 73.8%를 웃돌았다.

정유사들의 3분기와 이후 실적은 어떨까. 일단 기름값 하락 영향으로 매출은 조금 줄어들 수 있지만 영업이익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름값 인하 조치가 7월 6일 끝났고, 과징금도 일회성 요인이라서다. 중국·일본·동남아 쪽 수요가 탄탄해 1분기 못지않은 실적을 올릴 전망이다. 문제는 물가다. 물가가 불안할 경우 정부의 규제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부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석유제품을 싸게 파는 대안주유소를 도입하고 마트 주유소를 늘리기로 했다. 이와 관련,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독점이나 과점 상태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걸 반시장적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리비아 사태가 마무리된다고 가정할 경우 대외 악재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더블 딥(짧은 경기 회복 후 재침체)이다.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하지만 더블 딥 우려에 따른 수요 감소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남승률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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