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aign 2012] 선거는 감성의 소통이다
[Campaign 2012] 선거는 감성의 소통이다
ANDREW ROMANO 기자미트 롬니는 누구일까? 물론 그는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로서 내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맞설 공화당 후보 지명을 앞두고 당내 경선(예비선거)에 출마한 유력한 주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무대에 나서면 자신을 비추는 조명보다 더 밝게 빛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9월 22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롬니는 발군의 언변을 자랑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자들의 TV 토론 자리였다.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한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 두 시간에 걸친 말싸움에서 롬니는 거의 모든 공격에서 점수를 따고 거의 모든 방어에 성공했다.
예컨대 페리는 사회보장제도를 전국적으로 획일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페리가 자신의 그런 전력을 얼버무리려 하자 롬니는 “한 입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입을 단속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페리가 롬니의 표변(롬니는 오바마 대통령의 교육 정책은 칭찬했지만 나중에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은 반대했다)을 지적했을 때는 “노력은 가상하다”고 쏘아붙인 뒤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롬니는 농담을 던지는 여유마저 보였다. “나는 주지사를 4년밖에 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자신의 사업가 경력을 페리의 사반세기 주지사 경력과 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난 깊이 들이마시진 않았다.” (말솜씨가 뛰어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마리화나 문제가 불거지자 “들이마시진 않았다”는 교묘한 답변으로 빠져나간 일화에 빗댄 농담으로 자신은 정치에 깊이 물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토론이 끝나가자 페리는 거의 녹아웃 상태였다. 문장 하나도 일관성 있게 말하지 못했다.
롬니는 뒤늦게 경선에 뛰어든 페리에게 지지도 1위 자리를 빼앗긴 상태다. 하지만 올랜도 토론은 그가 정치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더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롬니는 하버드 법학대학원(로 스쿨)과 경영대학원(비즈니스 스쿨)을 동시에 졸업했다. 일류 컨설팅 회사 베인 앤 컴퍼니의 CEO를 지냈고, 이름을 날린 사모펀드 자회사 베인 캐피털을 설립했다.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을 실패의 나락에서 구해냈다. 매사추세츠 주지사로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 매사추세츠 주의회를 설득해 보수주의에 확실히 뿌리를 둔 ‘똑똑한’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등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아울러 유세장에서 조리 있는 언변이 부족한 페리에 비하면 롬니는 ‘키케로(고대 로마의 웅변가)’인 셈이다.
그러나 무대와 조명, 또는 짜여진 각본 없이 자신 그대로의 모습이 가까이서 드러나는 상황이 오면 롬니는 그리 대단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8월 그가 아이오와주 축제에 갔을 때를 돌이켜 보자. 롬니가 축제가 열리는 곳에 도착하자 보좌관이 막대기에 끼운 포크찹을 점심으로 사왔다. 롬니는 포크찹을 한입 깨물어 씹으면서 가까이 있는 한 은퇴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화라고 말하긴 힘들지 모른다. 그는 유권자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이 한 말을 곧바로 받아 반복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축제에선 그게 최고지요.” 그 은퇴자가 포크찹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축제에선 이게 최고예요.” 롬니가 맞장구쳤다. 그는 은퇴자의 손녀에게 돌아서며 물었다. “몇 살이지? 일곱 살?”
“여덟 살인데요.” 아이가 말했다.
“여덟 살.” 롬니가 반복했다. 그는 다시 은퇴자 쪽으로 돌아섰다. “농사를 지었나요?”
“보험회사에 다녔어요.” 은퇴자가 말했다.
“보험회사에 다녔어요?” 롬니가 되물었다.
롬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심한 듯했다. 드러내기도 싫고 드러낼 수도 없는 듯했다.
그 은퇴자는 화젯거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클리어 레이크에 수년째 살지요.” 미네소타주 경계선 부근의 동네를 두고 말했다.
“아름다운 곳이지요.” 롬니가 말했다. “난 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는 포크찹을 또 한입 먹었다.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자 은퇴자가 카메라를 의식하며 말했다. “저,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겠네요. 당신보다 우리가 방송에 더 많이 나가겠어요.”
