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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한국인 청년 3인 - 한국은 좁지만 세계는 역시 넓다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한국인 청년 3인 - 한국은 좁지만 세계는 역시 넓다

글로벌 기업의 직원으로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재와 무한경쟁을 펼쳐야 하고,

거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근무 국가를 자주 바꿔야 하기 때문에 각 국가의 특징과 문화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려는 20~30대 한국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한국을 넘어 세계의 인재가 되겠다는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무한도전을 하고 있는 한국인 청년 3인의 일상을 살펴봤다.




유니클로 일본 매장 ‘한국인 1호 점장’ 이기선씨

손짓·눈짓만으로 일본인 직원 움직여


12월 17일 저녁 6시 유니클로 일본 야마나시현 중앙점 매장. 1653㎡ 규모의 대형 점포가 고객으로 북적거린다. 계산대 창구에는 일렬로 줄이 늘어서있다.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매장 구석구석을 살펴보다 고객이 몰리는 곳을 발견하면 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의 손짓과 눈짓에 따라 45명의 직원이 움직인다.

이기선(33)씨는 2008년 세계적인 의류업체 유니클로에 입사해 매장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 1호 점장’이다. 그는 군 제대 후 2002년 일본 게이오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공부를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왕 일본에 왔으니 일본 사회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학에서 소비자 행동학을 공부하면서 일본 소비자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순혈주의가 강한 일본 기업에 외국인이 입사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씨는 외국인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워 입사에 성공했다. 그는 “2008년 입사 설명회에서 한국에 점포수를 확대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며 “면접에서 ‘나를 뽑으면 한국 진출 전략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유니클로는 일본과 한국 등 해외에 18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인 업체답게 꼼꼼한 매장 관리 매뉴얼이 있다. 본사는 각 매장마다 매장 레이아웃, 신상품 점검, 재고 관리 등 요일마다 해야 할 업무를 정해주고 그 결과를 매일 점검한다. 업무 사항이 명확하다 보니 점장은 시간별로 계획을 짜서 움직인다. 이씨는 “처음엔 시간마다 처리할 업무가 있다는 게 부담이 됐지만 매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나이·학력을 파괴한 ‘완전 실력주의’로 유명하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승진할 수 있다. 유니클로 일본 매장 점장은 처음엔 826㎡ 규모의 소형점을 관리하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차례대로 표준점(992㎡)과 대형점(1653㎡)을 운영한다. 이씨는 2009년 소형점을 관리하다 1년 만에 대형점을 맡게 됐다. 관리하는 직원은 20명에서 45명으로 늘었다.

최근 그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2012년 3월부터 영어를 사내 공용어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직원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다지겠다는 뜻에서다. 근무 시간 외에 인터넷으로 영어를 배우고 일정 성적을 올리면 수업료를 전액 보조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매장 점장들은 일주일에 영어 공부 1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경고를 받는다. 이씨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직원들 교육에 적극적인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것이 만족스럽다”며 “ 역량을 더욱 키워 소비 트렌드를 빨리 읽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로레알 프랑스 본사 직원 유일연씨

세계 66개국 지사 돌며 재무관리


그는 매달 근무지를 바꿔가며 일한다. 올해는 미국, 태국, 중국, 베네수엘라, 터키, 프랑스를 돌아다니며 일했다. 한 달간 미국 지사에서 일한 후 프랑스 본사로 복귀해 근무하다 태국 지사로 나갔다 다시 본사로 돌아오는 식이다. “세계 어떤 나라로 출장을 가더라도 5분 만에 짐을 쌀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며 여유를 부리는 이 사람.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로레알 본사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는 유일연(32)씨다.

현재 그는 로레알에서 내부 감사로 일하고 있다. 세계 66개국 지사를 돌아다니며 재무제표를 검토하고 그룹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규정한 절차를 성실히 따르고 있는지를 감사한다.

