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지역 개발 나서려면 >> 한-러 , 정부·산업계·학계 협의체 필요
극동지역 개발 나서려면 >> 한-러 , 정부·산업계·학계 협의체 필요
러시아 극동지역은 경제적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다. 극동지역의 기후조건이 좋지 않을뿐더러 러시아가 이 지역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필요도 없었다. 러시아 영토가 극동지역으로 넓어진 19세기 후반 이후 이곳은 천연자원 공급처로만 인식됐다. 특히 1970년대 냉전시기에는 중국·미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구소련 정부가 극동지역의 경제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극동지역의 위상은 다르다. 경제개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동북아 및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역과 가깝다. 동북아 및 아태지역을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러시아 극동지역이 세계적인 교통·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잠재력이 크다는 얘기다. 여기에 광물·임산자원 등 천연자원 개발 잠재력까지 감안한다면 이 지역은 러시아의 어떤 곳보다 경제개발 가치가 풍부하다.
이런 잠재력을 현실화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투자가 시장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극동지역은 러시아 영토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영토가 넓지만 인구밀도는 낮아 시장규모가 작다. 교통·통신 등 인프라도 열악하다. 이런 맥락에서 극동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선 해외, 특히 동북아 국가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 러시아 정부도 극동지역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1990~1999년) 집권 이후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아태지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아태지역 국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다. 한국은 극동지역 경제개발을 위해 필요한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투자금 조달능력이 있다. 러시아의 자원과 상품이 수출될 만한 시장도 있다. 러시아의 동북아 및 아태지역 진출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향후 북한 경제개발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한국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물론 한국에도 이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천연자원 보유량과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주요 천연자원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의 해외수입 비중은 97%에 이른다. 한국은 장기적 경제발전 전략 차원에서 천연자원의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천연자원 매장량이 막대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의 개발의지가 뚜렷해서다. 한국이 러시아 극동지역 투자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곳은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바이칼-아무르철도(BAM) 같은 간선철도노선·도로·전력선·광케이블·송유관 등 다양한 형태의 수송수단은 해상운송에 의존하는 한국의 교통·물류체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러시아의 척박한 투자환경 개선 필요한국과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경제협력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과 러시아 정부는 2001년 극동·동시베리아 지역에서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러 극동시베리아 분과위원회’를 설치했다. 2004년에 열린 한·러 정상회담 이후 체결된 ‘경제통상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에도 한국 기업의 극동·시베리아 진출을 촉진하는 데 양국이 협력한다는 별도의 조항이 있다. 2008년 9월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것도 극동지역 공동협력개발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러 정부는 아직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한·러 경제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양국은 호혜적이기보다는 일방적 이익을 좇는 데 바빴다. 이 때문에 양국이 바라던 결실을 맺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한국과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경제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구체적인 협력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민간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이런 협의체 안에서 양국 전문가들은 극동지역 경제협력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토론하고 이를 통해 보다 성과지향적인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구상해야 한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들을 체계화해 종합적인 한·러 극동협력 프로그램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서 나온 결과는 ‘한·러 극동시베리아 분과위원회’나 ‘한·러 경제과학기술 공동위원회’ 같은 정부간 협의체에 권고해 실질적인 한·러 정부의 협력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건 한국과 러시아의 수많은 극동지역 경제협력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가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한·러 극동지역 경제협력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자원개발이나 교통·물류협력과 관련된 사업은 건설·엔지니어링·서비스 등 여러 분야가 포함된 복합적 지역개발 프로젝트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더구나 몇몇 경제협력사업은 산업뿐만 아니라 극동지역의 외교·안보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사업들은 시너지 효과가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추진될 때 가장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과 러시아의 극동지역 경제협력 프로그램은 양국의 상호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들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한·러 경제협력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러시아 경제전문가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논의할 때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업의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확대되기 위해선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러시아의 척박한 투자환경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정책은 자주 바뀌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경제특구 지정도 지연되기 일쑤다. 이런 정부정책의 불안전성을 비롯해 기업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제도와 통관절차의 복잡성 등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기업이 이 지역에 대한 투자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기업은 중국·일본기업보다 러시아와의 비즈니스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적인 불안전성은 투자의지를 꺾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이 지역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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