미트 롬니에겐 무언가 부족하다. 그는 문서나 무대에선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선거는 알고리즘이나 토론회 청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세장에서 결판난다. 요점은 롬니가 표심을 얻는 데 재주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치 경력 17년 동안 중요한 선거에서 단 한 번 이겼을 뿐이다. 200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였다. 대부분의 경우 롬니는 패했다. 정확히 말해 23차례의 경선과 본선에 출마해 18차례 고배를 마셨다. 1994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테드(에드워드) 케네디에게 졌다. 2006년 주지사 선거에서도 승산이 없자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2008년 대선 예비선거 패배까지 16차례의 경선에서 실패했다. 이 모든 패배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롬니의 지지도가 거의 언제나 초기에 치솟았다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이다. 4년 전 이맘 때쯤 그는 아이오와·뉴햄프셔주에서 지지도가 선두를 달렸지만 실제 예비선거에서는 그 두 군데 모두에서 졌다. 2010년 5월에서 2011년 8월 사이 실시된 지지도 조사 대부분에서 그는 경쟁자들보다 앞섰지만 지금 그는 페리에게 8%포인트 뒤진다. 패턴은 분명하다. 롬니가 유권자들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유권자들은 그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문제는 그 이유다. 정치학자들은 롬니의 운명이 GDP 성장과 실업 같은 경제 요인에 달렸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 기자들은 롬니의 진짜 문제가 정책이나 종교, 아니면 그 둘 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롬니케어(Romneycare: 롬니식 헬스케어라는 뜻의 조어로 주지사 시절 서명한 전주민의 건강보험 의무화 법을 말한다)’ 지지 철회를 거부해 보수주의 유권자 운동단체인 티파티의 심기를 건드렸고, 모르몬 교도로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기자들의 그런 시각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성격 문제다. “선거 같은 정치 과정은 인간 행위 주체를 통해 이뤄진다”고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 프레드 그린스타인이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한 개인을 다른 개인과 차별화하는 속성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롬니 자신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 고용한 전략가 스튜어트 스티븐스의 감독 아래 올해 들어 내내 넥타이를 풀고 인간적인 면을 보이려고 애썼다. 트위터에서 대중 음식점 칼스 주니어의 할라피뇨 치킨 샌드위치를 격찬했다. 일자리가 없는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나도 실업자”라며 ‘동정’을 표하기도 했다. 1200만 달러짜리 해변 별장이 있다는 보도에도 말이다(롬니 진영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보통사람을 강조하는 전략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런 전략은 롬니의 잇따른 역전패에서 유일하게 변함 없는 요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묵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황기든 불황기든, 민주당 강세 지역이든 공화당 강세 지역이든, 좌측으로 기운 정책이든 우측으로 기운 정책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점이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까? 또 그런 점이 지금 미국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자질에 관해 무엇을 말해줄까?
정치심리학 교수 오브리 이멜만은 롬니의 백악관 입성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후보자의 개인 특성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그는 정치학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연구 결과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실제 행동이 50% 정도 차이 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멜만이 말했다. “따라서 등식의 절반은 구조적 요인이 차지하지만 나머지 절반인 성격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인트존스대(미네소타주 칼리지빌)에서 ‘정치와 성격의 상관관계 연구소’를 이끄는 이멜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성격을 분석했다. 하버드대 성격학자 시어도어 밀런이 만든 170가지 척도(예를 들어 ‘말이 너무 많다’)를 바탕으로 책과 언론 보도에서 특정 후보자의 성격을 구성하는 요소를 찾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출처에서 공동으로 발견되는 특성이 있어야 그 인물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규정했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의 경우 회고록에서 “너무 말이 많아” C학점을 받았다는 내용을 찾았고, 잡지 기사에서 백악관의 끝없는 ‘난상토론’을 묘사한 기사를 발견했다.