본사로 돌아와선 각 나라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감사를 마무리 짓는다. 평균적으로 1년 동안 6개국을 방문한다. 유씨는 “한 달마다 근무지와 동료들이 바뀌니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다”며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생명유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연구소로 취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비즈니스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보며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비즈니스맨을 동경하게 됐다. 경영학과 수업을 듣고, 미국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며 관련 경력을 쌓았다. 유씨는 로레알 코리아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다 같은 해 정식 직원이 됐다. 내부 감사로 일하기 전까진 제품의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결재하는 재무 업무를 맡았다.

그는 “무엇보다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시장과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고 로레알 각 사업부의 특성과 제품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며 “세계 지사를 돌아다니며 재무 상태를 살펴본 게 현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로레알은 외국인 직원을 대상으로 프랑스 교육제도와 회사 내 조직 구조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프랑스 동료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현재의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는지를 알려줘 동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유씨는 “해당 국가의 교육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동료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로레알 그룹은 트레이닝 지도(Training map)를 만들었다. 거기에 각 직책별 연차에 따라 받아야 하는 교육 내용을 명시했다.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각자 받아야 할 교육을 점검하는 도구로 로레알의 세계 모든 직원이 공유한다. 그는 “이 지도에는 프리젠테이션, 마케팅 등 다양한 교육이 망라돼 있어 연차별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유씨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기업의 CFO다. 숫자를 분석해 논리를 만들고, 그걸로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그는 “항상 새로운 걸 찾는 편이라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에서 활동한 후 경쟁력을 쌓고 싶다”며 “사람들이 추상적인 목표를 제시할 때 수치를 통해 논리를 보완하고 허점을 지적할 수 있는 CFO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싱가포르 P&G 직원 정가윤씨

외국인 직원 1000여명과 치열하게 경쟁


“왜 이렇게 피부가 좋아졌어? 도대체 비결이 뭐니….” 한때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기 피부’로 통했다. 친구들은 잡티 하나 없는 그의 뽀얀 피부를 부러워했다. 2년간 저가부터 고가까지 모든 브랜드의 화장품을 사용하다 보니 피부가 고와졌다. 싱가포르 P&G에서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정가윤(27)씨 이야기다.

그는 2008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P&G에 입사했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업무는 화장품 브랜드 SK-II 마케팅이다. 파운데이션은 SK-II의 다른 제품에 비해 매출이 다소 부진했다. 정씨는 소비자와 만나며 한국 여성이 화장을 할 때 가장 원하는 게 어려 보이는 피부라는 점을 파악했다. ‘동안 피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캠페인을 벌였고 2007년 매출이 4배 가량 늘었다. 그는 “신입사원 1년차 때 중요한 업무를 맡아 부담이 컸지만 매출도, 피부도 모두 좋아져 기뻤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 시절부터 그는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에 매력을 느꼈다. 세계 무대를 돌아다니며 더 많은 소비자와 만나고 싶어졌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 P&G에 관심이 생겼다. P&G는 내부승진제도 등 인사 시스템과 교육·능력개발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기업으로 유명하다. 짧은 기간에 전문가를 양성해 ‘인재 사관학교’로 불린다. 정씨는 2년간 한국 P&G에서 근무하다 2010년 싱가포르 P&G로 근무지를 옮겼다.

현재 그는 섬유탈취제 페브리즈 브랜드 마케팅을 맡고 있다.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 페브리즈 브랜드를 알리는 게 주업무다. 동남아시아 지역 담당자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즈니스 현안을 논의한다. 동남아 국가로 출장을 가면 현지 가정을 방문해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공을 들인다.

싱가포르 P&G는 아시아 지역 본사다. 정씨와 같은 50여명의 한국인을 비롯한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등 1000여명의 외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의사소통 방법이 달라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정씨는 “한국인의 경우 미국인, 인도인에 비해 부드럽게 의견을 전달하는데 종종 다른 직원에게 의견이 묻히곤 했다”며 “이후론 의견을 강하고 뚜렷하게 주장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꿈은 소비자에게 오래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1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페브리즈 비치형(60일 동안 향기가 지속되는 공기 탈취제) 신제품을 출시했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당분간은 페브리즈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해 아시아 지역의 가정을 향기롭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has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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