이멜만은 170가지 특성 중 언론에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약 40가지를 확인한 뒤 예를 들어 ‘외향성’ 같은 더 넓은 범주로 분류했다. 그 분류 항목에 지난 선거 결과를 반영한 가중치를 부과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에 ‘외향성’은 가중치가 높다. 이 분류에 따라 종합 점수를 매겨 ‘개인 선출가능성 지수(Personal Electability Index: PEI)’를 계산했다. 점수가 높다고 반드시 선거에서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지만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미셸 바크만의 경우 “아주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이멜만이 말했다. 그러나 PEI가 낮은 후보가 선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롬니는 6점이었다. 거의 최악이다. 그에 비해 버락 오바마는 28점을 얻었다.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패했다)과 존 매케인(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민주당 후보 오바마에게 패했다) 같은 패배한 후보자들도 20점을 넘어섰다(각각 23점, 26점). 이멜만에 따르면 요즘 유권자들이 특히 두 가지 성격적 특성에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롬니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내향성(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보다 자신의 뜻에 따르려고 한다)과 성실성(올바르고, 근면하고, 세부 사항을 중시하고, 아주 합리적이다)이다. 롬니는 특별히 내성적이진 않지만 그의 신중성은 확실히 드러난다. 신중성은 그의 특성 중 유일하게 ‘현저히 두드러지는’ 요소다.
예전 같았으면 롬니의 그런 성격이 선거운동에 방해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허버트 후버, 캘빈 쿨리지, 우드로 윌슨만이 아니라 심지어 제임스 매디슨도 롬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 정중함, 조심스러움, 자제심, 체계적 사고, 의무감 등을 말한다. 이처럼 과거엔 철저한 계산에 따른 행동이 보상 받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까지 대국민 설득보다는 체계적인 막후 공작이 더 중요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4시간 뉴스 사이클 때문에 후보자들이 유권자와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중성의 반대는 충동성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신중한 정치인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이멜만이 말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중한 후보는 TV에서 경직된 사람으로 비친다.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멜만에 따르면 TV 시대의 신중한 후보자로 밥 돌, 빌 브래들리, 마이클 듀커키스, 앨 고어가 꼽힌다. 그들처럼 롬니도 마음을 터놓고 소통해야 할 상황에서 꼼꼼히 따지고 계산한다.
그렇다면 롬니는 왜 소통이 어려울까? 물론 선천적인 DNA도 관련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 겨룰 때는 타고난 성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후천적 요소도 작용한다. 롬니의 경우 아버지와 직업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와 다른 사람이 됐을 듯하다.
미트 롬니와 관련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조지 롬니의 아들이라기보다 그의 복제판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다. 여러모로 일리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반항적인 검은 머리를 가졌다(60세의 나이에도 그랬다). 또 두 사람 모두 키가 크고, 얼굴 윤곽이 조각상처럼 분명하며, 수퍼맨이나 배트맨을 연상시키 듯 잘생겼다. 두 사람 모두 진보 성향이 강한 주 출신으로 온건주의 공화당원이며, 사업, 신앙, 가정을 중시한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한 가지 세부적인 사항이 있다. 성격적으로 두 사람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버지 조지는 아들 미트와 달리 자수성가했다. 조지는 어린 시절 부친이 떠돌이 목수로, 또 감자 농사를 짓는 농부로 번 적은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 그 뒤 그는 미국 사회의 사다리를 신속히 타고 올랐다. 알루미늄 로비스트에서 자동차 회사 대변인으로, 아메리칸 모터스 CEO로, 그리고 미시간 주지사로 승승장구했다. 직설적이고, 기탄없고, 충동적인 태도가 그의 주된 강점이었다. 라이프지는 1967년 조지 롬니의 매력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힘은 단도직입적인 솔직함, 억제되지 않는 성격에서 비롯된다.” 그는 ‘평이한 말’을 좋아했다.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싶으면 언제라도 사전에 준비한 대본을 내던졌다. 그런 성급하고 독불장군식 성격 때문에 공화당의 권력 브로커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수다를 통해 그는 유권자들과 소통한다”고 라이프지는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비가 그보다 더 극명할 수는 없다. 아버지 조지는 충동적으로 질주했다. 무슨 문제든, 누구든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전에도 늘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 미트는 아버지 덕분에 운 좋게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실수를 저질러 2루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조지는 공화당이 표심을 얻기 어려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회사 근로자들을 설득하기로 마음 먹으면 노조 집회장에 곧바로 찾아갔다. 반면 미트는 사모펀드 베인 캐피털을 설립할 좋은 기회를 제안 받았을 때도 주저하면서 만약 신생 회사가 실패하면 옛 자리와 연봉을 그대로 받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조지는 호레이쇼 앨저(근면으로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동 문학가) 스타일”이라고 그의 측근으로 선거운동을 관리했던 월터 드브리스가 말했다. “그가 그 푸른 눈길을 주면 누구나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고는 못 배겼다. 하지만 미트는 아버지와 다르다. 그는 운이 좋아 거저 물려받은 세계를 행여나 잃어버릴까 안절부절못하는 듯하다.”
그런 조심성은 타고난 성격일지 모른다. 그러나 1967년 하반기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미트 롬니는 그런 걱정을 떨치기가 더 어려워진 듯하다. 당시 정치 평론가들과 당 지도부는 1년 이상 조지 롬니가 1968년 대선에서 가장 승산이 큰 공화당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여름 동안 조지의 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베트남이었다. 1965년 조지 롬니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을 방문한 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적극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미국의 개입이 잘못이었다고 말을 바꾼다는 인상을 주었다. 8월 말 조지 롬니는 디트로이트의 TV 방송국에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는 너무도 지친 상태였다”고 드브리스가 말했다. “강행군 유세로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그 방송국 기자는 조지에게 베트남전에 관한 생각을 분명히 밝혀달라고 했다. 조지 롬니는 늘 그렇듯 본능적으로 앞뒤를 재지 않고 성급하게 답변했다. “사실 베트남에서 돌아왔을 때는 누구나 그렇듯 아주 심한 세뇌를 당했었다.”
결국 조지 롬니는 그 언급으로 입은 타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아들 미트도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야심은 크지만 이미 조심성이 몸에 밴 젊은이로서 그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말 한마디로 야망이 물거품이 된다면 무엇이든 되는 대로 운에 맡겨선 안 된다는 교훈이었다. “그 ‘세뇌’라는 말이 우리에게 준 타격은 매우 컸다”고 미트의 누나인 제인 롬니가 오래전 보스턴 글로브지에 말했다. “미트는 원래 외교관 같이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언이 그를 더욱 그쪽으로 기울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지지를 잃을 말을 해서 곤경에 처하는 일은 절대 피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대본을 충실히 따르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뒤 미트 롬니는 자신도 대권에 도전하면서 아버지와 달리 늘 “완벽하게 브리핑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직성이 풀린다”고 미트 롬니가 말했다.
미트가 택한 일자리도 그의 신중성을 더욱 굳히는 데 일조했다. 그가 하버드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투자금융이 “최고 인기였다”고 그의 급우 하워드 브라운스타인이 말했다. 그러나 졸업이 다가오자 브라운스타인과 미트 둘 다 앞으로의 큰 기회는 다른 분야에 있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샐러먼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을 마다하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입사했다. 전략적 경영 자문으로 유명한 12년 된 회사였다. “지극히 엘리트주의 집단이었다”고 브라운스타인이 돌이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그때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일했다. 핵물리학 학위를 가진 직원도 있었다.” 롬니의 선택은 완벽했다. 1980년대 초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거기서 분사한 베인 앤 컴퍼니 등의 유사한 회사들이 비즈니스계를 재규정했다. 새로운 분석 기법과 금융공학으로 수많은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주면서 그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롬니는 처음엔 보스턴 컨설팅 그룹, 그 다음엔 베인 앤 컴퍼니, 그리고 베인 캐피털에서 훌륭한 실적을 올렸다. 그도 한때 자동차 회사의 경영자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진정한 CEO의 자아도취적 추진력이 없었다. 옥스퍼드대 심리분석학자로 ‘자아도취형 리더가 성공한다(The Productive Narcissist)’의 저자인 마이클 매코비는 그런 자질을 두고 “현상을 거부하며 자신의 독특한 비전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트는 그보다는 매코비가 말하는 ‘마케팅 리더’로 성숙했다. “마케팅 전문가는 아주 합리적”이라고 매코비가 말했다. “그들은 레이더를 보고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감을 잡은 다음 그에 자신을 맞춰 나간다. 그들에겐 문제 해결이 최대 관건이다.”
마케팅 전문가는 능숙한 컨설턴트가 될 능력을 갖춘다. 롬니는 숫자를 계산하고 해결책을 고안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면에서 아주 편안함을 느끼고 실제로 그런 면에서 탁월했다. 그러나 그런 성격은 단점도 있다. 특히 대통령감으로서 그렇다. 매코비에 따르면 롬니 같은 전문직 출신은 업무 성격상 “깊은 확신이나 진정한 핵심을 구축하는 일”을 멀리한다. 예를 들어 베인 앤 컴퍼니와 베인 캐피털에서는 이념이 아니라 분석이 최고다. 따라서 그들은 매 순간의 요구에 맞추려고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수정해 나간다. 그래서 낙태 같은 문제가 관련되면 비겁해 보일 가능성이 있다(롬니는 원래 낙태 찬성자였지만 대선에 출마하면서 입장을 뒤집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성장과 시장 점유율을 따지는 사고방식으로는 유권자의 고통을 느끼기 어렵다. 또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으로는 유권자의 생각에 공감한다고 설득하기가 불가능하다. “미트는 영리하기 때문에 이념으로 기울지 않는다”고 베인 캐피털의 임원을 지낸 마크 월파우가 말했다. “양쪽 모두의 편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받았다. 학력이 비슷하고 성공한 사람이 모인 작은 그룹에서는 그런 지적인 엄격함이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그에겐 미국 인구가 3억이라는 사실이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일부 사람과만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듯하다.”
아이오와주 축제로 돌아가 보자. 롬니가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는 동안 검은 단발의 땅딸막한 여성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특별올림픽(정신 장애자 올림픽)의 표식이 붙은 목끈을 하고 ‘2005년 성화 봉송’이라고 적힌 커다란 녹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롬니의 팔을 살짝 두드렸다. 롬니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특별한 부탁이 있어요.” 그녀가 나지막히 말했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요?”
만약 롬니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다면 그 이유는 자명할 듯하다. ‘롬니케어’, 모르몬교 신앙, 그리고 유권자들과 소통력이 더 나은 라이벌 릭 페리의 부상 때문이리라. 갤럽에 따르면 페리의 ‘호감도(Positive Intensity Score: 후보 개인에 대한 유권자의 긍정적 견해와 부정적 견해의 비율 차이)’는 24점으로 공화당에서 가장 높다. 롬니의 점수는 11점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만약 롬니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그 이유 역시 자명할 듯하다. 그는 신중성을 무기로 이미 주지사로서 성공했고, 사업에서도 성공했으며, 올림픽도 성공으로 이끌었다.
유일하게 남은 수수께끼나 놀라움은 ‘롬니 대 오바마’라는 양자 대결 상황에서 나올지 모른다. 지지자들은 롬니가 예비선거(경선)가 아닌 본선에서 더욱 자신을 많이 드러내리라고 말한다. 공화당 주변부에 영합할 필요가 없고 폭넓은 지지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될 경우도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현직 대통령 대신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의 대결을 돌이켜 보라. 그러나 오브리 이멜만이 지적하듯 합리적이고 기술관료적인 오바마는 “1996년 이후 신중하다는 평을 받을 만한 몇 안 되는 대선 후보 중 한 명”이다. 롬니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둘 다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미 잘 아는 신중한 후보와 아직 잘 모르는 신중한 후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현직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싶은 마음이 덜해 질지 모른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공감과 신뢰,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하는 면에서 점수가 높을 때 그렇다.
녹색 티셔츠를 입은 그 여성이 롬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롬니는 보좌관을 찾으려고 군중 속을 살폈다. “저 말이지요…”라고 롬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그… 일이 있다고요?” 그는 오른손으로 서명하는 시늉을 했다. 탄원서 같은 데 서명해달라는 이야기라면 그런 일을 전담하는 보좌관이 따로 있다는 표시였다.
“아니에요.” 그 여성이 말했다. “지금 내가 묻고 싶은 건,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 같은 사람을 잊겠느냐는 질문이에요.”
롬니는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다가 멈추고는 다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아니, 저는 미국의 모든 사람을 위해 출마합니다. 미국의 모든 사람 말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말합니다. 당신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마침내 롬니는 이 여성이 무엇을 부탁하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온정과 공감을 원했다. 롬니는 그녀의 팔꿈치를 세 번 가볍게 치고는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 국민 모두를 사랑합니다.” 왠지 롬니 자신에게도 그런 확신이 필요한 듯 들렸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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